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3편 왜倭 (0-1) #2

아마/한[天]에서 일어난 일들 (2/8)

by 잡동산이

MC-49에서 MC-38 사이에 아마에 머무르던 스사노-오가 처음 아마에 이르렀던 것은 그 아버지 이자나-기의 명령에 의해서였습니다. 곧 앞서 아마-카미들이 이자나-기가 가서 살피도록 하였던 땅, 풍요로운[豊] 아시-하라[葦-原], 1,500(번)[千五百] 가을마다[秋] 빛나는[瑞] 이삭들[穗]이 있던 땅[B-1:③]이 있는지 이자나-기가 확인하였음 - 공功을 이루었음 - 을 아마에 알리기 - 복명하기 - 위함이었습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스사노-오는 보다 앞서 죽은 어머니 이자나-미가 죽기에 앞서 그에게 맡겼고 또한 아버지 이자나-기가 그가 맡아 다스리도록 한 네-쿠니 - 나카-스의 네 - 에 그 뒤 나아가게 되었는데, 그러기에 앞서 아마에 가서 누이 - 히루메 - 를 만나보고자 하여 허락을 받았는데, 이자나-기는 이 때 스사노-오가 대신 아마에 가서 복명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사노-오는 복명하기 위한 - 맡은 일을 마쳤음을 보여주는 - 증거들과 함께 아마로 나아갔습니다.


스사노-오가 신라의 변방 - 당시 변-한이었던 곳 - 에 이르러서 주목을 끌게 되었던 것은, 그가 앞서 이자나-기가 카구츠-치를 벤 뒤에 알게 되었던 우두머리들을 이자나-가 일을 이룬 증거로써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우두머리들 가운데 이자나-기와 카구츠-치의 다음 세대, 스사노-오와 같은 세대인 미카-하야히, 이와-사쿠가 있었습니다.


이자나-기는, 스사노-오와 마찬가지로 아직 주활동시기가 시작되지 않은 우두머리들을 뒤에 아마에 , 자신이 나카-스의 네-쿠니 곧 풍요로운 아시-하라 나카-쿠니에 이르렀음을 여주고자 하여 데리고 있가, 스사노-오가 아마로 떠날 때에 함께 보냈습니다. 이한 우두머리들이 이 때 아마로 건너갔음은 그 뒤 스사노-오와 히루메가 주고받는 이야기에서 보이는 다음 세대의 이름들이 보여줍니다.


그 이야기를 이어가 위해서는, 이자나-기의 일을 복명하기 위해서 스사노-오와 함께 이르렀던 또 다른 증거를 저 이야기하여야 합니다. 보다 앞서 아마에 자리잡으려 하던 히루메가 아우 츠키를 보내 얻으려 하던 그 땅의 곡물이 그것입니다.




이자나-미가, 와시라에 잠시 멈추었던 걸음을 옮겨, 스사노-오가 다스릴 새로운 곳을 찾기 위해 나카-스 네-쿠니에 이르렀다가 카구츠-치에게 죽은 뒤에, 이자나-기가 뒤이어 네-쿠니에 이르러 카구츠-치를 죽인 뒤 그 땅의 사람들이 우두머리로 세웠던 카구츠-치의 아이를 앞서 살폈습니다. 이 아이는 구츠-치의 뒤를 이어 어렸기에[稚 = 若] 사람들은 아이를 와카-무스히[稚-産靈]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을 우두머리로 한 무리는 서 살핀 바와 같이 구츠-치를 죽인 이자나-기를 덮쳐 쫓아낸 여러 무리들 가운데 하나였으나, 멀리 아마에 있던 히루메는 그 관계를 잘 알지 못하고 다만 그 어머니 이자나-미가, 그 뒤에 다시 아버지 이자나-기가 가서 이르렀다 것 만을 알았습니다. 그리여 그곳에 있다고 전해들은 곡물들을 얻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을 이루었음 - 풍요로운 땅에 이르렀음 - 을 복명할 증거로 삼기를 바랬습니다.

그리하여 히루메는, 자신과 같이 그 부모의 공功을 지고 아마에 굳게 자리잡을 수 있, 우 츠키가 열도에 가서 와카-무스히의 곡물들을 얻어오도록 하였습니다. 일본서기가 인용한 어떤 기록 이 때 히루메가 츠키를 보내었던 상대를 와카-무스히가 아니라 우케-모치[3장 1편 B-6:④]라고 적고 있는데, 2명이 같은 사람이라는 점은 앞서 살핀 바 있습니다. 비슷한 소리를 적는 글자로 우케모치를 달리 적으면서 保食이라는 글자를 썼는데 그 뜻은 곧 먹을 것[食]을 지키는 것[保]입니다.

3장 1편 B-6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아마-테라스[天-照-大神]가 ② 아마天의 위에 있으면서 ●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③ 아시-하라[葦-原]인 나카(-스)-쿠니[中-國](= 나카의 물가에 있는 쿠니)에 ④ 우케모치[保食-神]가 있다, 고 한다. ● 마땅히 ⑤ 너 츠키-요미[月-夜見-尊]가 ⑥ (나카-스-쿠니에) 가서 그[之](= 우케모치를) 보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一書曰)①天照大神②在於天上●曰聞③葦原中國④有保食神●宜⑤爾月夜見尊⑥就候之


앞서의 구절들에 이어, 일본서기가 인용한 어떤 기록은 츠키가 - 령하는 글 - 을 받아서는 내려갔다[A-2-(1):①-③] - 이자나-기, 스사노-오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 적었습니다. 츠키는 그곳에서 비로소 네-쿠니와의 관계가 이미 틀어졌음을 알았며 또한 이자나-기가 대접을 받다가 덮쳐졌던 일 또한 았습니다. 어떤 기록은 이어, 츠키가 우케-모치가 있던 곳 - 네-쿠니 - 에 이르렀[A-2-(1):④]고 적었습니다.


A-2-(1)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츠키-요미[月-夜見-尊](= 츠키)가 ② 칙勅을 받고 ③ 내려갔으며, ● 이윽고 ④ 우케모치가 있는 곳[許]에 이르렀다. (一書曰)①月夜見尊②受勅③而降●已④到于保食神


이어 어떤 기록은 우케-모치가 따르던 쿠니와 곁의 우미, 야마에서 - 쿠니 사람들, 우미 사람들, 야마 사람들에게서 - 받은 물건들 츠키를 대접하였다[A-2-(2):①-⑱]고 적었니다. 곧 네-쿠니 사람들은 카구츠-치와 이자나-기 의 나쁜 관계가 이어지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츠키는 이미 이자나-기의 일을 알고 있었기에 그 대접은 오히려 불안게 여겼고, 국 어떤 기록은 이어 츠키가 그 대접을 탓하며 우케-모치를 죽였[A-2-(3):①-⑩]고 적었습니다.


A-2-(2)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우케모치가 ● 이어 ② 머리를 돌려 ③ 쿠니國를 향하니 ● 곧 (쿠니가) ④ 입(= 쿠니에 들어가는 곳)으로부터 ⑤ 밥[飯]을 내어주었다. ● (우케모치가) 또한 (머리를 돌려) ⑥ 우미海를 향하자 ● 곧 (우미가) ⑦ 지느러미가 넓은 것들(= 물고기들), 지느러미가 좁은 것들을 ● 또한 ⑧ 입(= 우미에 들어가는 곳)으로부터 ⑨ 내어주었다. ● (우케모치가) 또한 (머리를 돌려) ⑩ 야마山를 향하자 ● 곧 (야마가) ⑪ 털이 거친 것들(= 짐승들), 털이 부드러운 것들을 ● 또한 ⑫ 입(= 야마에 들어가는 곳)으로부터 ⑬ 내어주었다. ● 무릇 ⑭ 여러 종류[品] 물건들[物]이 ⑮ 모두 ⑯ 갖추어지자 ● (우케모치는) ⑰ 그것들[之]을 많은 상들에 쌓고 ⑱ 그것들[之]을 (츠키에게) 베풀어주었다. (一書曰)①保食神●乃②廻首③嚮國●則④自口⑤出飯●又⑥嚮海●則⑦鰭廣鰭狹●亦⑧自口⑨出●又⑩嚮山●則⑪毛麁毛柔●亦⑫自口⑬出●夫⑭品物⑮悉⑯備●⑰貯之百机⑱而饗之
A-2-(3)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이 때 ② 츠키-요미[月-夜見-尊](= 츠키)가 ③ 화를 내었고 ● 그리하여 ④ 색[色](= 화난 표정)을 지어내어 ● 말하기를 "⑤ 더럽다. ⑥ 지저분하다. ● 어찌 ⑦ 입이 뱉어낸 물건이 ● 감히 ⑧ 나를 돌보도록[養] 할 수 있는가?"라고 하고는 ● 곧 ⑨ 칼을 뽑아 ⑩ 쳐서 (우케모치를) 죽였다. (一書曰)①是時②月夜見尊③忿●然④作色●曰⑤穢哉⑥鄙矣●寧可⑦以口吐之物●敢⑧養我乎●迺⑨拔劒⑩擊殺


그리고서 츠키는 곡물들을 얻지 못한 채 무리가 어지러워진 틈을 타 몸을 빼어 네-쿠니를 떠나서 아마로 돌아왔습니다. 그 결과에 대해, 어떤 기록은 이어 츠키가 히루메에게 명령받았던 일에 대해 알리니 히루메는 우케모치를 죽인 츠키를 탓하며 자리를 떴다[A-2-(4):①-⑩]고 적었으니, 히루메는 이자나-기의 공을 알려 자기 자리를 굳히기 어렵겠다 여긴 것입니다.


A-2-(4)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 그리하고서 ① 뒤에 ② (히루메에게) 복명[復命]하니 ③ 모두 ④ 그 일을 이야기하였다. ⑤ (이) 때 ⑥ 아마-테라스[天-照-大神](= 히루메)가 ⑦ 화를 내며 그 일[之]을 무겁게 여기고 ● 말하기를 "⑧ 너[汝]는 ⑨ 나쁜 카미神다."라고 하고는 ⑩ 기다려[須] 서로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 이어 ⑪ 츠키-요미[月-夜見-尊]와 더불어 ⑫ 1일 낮, 1일 밤을(= 하루를 가야하는 거리를) ⑬ (사이에) 끼고 떨어져 떨어져 머물렀다. (一書曰)●然①後②復命③具④言其事⑤時⑥天照大神⑦怒甚之●曰⑧汝⑨是惡神●⑩不須相見●乃⑪與月夜見尊⑫一日一夜⑬隔離而住


그러나 츠키는 오히려 미리 위험을 알려주지 않은 히루메를 탓할 수 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어떤 기록은 이어 2명이 하루를 가야만 하는 곳에 서로 떨어져 머물렀다[A-2-(4):⑪-⑬]고 적었습니다. 이 일 때문에 아마에 있던 무리들 가운데 히루메를 따르던 무리와 츠키를 따르던 무리는 갈라섰고 그 자취는 뒤에 이어져서 다른 기록들로 나타납니다.


이 때 아마 곧 한韓에서 멀어진 츠키의 무리는 뒤에 다른 무리를 따랐는데, 그 정체를 담고 있는 중요한 단서는 바로 월月입니다. 이 단서에 대해서는 해당하는 시기의 일들과 함께 다시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단 어떤 기록으로 돌아와 곡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요.


그렇게 츠키와 사이가 벌어진 뒤 히루메는 대신할 만한 사람을 골라 다시 네-쿠니에 보내 곡물들을 얻으려 하였습니다. 이어 어떤 기록은 그 사람을 아마-쿠마히토[A-2-(5):③]라고 - 아마를 따르는 곰 같은 사람이라고 - 적었습니다.


A-2-(5)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이 일의 뒤에 ② 아마-테라스[天-照-大神](= 히루메)가 ● 다시 ③ 아마-쿠마히토[天-熊人]를 보내니 ● (아마-쿠마히토가) ④ 가서 (앞서의 일을) 살폈다. (一書曰)①是後②天照大神●復③遣天熊人●④往看之


그리하여 아마에서 건너가게 된 아마-쿠마히토는 열도에 이르러 - 이자나-기, 스사노-오를 만나 - 어떤 기록이 이어 적은 바, 몸소 네-쿠니에 가서 살폈다[A-2-(5):④]고 적었습니다. 그리하고서 어떤 기록은 이어 아마-쿠마히토가 우케-모치가 이미 죽었음을 알았다[3장 1편 B-5:①-③]고 적었는데, 그 일을 적은 아래 구절들은 이미 앞서 와카-무스히와 우케-모치가 같은 사람임을 살피면서 제시하였던 바로 그것입니다.


3장 1편 B-5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이 때 ② 우케모치[保食-神]는 ● 참으로 이미 ③ 죽었다. ... ④ (우케모치의) 눈썹 위에서는 ⑤ 누에고치[蠒]가 났고 ... ⑥ (우케모치의) 배 안에서는 ⑦ 벼[稻]가 났다. (一書曰)①是時②保食神●實已③死矣...④眉上⑤生蠒...⑥腹中⑦生稻


그리고서 어떤 기록은 앞서 구절들에 바로 이어, 아마-쿠마히토가 그곳 - 네-쿠니 - 에서 났던 - 알게 되었던 - 곡물들을 구해서는 가지고 아마로 돌아갔다[A-3-(1):①-③]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히루메가 얻어 가져오려 했던 곡물들과는 다르지만, 함께 이자나-기가 그 일을 이루었음을 보일 수 있는 또다른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이 이미 네-쿠니에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A-3-(1)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아마-쿠마히토는 ② 모두를(= 조[粟], 누에[蠶], 뽕[桑], 피稗, 벼[稻], 보리[麥], 큰 콩[大豆], 작은 콩[小豆]을) 가지고서 ③ 지니고 (아마로) 떠났다. (一書曰)①天熊人②悉取③持去


그 다른 증거란 바로 앞서 이자나-기를 따르기로 하였던 우두머리들이며, 이 사람들은 이자나-기가 풍요로운 아시-하라에 이르렀음을 보았고 그것을 직접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같은 목적을 위한 증거를 - 그 땅의 풍요로움을 보여줄 곡물들을 - 지닌 아마-쿠마히토는 그 땅 사람들을 거느린 스사노-오와 함께 바다 건너 아마로 갔고, 이윽고 그 부모의 공功을 통해서 아마에 더 단단히 자리잡고자 애쓰던 히루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사노-오가 그렇게 사람들을 거느리고서 바다를 건너, 다시 일어난 지 오래되지 않은 신라의 변방을 지나 아마에 이르렀을 때, 그리함을 전하여 들은 히루메는 스사노-오가 기대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를 맞이했습니다. 이 일을 적은 자료에는 한참 뒤, 스사노-오가 아마를 떠나면서 열도에서 데려온 무리들을 히루메에게 맡긴 일이 겹쳐 적혀있는데, 이미 살핀 바 스사노-오가 이른 시기와 떠난 시기에는 간격이 있으니 2가지 일들은 같은 시기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점을 주의하면서 이제 다음 글부터는, 오랜 시간 마주하고 지냈던 적이 없던 2명의 만남을 적은 자료들을 통해 그 둘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에서 아직 끝맺지 않은 곡물들의 이야기도 그 끝에 이어 마무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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