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2편 진辰 (2) #18

하나의 방邦을 향하여

by 잡동산이

이제 큰 이야기들이 끝났습니다. 이야기한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한에 이르렀던 사람들이 이루어낸 6개 촌들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그곳에서 떠나 낙랑-군을 거쳐 제齊 땅에 이르러서 배운 재주를 가지고서 한漢 황제 가문의 사람인 광릉-왕 서 가까이 머물러서 보고 들은 바를 진-한에 돌아와서 전하였던 사소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소가 전한 바를 전해 듣고서 6개 촌들의 우두머리들이 모이기까지의 일들, 그리고 모여서 왕으로 삼기로 한 남자아이 혁 그리고 모습을 보이고서 같은 날 왕비로 삼기로 하였던 알영의 일에 대해 또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앞서 2장에서 살핀 진-한[辰-韓]에 이르렀던 무리들 가운데 큰 6개 무리들이 촌들을 이루고는 마침내 모여 방邦을 이루기까지의 여러 일들을 살펴 이번 편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렇게 일어난 방邦에 대해서는 4장에서부터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이어갈 것인데, 그 방의 이름이 바로 잘 알려진 신라新羅입니다.


신라는 사량-부가 되는 고-허-촌의 우두머리인 소벌도리가 본래 해당하였던 옛 무리의 이름인 진-국[辰-國]을 달리 적은 것이기도 하니, 그 뒤 신라는, 안으로는 왕의 자리를 두고 여러 무리들이 어우러져 그들이 다스리는 무리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또한 밖으로는 진-국과 마주하였던 한 - 마-한과 변-한 - 뿐만 아니라 예 - 남쪽의 예와 북쪽의 예 - 를 향하여 나아가게 니, 이러한 것들 모두가 뒤이어 이야기할 것들입니다.




그렇게 이야기 것들 가운데 제일 요한 들은, 위에 왕을 두기는 하였지만 실제로 왕의 아래에 어가 따르려고 하지 않았던 우두머리들, 곧 왕과 그를 받드는 우두머리들 사이 있던 남다른 갈등 관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의 왕을 따르기로 함으로써 - 곧 서로 손잡고 함께 하고 있음을 바깥에 보임으로써 - 그들을 따르고 있던 무리들이 그들 사이를 저울질하여 영향서 벗어나는 것을 막고자 하였을 뿐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권위는 - 자신들 위에 왕의 자리가 있다는 점은 - 받아들여 왕에게 주면서도 실질적인 권력 - 뜻에 따라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 - 은 주지 않았습니다. 왕을 세우기로 한 우두머리들이 함께 가졌던 이러한 뜻은 그 뒤에 세워지는 왕이 도읍의 성을 지은 기록에서 엿보이는 바, 수도의 성을 쌓아 그 호를 금-성이라고 하였다[1장 3편 AU-5:①-③]고 적고 있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21년 기사가 그 기록입니다.


1장 3편 AU-5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21년 ① 수도[京]의 성城을 쌓았으며, ② (성의) 호號를 ● 말하기를 ③ 금-성[金-城]이라고 하였다. ((赫居世居西干)二十一年①築京城②號●曰③金城


이것은 왕이 서고 20해가 지나기까지, 왕을 운 6개 촌들의 우두머리들이 왕게 몸을 지킬 성조차 쌓아주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6개 촌들의 우두머리들이 왕에게 실제 힘은 없음을 나타내려 한 것이기도 하니, 그 왕의 상황은, 중-국에서 제 환-공이 일어난 시기 앞뒤로 잘못된 판단으로 그 힘을 쏟아 잃었던 주-왕이 이르렀던 상황 - 권위는 있지만 권력 없던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권위만을 가지고 세워진 새로운 왕은 놀랍게도 20해 조금 지난 시간을 보내고서 성을 쌓을 수 있었데, 이것은 왕이 가진 것, 바로 권위를 가지고서 왕 스스로 써 이루어낸 힘 - 왕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 - 을 한 것이었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란,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 19년 01월 기사는 와서 항복하였다고 적 있는 변-한 사람들[2장 2편 Q-2:①-③]이었습니다.


2장 2편 Q-2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19년 봄 01월 ① 변-한[卞-韓]은 ② 그 국國이 ③ 와서 항복하도록 하였다(= 국을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였다). (赫居世居西干)十九年春正月①卞韓②以國③來降


이것은 사실 보다 앞서 이루어진 많은 흥미로운 움직임들의 결과지만, 그것에 이르도록 하였던 혁의 움직임들과 리하여 뜻하는 바를 이루어낸 과정은 4장에서 신라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 이야기게 될 것입니다. 다만 그러기에 앞서 여기서, 이 일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왕이 주어 유일한 것을 - 왕이라는 자리가 가지는 권위를 - 수단으로 삼아 그러한 힘을 일궈냈다는 점임을 미리 지적해두려 합니다.


왕의 자리가 가지는 그러한 권위는 그 뒤를 이은 왕들에게 이어지며 마침내 왕의 힘이 그 아래, 6개 촌들의 우두머리들을 넘어서며 진정으로 방邦이라 할 수 있는 신라가 자리잡게 됩니다. 그것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왕들이 그 권위를 넘겨주고 받던 원칙 곧 왕위 계승 원리였기에, 뒤에 이어지는 신라의 일들 가운데에서 이것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주목하여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그러함을 살피는 가운데, 혁이 모인 사람들로 말미암아 혁 다음 남해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갈문왕에 대해 또한 주목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과연 어떠한 자리를 가리키는 것인지 이해하여야, 왕들이 가진 중요한 자산이 - 왕이라는 자리가 - 어떻게 힘으로 바뀌었는지 때문에 그러한 자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왕위 계승 원리가 어떻게 바뀌어 갔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점들이 모두 뒤에 살피게 될 것들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짚어보고 4장에서 시작되는 신라에 대한 이야기에서 차례 차례 풀어나갈 것임을 미리 약속하는 것으로, 이번 3장 2편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3장 3편은 앞서 이야기한 3장 1편의 끝에서 이어지는 왜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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