3장 2편 진辰 (2) #13

사소娑蘇와 그 아들 (5/6)

by 잡동산이

이제 낙랑-군에서 이 시기의 중-국 곧 한漢의 황제 가문이 있는 곳으로 오고가는 길들을 보면, 앞서 진辰에 이르렀던 무리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살폈던 바와 같이 그러한 길들은 다시 두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길은 뭍길로 가서 요동을 통해 멀리 돌아가는 길이고 두번째 길은 요동에서 잠시 물길로 가서 오고가거나 낙랑-군 서쪽 바다를 바로 가로질러 건너가는 길입니다.


이러한 길들 가운데 두번째 길은 모두 제齊라는 이름의 장소로 이어집니다. 그 길 가운데에서도 바다를 가로지르는 길은 제북-왕 유흥거의 반란 즈음 왕중이 제에서 낙랑으로 달아나는 데에 쓰였던 것이며, 또한 보다 뒤에 조선-한 전쟁에서 양복이 제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조선에 이르는 데에 쓰였던 것임을 앞서 살폈습니다. 그리하여 진-한에 이르렀던 사람들 가운데 수가 적지 않은 - 때문에 연燕 사람들과 나란히, 하지만 조趙 사람들보다는 먼저 적힌 - 제齊 사람들이 조선에, 그리고 다시 진-한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낙랑-군에서 제를 통하는 길은, 조선-한 전쟁에서 이 길을 건너며 양복이 많은 군사들을 잃었던 것이 보여주듯이, 본래 요동을 통해 멀리 돌아가는 길에 비해 더 위험하였습니다. 하지만 MC-70 즈음에는 보다 앞서 한이 요동에서 오환을 깨트리고서 이어 성을 지어 현토-군을 옮긴 일로 말미암아, 요동은 지나는 길의 위험함은 물길의 위험함에 못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길을 가든 사소가 오고가며 감수해야만 하는 위험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과연 사소는 진-한에서 낙랑-군에 이른 뒤에, 어느 길로 바다 건너 한漢의 땅, 그 가운데에서도 황제의 가문 가까운 곳에 이르렀을까요? 그 답은 사소가 처음부터 얻으려 하였던 것인지 불분명한 신선의 재주를 통해서 얻어집니다. 그러기 위해 잠시, 보다 앞선 한漢 무-제 때 신선의 재주를 지닌 사람들이 나타나 황제 가문에 자리잡는 모습을 살펴봅시다.




사기 봉선서는 무-제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서 처음에는 귀, 신에게 제사지내는 일을 삼갔으며 그리하여 무제 01년에는 신하들이 바라는 바를 들어주기 위해 유-가의 재주를 대접하여 사람들을 불렀다[V-1-(1):①-⑱]고 적었습니다. 이어, 그리하여 얻은 조관, 왕장 등이 공, 경의 자리에 올라 옛 일을 헤아려 명-당을 세우고 남쪽을 향해 여러 후들을 보기를 바랬다[V-1-(1):⑲-㉕]고 적었습니다.


V-1-(1) 사기 봉선서: ① 지금 천자(= 무-제)는 ② 처음 ③ 자리에 올라서는 ● 더욱 ④ 귀鬼, 신神에게 제사지내는 일[祀]을 삼갔다. ⑤ (무제) 01년 ⑥ 한漢이 ⑦ 일어나고 ● 이미 ⑧ 60해 남짓이 지나 ⑨ 천하가 ⑩ 다스려져 평안하니 ⑪ 높은 신하들 무리[搢紳之屬]가 ⑫ 모두 ● 바라기를, ⑬ 천자(= 무-제)가 ⑭ 봉선封禪하고 ⑮ 고쳐 도수[度]를 바로잡았으면, 하였다. ⑯ 상이(= 무-제가) ⑰ 유(-가)[儒]의 재주[術]를 대접하여[鄕] ⑱ 슬기롭고 어진 사람들[賢良]을 불러들이니 ⑲ 조관, 왕장 등이 ⑳ (유-가의) 글과 배움으로 ㉑ 공公, 경卿이 되어서는 ● 바라기를, ㉒ 옛 일들을 헤아려 ㉓ 명-당[明-堂]을 세우고 ㉔ 성城의 남쪽을 향하여 ㉕ 여러 후들을 보도록 하였으면 하였고 ㉖ 돌아보는, 봉선하는, 역歷을 고치는, 색에 맞추어 옷입는 일들을 계획하였다[草]. ①今天子②初③即位●尤④敬鬼神之祀⑤元年⑥漢⑦興●已⑧六十餘歲矣⑨天下⑩艾安⑪搢紳之屬⑫皆●望⑬天子⑭封禪⑮改正度也⑯而上⑰鄉儒術⑱招賢良⑲趙綰王臧等⑳以文學㉑爲公卿●欲㉒議古㉓立明堂㉔城南㉕以朝諸侯㉖草巡狩封禪改歷服色事


이 가운데 옛 일이란 앞서 주서 왕회해편 그리고 명당해편이 적은 바, 주-공[周-公] 단이 명-당을 세우고 남쪽 낮은 곳에 여러 후들을 세워 그들이 주周 성-왕을 보도록 하였던 일입니다. 유-가 사람들은 그들이 따르던 가르침[敎]을 만들어낸 공-자가 그리하였듯 이상적이라고 여긴 주周의 옛 일을 살펴 한漢에서 이루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기 봉선서는 황로 - 황제와 노-자의 가르침 - 곧 도-가의 재주를 좋아하고 유-가의 재주를 좋아하지 않던 태후 두-씨가, 사람들에게 조관, 왕장의 잘못을 찾아내도록 하여 조관, 왕장을 살피니 조관, 왕장이 죽고 그들이 일으키던 일들도 모두 없어다[V-1-(2):①-⑫]고 적었습니다. 이어, 여섯 해가 지나 태후 두-씨가 죽은 뒤에 무-제 공손홍 등 유-가 사람들을 뽑아 쓰기는 하였지만[V-1-(2):⑬-⑱], 그 다음 해 무-제는 바깥에 가서 제사지내기[郊] 시작하여 그 뒤로도 계속 그리하였다[V-1-(2):⑲-㉗]고 적었습니다.


V-1-(2) 사기 봉선서: (그러한 일이) ①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② 두-태후(= 두-태후의 때)를 만났는데 ● (두-태후는) ③ 황(제)[黃]와 노(-자)[老]의 말들(= 도-가의 재주)로 다스리며 ④ 유-가의 재주를 좋아하지 않아, ⑤ 사람들에게 시키니 ● (사람들이) ⑥ 조용히 엿보아 ⑦ 조관 등이 남을 속여[姦] 이로움을 가진[利] 일들을 얻고 ⑧ 불러 (조)관, (왕)장을(= 조관, 왕장의 일을) 헤아리니 ⑨ (조)관, (왕)장은 ● 스스로 ⑩ 죽었고 ⑪ 여러 가지 (조관, 왕장이) 일으키던 바는 ⑫ 모두 없어지게[廢] 되었다. ⑬ 뒤에 ⑭ 06년이 지나고 ⑮ 두-태후가 ⑯ 죽으니 ⑰ 그 다음 해에는 ⑱ 글과 배움을 가진 사士인 공손홍公孫弘 등을 뽑았지만, ⑲ 그 다음 해에는 ⑳ 지금의 상(= 무-제)도 ㉑ 처음 ㉒ 옹雍에 이르러 ㉓ 교를 지내고[郊](= 교라는 제사를 지내고) ㉔ 오치五畤를 보았으며 ㉕ (그리한) 뒤로는 ● 언제나 ㉖ 3해에 1번 ㉗ 교를 지냈다. ①未就②會竇太后●③治黃老言④不好儒術⑤使人●⑥微伺⑦得趙綰等姦利事⑧召案綰臧⑨綰臧●自⑩殺⑪諸所興⑫爲皆廢⑬後⑭六年⑮竇太后⑯崩⑰其明年⑱徵文學之士公孫弘等⑲明年⑳今上㉑初㉒至雍㉓郊㉔見五畤㉕後●常㉖三歲一㉗郊


그렇게 두-태후를 통해 도-가의 재주들이 쓰이던 일에 이어 무-제의 일을 다시 이야기한 뒤에, 사기 봉선서는 이 때 있었던 이-소군이라는 사람에 대해 적었습니다. 이-소군은 불을 때는 곳[灶]에 제사지내고[祠] 도道를 길러 나이많음 - 나이드는 것 - 을 멀리하는 재주들을 가는데 그것을 가지고 무-제를 만으며 그리하고서 무-제가 그를 높였다[V-1-(3):①-⑥]고 적었습니다.


V-1-(3) 사기 봉선서: ① 이 때 ② 이-소군[李-少君]이 ● 또한 ③ 불을 때는 곳[灶]에 제사지내고 도道를 길러[穀] 나이많음을 멀리하는 재주[方]로 ④ 상上을(= 무-제를) 보니 ⑤ 상이(= 무-제가) ⑥ 그[之]를 높였다[尊]. ⑦ (이-)소군이라는 이는 ⑧ 옛 심택-후[深澤-侯]의 사인舍人(= 부리던 사람)이었는데 ⑨ 재주[方]에 우두머리 노릇을 하며 ⑩ 그 나이 그리고 그 태어나 자란 일을 숨기고[匿] ● 언제나 스스로 ⑪ 일러 ● (말하기를) ⑫ (나이가) 70이며 ⑬ 물건들을 부려 나이많음을 멀리할 수 있다고 하고, ⑭ 그[其]가 ⑮ 돌아다니며[游]⑯ 방(술)[方]이 ⑰ 여러 후들[侯]에게 이르도록[遍] 하였지만 ● (그에게는) ⑱ 아내[妻], 아이가 없었다. ⑲ 사람들이 ● 듣기를, ⑳ 그가 ㉑ 물건들을 부리고 죽지 않을 수 있다, 고 하였는데 ● 이어 ㉒ 물건들[饋]이 ㉓ 그[之]에게 남고[遺] ● 언제나 ㉔ 남아 있던[餘] 금붙이, 돈들[金錢]이 ㉕ 입을 것, 먹을 것이 되니(= 금붙이, 돈들로 입고 먹으니) ㉖ 사람들이 ㉗ 모두 ● (그는) ㉘ 살아갈 일을 다스려지도록 하지 않아도 풍족하고 넉넉하다고 하고서 ● 또한 ㉙ 그가 어떤 곳의 사람인지 알지 못하였지만 ● 더욱 ㉚ 믿으며 다투어 그를 섬겼다. ①是時②李少君●亦③以祠灶穀道卻老方④見上⑤上⑥尊之⑦少君者⑧故深澤侯舍人⑨主方⑩匿其年及其生長●常自⑪謂●⑫七十⑬能使物卻老⑭其⑮游⑯以方⑰遍諸侯⑱無妻子⑲人●聞⑳其㉑能使物及不死●更㉒饋㉓遺之●常㉔餘金錢㉕衣食㉖人㉗皆●㉘以爲不治生業而饒給●又㉙不知其何所人●愈㉚信爭事之


조灶는 부엌을 뜻으로 가지는 조竈를 대신하여 쓰이기에 대개 부엌으로 해석되는데, 위에서는 그러한 뜻이 비롯된 불을 때는[火] 곳[土]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보면 이-소군의 재주를 뜻하는 방方 앞에 함께 놓여있는 祠灶, 穀道, 卻老는 동사 + 적어의 형태인데, 각각 불 때는 곳에 제사지내는[祠] - 맡아[司] 모습을 보이는[市] - 일, 도道를 여물게 하는[穀] 일, 나이많음[老]을 멀리하는[卻] 일을 말하니, 이것들은 숨을 골라 도를 여물게 하고 그리하여 늙지 않고 오래 살도록 하는 도-가의 재주들을 달리 적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무-제가 이-소군을 만나 그를 높이도록 하였다는 이-소군의 이러한 재주는 눈에 보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사기 봉선서는 이-소군이 본래 다른 사람이 부리던 사람이었는데 재주에 - 재주를 풀어보이는 데에 - 우두머리 노릇을 하며 그러함을 숨겼으며[V-1-(3):⑦-⑩],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가 오래 살았다고 하며 여러 후들에게 돌아다니는데 아내, 아이도 없고 하지만 풍족하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그 재주를 믿어 앞다투어 섬겼다[V-1-(3):⑪-㉚]고 적었습니다.


다시 말해 -소군에게는 도-가의 재주에 더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풀어보이는 재주가 있었고 그것이 무-제가 그를 부르도록 하였고 여겨졌니다. 이러한 재주 대해 사기 봉선서는 어 이-소군이 재주를 좋아하여, 교묘함이(= 교묘한 일들이) 사람들이 - 미리 그러리라고 - 생각하지 않는[奇] 가운데 펼쳐지도록 하기를 잘하였다[V-1-(4):①-③]고 적었으니, 이 설명은 마술이 보여주는 눈속임에 대한 것 그대로입니다.


V-1-(4) 사기 봉선서: ① (이-)소군은 ② (자질을) 갖추고 재주를 좋아하여 ③ 교묘함이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은 가운데 펼쳐지도록 하기를 잘 하였다. ④ 일찍이 ⑤ 무안-후를 따라 ⑥ (술을) 마시는데 ⑦ 자리한 사람들[坐] 가운데에 ⑧ 90 남짓 나이많은 사람이 있었다. ⑨ (이-)소군이 ● 이어 ⑩ 그 사람의 큰 아버지와 더불어 돌아다니며 활을 쏘았던 곳을 이야기하니 ⑪ 나이많은 사람이 ⑫ 아이였을 때에 그 큰 아버지를 따르게 되어 ⑬ 그곳을 안다고 하니 ● 하나같이 ⑭ 자리한 사람들이 ⑮ 모두 ⑯ 놀랐다. ⑰ (이-)소군이 ⑱ 상을(= 무-제를) 보는데 ⑲ 상(= 무-제)이 ⑳ 옛 구리로 된 그릇을 가지고 ㉑ (이-)소군에게 물으니 ㉒ (이-)소군이 ● 말하기를 "㉓ 이 그릇은 ㉔ 제의 환-공 10년에 ㉕ 동백나무 침대에 늘어놓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㉖ 끝나고 ㉗ 그 때를 헤아리니 ● 과연 (그것은) ㉘ 환-공의 그릇이었으니, ● 하나같이 ㉙ 궁의 사람들이 ㉚ 모두 ㉛ 놀랐다. ㉜ (이-)소군이 ㉝ 신과 같은 사람, 수백 해를 살아온 사람이라고 하였다. ①少君②資好方③善爲巧發奇中④嘗⑤從武安侯⑥飲⑦坐中⑧有九十餘老人⑨少君●乃⑩言與其大父游射處⑪老人⑫爲兒時從其大父⑬識其處●一⑭坐⑮盡⑯驚⑰少君⑱見上⑲上⑳有故銅器㉑問少君㉒少君●曰㉓此器㉔齊桓公十年㉕陳於柏寢㉖已㉗而案其刻●果㉘齊桓公器㉘一㉙宮㉚盡㉛駭㉜以爲少君㉝神數百歲人也


그리고서 이어 사기 봉선서는, 그러한 눈속임의 재주의 예로, 이-소군이 나이많은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의 큰 아버지와 함께 활을 쏘았던 어떤 곳을 맞춘 일[V-1-(4):④-⑯], 제齊의 옛 물건을 처음 보고 언제 것인지 맞춘 일[V-1-(4):⑰-㉛]을 적었습니다. 이것은 현대 마술 공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미리 말을 맞춘 상대와 미리 상대에게 준 물건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눈속임입니다.


그런 일을 적은 뒤에 이어 사기 봉선서는 마지막 구절들에 그 재주를 보고 놀란 사람들이 이-소군을 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여겼다[V-1-(4):㉜-㉝]고 적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그가 지닌 곁가지 재주가 사람들에게 그를 신과 같은 사람으로 보이게 하였음을 이야기하는 바, 곁가지 재주는 사소가 익힌 신선의 재주 가운데 그 아들을 사람들 앞에 보일 때에 썰던 것과 같은 눈속임입니다.


물론 이-소군의 재주들 가운데에는 앞서 구절이 적은 바와 같이 불 때는 곳에 제사지내는 일, 도道를 기르는 일[穀] 등의 도-가의 재주가 있었지만, 이-소군이 사람들에게 신선처럼 보이도록 한 것은 곁가지인 이러한 재주였습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구절들은 이-소군의 말, 본래 호흡을 골라 도를 열매맺도록 하여 나이먹는 것을 멀리하는 비결秘訣을 적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세상의 일, 세상의 일로 여겨 세상에서 찾아 결국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이야기에 이어 사기 봉선서는 이-소군이 병들어 죽은 뒤의 일을 적고 있는데, 바다 위에서 연燕, 제齊의 괴상하고 멀리 있던 재주들을 익힌 사들[士]이 많이 와서는 - 이-소군이 이야기한 것처럼 - 신 같은 일들을 말하였다[V-2:①-③]고 적었습니다. 곧 이-소군으로 말미암은 신선의 재주는 그 뒤 연, 제 사람들을 통해 황제 가문에 이어 나타났는데, 앞서 살핀 바 이-소군의 재주 가운데에 제의 물건들과 관련된 것이 있었으니 이-소군의 재주는 제 사람들에게 이어졌습니다.


V-2 사기 봉선서: ① 바다 위, ② 연燕, 제齊의 괴상하고 멀리있던 방(-술)을 익힌 사들이 ● 많이들 이어 ③ 와서 신 같은 일을 이야기하였다. 來言神事矣 ①而海上②燕齊怪迂之方士●多更③來言神事矣


앞서 살핀 바, 그 재주는 또한 현재 마술을 부릴 때 그리하듯이 도와주는 믿을 만한 사람들을 필요로 하며, 그러할 사람들로는 이-소군의 피붙이들이나 아내, 아들보다 나은 사람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사기 봉선서는 이-소군에게 아내, 아들이 없었다[V-1-(3):⑱]고 하였으니, 그를 도와 신선의 재주를 부리는데 함께 하고 그리하여 그 재주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이-소군과 같은 이-씨 성을 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바로 앞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제齊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이니, 그러한 재주를 얻을 수 있었던 사소가 낙랑-군에서 움직인 길은 요동을 통해 또는 바다를 건너 제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건너간 제에서 사소는 이-씨 성을 쓰는 이-소군의 피붙이들이 알고 전하던 신선의 재주를 얻을 수 있었으니, 이 점은 사소 또한 제에서 이-소군의 재주를 잇던 이-씨 성을 쓰던 사람들의 먼 피붙이였음을 알려줍니다.


다시 말해, 이-씨 성을 쓰는 사람들이 조상이라고 여겼던 양-산-촌의 우두머리 알평을 앞서 사소의 아버지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알평과 그 딸 사소는 이 사람들과 본래 같은 무리였습니다. 진-한에 이른 무리들 가운데 제齊를 떠나 조선에 이르고, 다시 조선-상을 따라 조선을 떠나서 한韓에 그리고 다시 그 동쪽 땅에 머물러 진-국과 함께 하고서는 진-한이라고 불리게 되었던 사람들, 그 가운데 이-씨 성을 쓰던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제에 있던 이-씨 성의 사람들이 조선으로 떠날 때 함께 떠나지 않고 제에 남은 사람들이 있어 그 후손 가운데 세상으로 나와 그들의 재주를 알린 사람이 이-소군이었습니다. 때문에 사소는 제로 건너와서는, 이-소군의 재주를 알고 이어가던 이 사람들을 만나, 그 피붙이임을 알림으로써 그들을 가까이 하였고 나아가서는 그들이 잘 알고 있던 이-소군의 재주 또한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소가 본래 재주를 배우고자 왔다가 그것 때문에 황제 가문에 이를 수 있었고 그리하여 진-한 북쪽의 상황에 대해 알았는지, 아니면 황제 가문에 이르러 그 상황에 대해 알고자 하였고 그리하여 수단으로 재주를 배웠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사소는 제에서 이-소군의 뒤를 이은 사람들에게 배워 재주를 지녔으며 이어 황제 가문에 이르게 되니 그 자취가 자료에 남았습니다.


이제, 이어지는 글에서 그러한 자료를 살펴 사소의 이야기를 먼저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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