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娑蘇와 그 아이 (6/6)
자, 이제 사마천의 사기 대신 반고의 한서를 보며 이야기를 이어가지요. 사기의 본기가 무-제의 이야기를 적은 효무본기에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한서 무제기 원수 06년 여름 04월 기사는 무-제가 사당에서 황자들을 세우니 황자들이 제-왕, 연-왕, 광릉-왕이 되었다[W:①-⑧]고 적었습니다. 이 시기는 MC-116/04에 해당하는데, 같은 일을 한서 무오자전 곧 무-제의 다섯 아들들의 일을 모은 글은, 제-왕, 연-왕, 광릉-왕이 서자 각각 책策을 내려주었는데 책은 맡은 땅에 따라 삼가할 것들을 알려주었다[X-1:①-⑧]고 적었습니다.
W 한서 무제기: (원수 06년) 여름 04월 28일[乙巳] ① 사당[廟]에서 ② 황자들을 세우니 ● (황자들 가운데) ③ 굉은 ④ 제-왕이 되었고 ⑤ 단은 ⑥ 연-왕이 되었고 ⑦ 서는 ⑧ 광릉-왕이 되었다. (元狩六年)夏四月乙巳①廟②立皇子●③閎④爲齊王⑤旦⑥爲燕王⑦胥⑧爲廣陵王
X-1 한서 무오자전: ① 제齊 회-왕[懷-王] 굉閎이 ② 연-왕[燕王] 단旦, 광릉-왕[廣陵-王] 서胥와 더불어 ③ 같은 날 ④ (왕으로) 서니 ● (무-제가) ⑤ 모두에게 ⑥ 책策을 내려주었는데 ● 각각(= 각각의 책은) ⑦ 국國이 있는 땅의 풍속風俗을 가지고 ⑧ 삼가할 것들[戒]을 알려주도록[申] 하였다. ①齊懷王閎②與燕王旦廣陵王胥③同日④立●⑤皆⑥賜策●各⑦以國土風俗⑧申戒焉
3명 가운데 광릉-왕 서에 대해 한서 무오자전은 그 책의 내용을 옮겨 적으며 그가 봉하여진 곳을 남쪽 땅[X-2:⑦]이라고 적었습니다. 한서 지리지는 광릉-국을 포함한 여러 군들, 국들을 모두 오吳에서 나누어진 곳[Y:①-③]이라고 적었는데, 곧 광릉-국은 곧 초楚에 가까운 남쪽 땅이었으니 초-국은 아니었지만 초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X-2 한서 무오자전: ① 광릉廣陵 여-왕[厲-王] 서胥에게 ② 책策을 내렸는데 ● (책이) 말하기를 "③ 아[嗚呼], ④ 나이어린 아들[小子] 서야. ⑤ 자리에서 붉은색 제사지내는 곳[社]을 받아 ⑥ 너[爾]의 국國, 가문[家]을 세우고, ⑦ 남쪽 땅에 봉하니 ⑧ 대를 이어 ⑨ 한漢을 위하여 ⑩ 울타리 노릇을 하며 도와라. ⑪ 옛 사람에게 ⑫ 이야기가 있었으니 ● (그 이야기가) 말하기를 '⑬ 큰 강의 남쪽, ⑭ 다섯 호수의 사이, ⑮ 그곳의 사람들은 ⑯ 마음을 가볍게 하고 ⑰ 양-주[揚-州]에서 ⑱ 땅[彊]을 지키니 ⑲ 3대의(= 3대 동안) 요복要服으로 있고 ⑳ 이르러 (3대가) 다스리도록 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①廣陵厲王胥②賜策●曰③嗚呼④小子胥⑤受茲赤社⑥建爾國家⑦封于南土⑧世世⑨爲漢⑩藩輔⑪古人⑫有言●曰⑬大江之南⑭五湖之間⑮其人⑯輕心⑰揚州⑱保彊⑲三代要服⑳不及以正
Y 한서 지리지: ① 지금의 회계(-군)[會稽], 구강(-군)[九江], 단양(-군)[丹陽], 예장(-군)[豫章], 여강(-군)[廬江], 광릉(-국)[廣陵), 육안(-국)[六安), 임회-군[臨淮-郡)은 ② 모두 ③ 오吳의(= 오에서) 나누어진 곳[分]이다. ①今之會稽九江丹陽豫章廬江廣陵六安臨淮郡②盡③吳分也
무-제는 오래 살며 여러 아내들을 거느렸기에 그 아이들의 나이는 많이 차이가 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무-제가 죽은 뒤 그 뒤를 이은 소-제에 대해, 한서 무오자전은 광릉-왕 서가 소-제가 어리고 아이도 없는 것을 보며 황제가 되기를 바랐다[X-3-(1):①-⑦]고 적었습니다. 이어 초楚 사람들이 무가 귀鬼의 일을 한다고 여기는 것을 알고 서가 여자 무였던 이여수라는 사람을 맞아들였다[X-3-(1):⑧-⑫]고 적고, 서가 시키는 바에 따라 이여수에게 내린 신神이 서가 기뻐할 것을 말하였다[X-3-(1):⑬-⑮]고 적었습니다.
X-3-(1) 한서 무오자전: ① 처음 ② 소-제[昭-帝] 때 ③ (무-제의 아들) 서胥가 ● 보니, ④ 소-제[上]는 ⑤ 나이가 어리고 ⑥ 아이가 없었다. ● (서에게) ⑦ 분에 넘치게[覬](= 황제가 되기를) 바라는[欲] 마음이 있었다. ⑧ (서가 있던 곳 가까이) 초의 땅에서(= 초 사람들이) ⑨ 무巫가 ⑩ 귀 같은 사람[鬼]이니(= 무가 귀의 일을 한다고 여기니) ⑪ 서胥는 ⑫ 여자 무巫인 이여수李女須를 맞아들였다[迎]. ● (서가) ⑬ (이여수에게) 시키니 ● (이여수에게) ⑭ 내려온[下] 신神이 ⑮ 기뻐하며[祝] (서가 기뻐할 것을) 말하였다[詛]. ①始②昭帝時③胥●見④上⑤年少⑥無子●有⑦覬欲心⑧而楚地⑨巫⑩鬼⑪胥⑫迎女巫李女須●⑬使●⑭下神⑮祝詛
여기의 祝에 이어지는 저詛는 祝를 대신하는 글자 呪와 더불어 쓰여 저주詛呪라는 익숙한 단어를 이루는 것입니다. 때문에 쉽게 저주하였다고 해석하는 것이 좋겠지만 위와 아래에서는 그 뜻을 굳이 풀어 기뻐하였다[祝]와 상대가 기뻐할 일을 거듭하여 이야기하였다[詛]로 풀었습니다. 그러한 까닭은 바로 이어지는 구절들 때문입니다.
한서 무오자전의 이어지는 구절들은 이 이야기를 더 자세히 적었습니다. 이여수가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에게 내려오는 신神이 이미 죽은 무-제라고 하였고[X-3-(2):①-④], 가까운 사람들이 무-제 - 실은 이여수 - 에게 몸을 굽히고서 서가 황제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하였다[X-3-(2):⑤-⑨]고 적었습니다. 이어 서가 여러 차례 이여수에게 돈을 내려주며 시키니 이야수는 서가 기뻐할 것들을 무-산에 빌었다[X-3-(2):⑩-⑬]고 적었습니다.
X-3-(2) 한서 무오자전: ① (이)여수가 ② 눈물을 흘리며[泣] ● 말하기를 "③ 무-제[孝武-帝]가 ④ 나에게 내려온다."라고 하니 ⑤ 가까운 사람들[左右]이 ⑥ 모두 ⑦ (이여수에게 몸을) 굽히고[服] ● 이야기하기를 "⑧ 우리[吾]는 ● 반드시 ⑨ 서胥가 천자天子(= 황제)가 되도록 하겠다[令]."라고 하였다. ⑩ 서胥가 ● 많이 ⑪ (이)여수에게 돈을 내리고 ⑫ (여수에게) 시키니 ● (이여수가) ⑬ (서가 기뻐할 것을) 무-산[巫-山]에 바랬다. ①女須②泣●曰③孝武帝④下我⑤左右⑥皆⑦服●言⑧吾●必⑨令胥爲天子⑩胥●多⑪賜女須錢⑫使●⑬禱巫山
그리한 뒤에, 한서 무오자전은 이어 소-제가 죽자 서가 이여수를 좋은 무라고 여기고는 그가 바랬던 것을 갚았다[X-3-(2):①-④]고 적었습니다. 이 일을 한서 소제기 원평 02년 04월 기사는 소-제가 미앙-궁에서 죽었다[Z:①-②]고 적었는데, 곧 시기는 MC-73/04에 해당합니다. 이 일이 서에게 이여수를 믿도록 하였으니, 이여수가 서에게 와서 일한 시기는 서가 그것 때문에 소-제가 죽었다고 여길 만큼, 그리 오래 앞서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X-3-(3) 한서 무오자전: ① 소-제의 죽음[崩]을 만나자, ② 서胥가 ● 말하기를 "③ (이)여수는 ④ 좋은 무巫다."라고 하고 ⑤ 소를 죽여 ⑥ (서가 기뻐할 것을) 바랬던 것[禱]을 갚았다[塞](= 바랬던 것에 보답하였다) ①會昭帝崩②胥●曰③女須④良巫也⑤殺牛⑥塞禱
Z 한서 소제기: (원평 01년) 여름 04월 17일[癸未] ① (소-)제帝가 ② 미앙-궁[未央-宮]에서 죽었다[崩]. (元平元年)夏四月癸未①帝②崩于未央宮
한서 무오자전은 이어 황제 자리가 창읍-왕에게 돌아갔다[X-3-(4):①-②]고 적었으니, 서의 이여수에 대한 믿음은 곧 흔들렸습니다. 그리하여 이어 서는 다른 무巫에게 시켰고 그는 서가 기뻐할 것을 말하였다[X-3-(4):③-④]고 적었습니다.
X-3-(4) 한서 무오자전: 그리고 ① 창읍-왕[昌邑-王]이 ② 불리자[徵](=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 (서는) 다시 ③ (다른) 무巫에게 시켰고 ● (무는) ④ 기뻐하며[祝] 그것[之](= 서가 기뻐할 것)을 말하였다[詛]. ⑤ 뒤에 ⑥ (창읍-)왕이 ⑦ 없어지자[廢](=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자, ⑧ 서胥는 ● 깊이 ⑨ (이)여수 등을(= 이여수, 그리고 다른 무를) 믿었고, ● 여러 차례 ⑩ 돈과 함께 물건들을 내려주었다. 及①昌邑王②徵●復③使巫●④祝詛之⑤後⑥王⑦廢⑧胥●浸⑤信女須等●數⑩賜予錢物
여기의 무巫가 이여수와 다른 이라는 점은, 그 무의 일을 적은 구절들에 이어지는 구절들이 창읍-왕이 물러나자 서가 깊이 이여수 등을 - 곧 이여수를 포함하는 무리를 - 믿게 되었기에 돈과 물건들을 많이 내려주었다[X-3-(4):⑤-⑩]고 적은 것이 보여줍니다. 서에게 있던 무가 이여수 뿐이었다면 여기에 무리를 이르는 등等을 보탤 필요가 없는데, 실제로는 등이 보태어졌으니 여기의 무는 새로 서에게 와서 이여수와 무리를 이룬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한서 오무자전은 다시 선-제가 황제 자리에 올랐다[X-3-(5):①-②]고 적고서는 이어, 서가 선-제를 옛 황태자 - 무-제의 태자였다가 의심을 받아 죽은 유거 - 의 손자이기에 설 수 없다고 하고서 이여수에게 자신을 기쁘게 할 것을 말하도록 하였다[令][X-3-(5):③-⑥]고 적고, 이어 한서 오무자전은 서가 초-왕의 왕후, 그 피붙이인 아우가 아내로 삼은 자신의 딸에게 이야기하였다[X-3-(5):⑦-⑪]고 적었습니다.
X-3-(5) 한서 무오자전: ① 선-제[宣-帝]가 ②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③ 서가 ● 말하기를 "④ (옛) (황)태자太子의 손자가 ● 어찌 ⑤ 돌아와 서도록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 다시 ⑥ (이)여수女須가 앞서와 같이 기뻐하며[祝] (서가 기뻐할 것을) 말하도록[詛] 하였다. ● 또한 ⑦ 서의 딸은 ⑧ 초-왕 연수의 (왕)후 아우의 아내가 되었는데, ● 여러 차례[數] ⑨ 서로(= 서와 서의 딸은) ⑩ 귀신에게 먹이고 남은 것들이 ⑪ 사사로운 글에 오고가도록 하였다(= 글에 적었다). ①宣②帝即位●胥曰②太子孫何以反得立●復⑥令女須祝詛如前●又⑦胥女⑧爲楚王延壽后弟婦●數⑨相⑩餽遺⑪通私書
이러한 일들 가운데 선-제가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일[AA-1:①]은 한서 선제기 원평 01년 07월 기사가 적었으니, 선-제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시기는 MC-73/07입니다. 그리고 서가 글을 오고가게 하였던 딸이 있던 초-왕에 대해, 초-왕이 선-제에게 등돌림을 꾀하였으며 그리하여 스스로 죽은 일[AA-2:①-③]은 한서 선제기 지절 01년 11월 기사가 적었으니, 초-왕이 등돌린 시기는 MC-68/11입니다.
AA-1 한서 선제기: (원평 01년 가을 07월) 25일[庚申] 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元平元年秋七月)庚申①即皇帝位
AA-2 한서 선제기: (지절 01년) 겨울 11월 ① 초-왕 연수延壽가 ② 등돌림을 꾀하였으며, ● 스스로 ③ 죽었다. (地節元年)冬十一月①楚王延壽②謀反●自③殺
한서 무오자전 또한 앞서의 구절들에 이어 이러한 초-왕의 죽은 일[X-3-(6):①-④]을 적었습니다. 이어 글들이 서에게 이르렀지만 - 서가 또한 같이 꾀하였으니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었지만 - 선-제는 조를 내려 서를 다스리지 말도록 하고서는 오히려 물건들을 내려주었다[X-3-(6):⑤-⑨]고 적었습니다.
X-3-(6) 한서 무오자전: ① 뒤에 ② 연수延壽가, ③ 등돌림을 꾀하였음을 따져[坐], ④ 죽임당하니 ⑤ 글들이 ⑥ 잇달아 서에게 이르렀다. ● (하지만) ⑦ 조를 내림이 있어 ● (말하기를) "⑧ (서를) 다스리지 말라."라고 하니, ⑨ 서에게 황금을 (그 일의) 앞, 뒤로 5,000근, 다른 물건들을 아주 많이 내려주었다. ①後②延壽③坐謀反④誅⑤辭⑥連及胥●⑦有詔●⑧勿治⑨賜胥黃金前後五千斤它器物甚衆
그리고서 한서 무오자전은 서가, 한이 - 선-제가 - 황태자를 세웠음을 들었다[X-3-(7):①-③]고 적고, 앞서 서가 기뻐할 것을 말하도록 하였던 일을 그만두도록 하였다[X-3-(7):⑦]고 적었습니다. 선-제가 황태자를 세운 일[AA-3:①]은 한서 선제기 지절 03년 04월 기사가 또한 적었으니 그 시기는 MC-66/04입니다.
X-3-(7) 한서 무오자전: ① 서胥가 ● 또한 들으니, ② 한漢이 ③ (황)태자太子를 세웠다, 고 하니 ● (그리하여) ④ 희姬(= 따르는 여자) 남南 등에게 일러 ● 말하기를 "⑤ 나는 ● 끝내 ⑥ (황제로) 설 수 없구나."라고 하였으며 ● 이어 ⑦ 그만두고 (기뻐할 것을) 말하도록 하지[詛] 않았다. ①胥●又聞②漢③立太子●④謂姬南等●曰⑤我●終⑥不得立矣●乃⑦止不詛
AA-3 한서 선제기: (지절 03년) 여름 04월 06일[戊申] ① 황태자를 세웠다. (地節三年)夏四月戊申①立皇太子
곧 MC-66/04에 이르러 서는 기뻐할 것을 말하도록 하는 일을 그만두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앞서와 달리 그 주어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 그만두도록 한 것은 이여수였을까요, 아니면 다른 무巫였을까요? 이제 그저 지나쳐왔던 앞서 이야기들을 거슬러 올라가며 살펴보아야 할 곳에 이르렀습니다. 가 봅시다.
앞서 적은 바와 같이 서가 선-제의 자리를 바라고 있으며 이여수에게 그것을 이루도록 시켰음을 서는 초-왕 왕후의 아우의 아내가 된 자신의 딸에게 글로 알렸습니다. 선-제에게 등을 돌린 초-왕이 다스려진 뒤에 서 또한 다스리기를 바라는 주장이 선-제에게 올라온 것은 그러한 글들이 왕후 가문에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그러한 글에 적은 서의 뜻을 직접 들어 말할 수 있는 이여수가 서에게 남아 있었다면, 선-제는 조를 내려 서를 다스려야 마땅합니다. 그렇지만 선-제는 그러는 대신 물건들을 주어 서를 달래도록 하였으니, 곧 서의 뜻을 말해줄 이여수가 이 때 서의 가까이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여수가 서의 곁에 없던 것은, 서가 이여수와 다른 무巫 같은 사람들을 통해 일을 이루는 것을 더이상 할 수 없다고 여겨서였을까요? 그렇지 않으니, 이 점은 앞서 살핀 한서 무오자전의 구절들 가운데 선-제가 황태자를 세우고서야 서가 비로소 그런 일을 그만두도록 한 것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다음 구절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곧 앞서의 일을 적고서, 한서 무오자전은 뒤에 서의 아들 남리-후 보가 사람들을 죽이고 자리를 빼앗겨 광릉-국으로 돌아와서는 서의 희와 통하다가 옥에 갖히고 시장에서 찢겨죽었다[X-3-(7):①-⑪]고 적고, 그 일을 이어받은 위상이 서의 풀밭을 빼앗아 사람들을 돕는 일을 아뢰었다[X-3-(7):⑫-⑯]고 적었습니다. 이어 선제가 그 일을 허락하자 서가 다시 무에게 시켰으며 그리하여 무는 앞서와 같이 하였다[X-3-(7):⑰-㉑]고 적었습니다.
X-3-(8) 한서 무오자전: ① 뒤에 ② 서胥의 아들 남리-후[南利-侯] 보寶가, ③ 사람들을 죽였음을 따져[坐], ④ 벼슬자리[爵]를 빼았기고 ⑤ 되돌아서는[還] 광릉(-국)[廣陵]으로 돌아왔다[歸]. ● (보는) ⑥ 서의 희姬 좌左와 더불어 ⑦ 고쳐[修] 통하였는데[奸], ⑧ 일이 ⑨ 드러나 알려졌고 ● (보는) ⑩ 옥에 갇혔다가 ⑪ 시장에서 찢겨죽었다. ⑫ (위)상相이 ⑬ 그것(= 보의 일)을 이어받고 ⑭ 아뢰어 ● (말하기를) "⑮ (광릉-)왕王에게 사피射陂의 풀밭[草田]을 빼앗아 ⑯ 가난한 사람들을 돕도록 하자."라고 하였는데, ⑰ 아뢴 일이 ⑱ 허락되니[可], ⑲ 서는 ● 다시 ⑳ 무巫에게 시켰고 ● (무는) ㉑ 앞서와 같이 기뻐하며[祝] (서가 기뻐할 것을) 말하였다[詛] ①後②胥子南利侯寶③坐殺人④奪爵⑤還歸廣陵●⑥與胥姬左⑦修奸⑧事⑨發覺⑩繫獄⑪棄市⑫相⑬勝之⑭奏●⑮奪王射陂草田⑯以賦貧民⑰奏⑱可⑲胥●復⑳使巫●㉑祝詛如前
이 때 무巫 곧 이여수와 다른 무가 여전히 서의 곁에 남아있었고, 서는 다시 무에게 시켜 일을 이루고자 하였으니 여전히 무巫를 통해 일을 이룰 수 있다고 여겼고 다만 이여수가 앞서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여겨 그 일을 맡기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MC-66/04에 일을 그만두도록 한 사람이 이 다른 무였으니, 그에게 이여수의 일을 넘긴 시기는 이 시기보다는 앞입니다. 다만, 선-제가 MC-68/11 이여수가 없어 선-제가 서를 다스리지 못한 것을 보면 MC-68/11보다는 뒤였습니다.
이여수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이여수가 사라진 시기는 선-제가 초-왕의 일을 들어 서를 다스리지 못한 MC-68/11보다는 뒤였습니다. 곧 이여수가 사라진 것은 MC-68/11보다는 앞, 서가 일을 시킨 MC-73/07보다는 뒤였는데, 서는 MC-66/04에 다른 무에게 일을 그만두도록 한 것이 보여주듯이 그런 식으로 일이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다고 믿고 다른 무를 곁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여수가 사라진 것은, 창읍-왕의 일로 말미암아 서가 앞서 그러하였듯이 무巫 자체를 의심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서가 곁에 두었던 다른 무가 보여주듯이 서는 이여수라는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그것 만을 의심한 것입니다.
정리하면, 한漢에서 무巫로 여겨진 이여수라는 사람이 MC-73/04 즈음에 무-제의 아들인 광릉-왕 서의 곁에 있었는데, MC-73/07에서 MC-68/11에 이르는 시기에 이르러 무의 일을 할 수 없다는 의심을 받고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여기서 무를 이르는 귀 같은 사람의 귀를 신 같은 사람으로 바꾸면 곧 신선인데, 앞서 그 재주를 적은 바, 신이, 무-제가 내려왔다던 이여수의 모습에서 신선의 재주 가운데 곁가지 재주 - 마술과 같은 눈속임을 떠올리기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달리 이야기하면 위의 내용은 중-국에서 신선의 재주를 지녔던 이-씨 성의 사람이 황제 가문에 - 광릉-왕 서는 당시 황제인 선-제 가문의 사람입니다. - 머물다가 의심받아 떠난 것입니다. 곧 이 이야기는 이제까지 자세히 살펴보았던 바, 삼국유사 감통편이 적고 있는 사소의 이야기이며, 다만 당시의 중-국 곧 한漢의 관점에서 바라보아 전한 바를 적었기에 달리 보인 것입니다.
그러한 달리 보이는 점을 하나씩 이어 보겠습니다. 먼저, 앞서 사소를 이-씨 성이라고 하였으니, 성을 함께 읽으면 이-사소[李-娑蘇]입니다. 이 가운데 娑는 글자는 위의 沙와 아래의 女로 이루어져 있고 따라서 위에서 아래로 사여沙女를 이어 적은 것의 간격이 없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沙는 진-한 곧 신라에서 斯로도 적었는데, 그 소리는 앞 소리에 이어지는 된소리/받침에 해당한다고 앞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구려 무리가 비롯된 곳의 이름을 적은 高에 대해서, '고'라는 현재 소리로 이어진 무리의 옛날 이름은 본래 중-국에서 句로 적었는데, 그 옛 소리는 '구'라는 현재 소리로 이어졌으니 '수'라는 현재 소리로 이어진 須로 중-국에서 적었던 옛 소리는 '소'라는 현재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 곧 蘇의 옛 소리에 가까웠습습니다.
다시 말해, 중-국 곧 한漢에 이르러 사여소沙女蘇가 스스로를 이-씨라고, 곧 그 이름에 붙여 현재의 소리 '이사여소'에 이어진 옛 소리로 스스로를 말했을 때, 현재의 소리 '사'에 이어진 옛 소리는 그저 앞 글자의 받침/된소리로 여겨지고, 현재의 소리 '소'에 이어진 옛 소리는 현재의 소리 '수'로 이어진 옛 소리로 여겨져 李女須로 적힌 것입니다. 그러니 이여수李女須는 본래 이-여수[李-女須]로 이-사여소[李-沙女蘇]를 달리 적은 것입니다.
반면, 진-한에서는 그 성에 해당하는 이李를 널리 드러내어 적지 않았기에 그 성을 빼고 이름만을 사여소沙女蘇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뒤에, 그 가운데 앞 두 글자 사이의 간격이 잘못 들어간 것으로 여기고 한 글자로 합하여 娑로 달리 적게 되어 그 이름이 사소娑蘇로 남게 되었습니다.
곧 사소라고 적힌 선도-산의 성모, 동신 성모는, 진-한을 나와 북쪽의 낙랑-군에, 다시 바다 건너 제에 이르러 앞선 피붙이 이-소군이 남긴 신선의 재주를 얻고서 기회를 보아 MC-73/04 즈음 한漢의 광릉-왕 가까이 자리잡고서 한의 내부 일들에 대해 알고 MC-73/07에서 MC-68/11 사이에 떠나 돌아온 이-씨 성의 사여소였고, 중-국에서는 광릉-왕의 무라고 적었던 이여수였습니다.
나아가, 이여수의 이야기를 사소의 이야기를 함께 더하여보면 광릉-왕 가까이에서 모습을 감춘 이유 또한 자연히 드러나니 그 이유는 바로 아이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가지고 점차 배가 불러오자 서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여수/사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 무巫의 재주를 잃은 것이 아닌지 의심하니, 이여수/사소는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떠났던 이여수/사소는 제에 이르렀으며 다시 바다 건너 낙랑-군을 지나 진-한 양-산-촌에 이르러서는 한에 오고가며 보고들었던 것을 모두 전하였습니다. 그 전한 바로 말미암아 한韓 사람들 가운데 남쪽으로 가서 바다 건너 열도에 이르는 일이 있게 되었고, 진辰 사람들 가운데 길에서 먼저 전해들은 고-허-촌의 소벌도리가 양-산-촌의 알평과 다시 다른 진-한 사람들을 모아서는 함께 첫 우두머리를 세우는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진-한 6촌들의 우두머리들이 모여 왕으로 삼기로 하였던 사소의 아이 - 앞서 내용에 따르면 사여소의 아이라 적어야 하지만, 익숙함에 기대고자 일단 사소의 아이라고 적겠습니다. - 를 중심으로 하여, 사소에 대해 남은 몇 가지 일들과 아이가 왕으로 서기까지의 일들을 자료들을 살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