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한[天]에서 일어난 일들 (5/8)
일본서기가 인용한 여러 종류의 어떤 기록들[一書]은 앞서 이야기한 스사노-오와 히루메의 일을 조금씩 달리 적었는데, 그 표현에는 차이가 있지만 흐름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기록들이 적고 있는 아이들의 호號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앞서 살핀 일본서기 본문은 아마-오시-호-미미, 아마-호히, 아마-츠-히코-네, 이쿠-츠-히코-네, 그리고 쿠마노-쿠스히라고 남자아이들의 호들을 적었습니다. 일본서기가 인용한 아래 4가지 어떤 기록들[A-5, A-6, A-7, A-8]은 이러한 호들을 다른 글자를 써서 달리 적었고 또한 일본서기가 적고 있지 않은 이름들을 보태어 적었습니다.
A-5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아이의) 호號를 ● (말하기를,) ② 마사카[正哉] 아카츠[吾勝] 카츠-하야히[勝-速日], ③ 아마-오시-호(-)네[天-忍-骨-尊]라고 하였다. ④ 다음을(= 다음 아이의 호를) ● (말하기를) ⑤ 아마-츠-히코-네[天-津-彦-根-命]라고 하였다. ⑥ 다음을(= 다음 아이의 호를) ● (말하기를) ⑦ 이쿠-츠-히코-네[活-津-彦-根-命]라고 하였다. ⑧ 다음을(= 다음 아이의 호를) ● (말하기를) ⑨ 아마-호히[天-穗日-命]라고 하였다. ⑩ 다음을(= 다음 아이의 호를) ● (말하기를) ⑪ 쿠마노-오시-호미[熊野-忍-蹈-命]라고 하였다. (一書曰)①號●②正哉吾勝勝速日③天忍骨尊④次●⑤天津彦根命⑥次●⑦活津彦根命⑧次●⑨天穗日命⑩次●⑪熊野忍蹈命
A-6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카미 같은 사람의) 호號를 ● (말하기를) ② 아마-호히[天-穗日-命]라고 하였다. ③ 다음을(= 카미 같은 사람의 호를) ● (말하기를,) ④ 마사카[正哉] 아카츠[吾勝] 카츠-하야히[勝-速日], ⑤ 아마-오시-호(-)네[天-忍-骨-尊]라고 하였다. ⑥ 다음을(= 카미 같은 사람의 호를) ● (말하기를) ⑦ 아마-츠-히코-네[天-津-彦-根-命]라고 하였다. ⑧ 다음을(= 카미 같은 사람의 호를) ● (말하기를) ⑨ 이쿠-츠-히코-네[活-津-彦-根-命]라고 하였다. ⑩ 다음을(= 카미 같은 사람의 호를) ● (말하기를) ⑪ 쿠마노-쿠스히[熊野-橡樟日-命]라고 하였다. (一書曰)①號●②天穗日命③次●④正哉吾勝勝速日⑤天忍骨尊⑥次●⑦天津彦根命⑧次●⑨活津彦根命⑩次●⑪熊野橡樟日命
A-7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그리하여 이어 ① 그[之](= 남자)를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② 카츠-하야히[勝-速日], ③ 아마-오시-호-미미[天-忍-穗-耳-尊]라고 하였다. ... ④ 바뀌어 아마-호히[天-穗日-命]를 낳았다. ... ⑤ 바뀌어 아마-츠-히코-네[天-津-彦-根-命]를 낳았다. ... ⑥ 바뀌어 이쿠-츠-히코-네[活-津-彦-根-命]를 낳았다. ... ⑦ 바뀌어 히-하야히[熯之-速日-命]를 낳았다. ... ⑧ 바뀌어 쿠마노-오시-호미[熊野-忍-蹈-命]를 낳았는데 ● 또한 ⑨ (쿠마노-오시-호미를)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⑩ 쿠마노-오시-쿠마[熊野-忍-隅-命]라고 하였다. (一書曰)故因①名之●曰②勝速日③天忍穗耳尊...④化生天穗日命...⑤化生天津彦根命...⑥化生活津彦根命...⑦化生熯之速日命...⑧化生熊野忍蹈命●亦⑨名●⑩熊野忍隅命
A-8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아이 마사카[正哉] 아카츠[吾勝] 카츠-하야히[勝-速日] 아마-오시-호-네[天-忍-穗-根-尊]를 낳았다. ... ② 아이 아마-호히[天-穗日-命]를 낳았다. ... ③ 다음으로 ● (낳은 아이가) ④ 아마-츠-히코-네[天-津-彦-根-命]였다. ... ⑤ 다음으로 ● (낳은 아이가) ⑥ 이쿠-메-츠-히코-네[活-目-津-彦-根-命]였다. ⑦ 다음으로 ● (낳은 아이가) ⑧ 히-하야히[熯-速日-命]였다. ⑨ 다음으로 ● (낳은 아이가) ⑩ 쿠마노-오오-쿠마[熊野-大-隅-命]였다. ①生兒正哉吾勝勝速日天忍穗根尊...②生兒天穗日命...③次●④天津彦根命...⑤次●⑥活目津彦根命⑦次●⑧熯速日命⑨次●⑩熊野大隅命
먼저, 일본서기가 아마-오시-호-미미라는 호를 적은 구절들 앞에는 마사카[正哉] 아카츠[吾勝] 카츠-하야히[勝-速日] 또는 카츠-하야히[勝-速日]를 적은 구절들이 있는데, 그 뜻은 바로잡았고, 내가 이겼고, 이기는 것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앞서 살핀 바 히루메와 스사노-오의 만남이 의식으로 남겨지며 보태어진, 그 의식을 치르는 무대[臺] 위에서 하던 스사노-오의 말[辭]일 뿐입니다.
이어지는 아마-오시-호-미미라는 이름을, 어떤 기록들은 같은 글자로 적거나 호라는 소리를 가진 穗를 첫 소리가 같은 骨 - 소리가 호(-)네 - 로 적었습니다[A-5:③, A-6;⑤]. 또한 그렇게 보태어진 소리 네는 높이는 말로 다른 높이는 말인 미미에 해당하는데, 앞서 骨로 적은 어떤 기록들은 미미를 적는 耳를 적지 않거나[A-5:③, A-6:⑤] 소리가 네인 글자 根로 달리 적었습니다[A-8:①].
그러한 호號 가운데 오시忍라는 글자는, 한참 뒤에 열도에서 남자아이의 후손 호-호테미[火-火出見]가 이르렀을 때 에-시-키라는 우두머리가 그를 꾸며 이르던 글자, 일본서기 무오년 11월 기사가 적고 있는 아마-오시-카미[天-壓-神][B-3:①] 가운데 오시壓라는 글자에 해당합니다. 본래 壓로 적은 누른다는 뜻의 말은, 그것이 꾸미려는 대상이 상대를 누르는 - 상대 위에 서는 - 것을 나타내는 것인데, 그 말을 같은 소리로 가진 다른 글자 忍/穗로 달리 적은 것입니다.
B-3 일본서기: (무오년 겨울 11월 07일) ● (에-시-키[兄-磯-城]가) 말하기를 "(내가) 듣으니 '① 아마-오시-카미[天-壓-神]가 ② 이르렀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戊午年冬十有一月癸亥朔己巳)●曰聞①天壓神②至
그렇기에 첫 글자, 그의 호號 가운데 그가 해당하던 무리를 가리키는 아마天를 제외하고 남는 호穗가 그를 부르던[號] 말입니다. 또한 일본서기의 다른 구절들은 그의 아들을 호-니니키[火-瓊瓊杵-尊][B-4:①]라고 하였으니, 곡물과 관련된 그 호穗라는 말은 또한 같은 소리와 다른 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 호火와도 관련된 것입니다.
B-4 일본서기: (아마-오시호-미미, 치치-하타 히메가) ① 아마-츠-히코[天-津-彦], 히코彦 호-니니키[火-瓊瓊杵-尊]를 낳았다. ①生天津彦彦火瓊瓊杵尊
이 2가지는 그가 누구의 후손이었는지를 드러내어 주는 것입니다. 이삭[穗]은 곡물들에 대한 것인데, 앞서 살핀 바와 같이 곡물들과 관련된 우케무치는 와카-무스히와 같은 사람이고 그런 와카-무스히의 아버지 카구츠-치는 호[火-神]라고 하였으니, 곧 남자아이는 카구츠-치와 그 아들 와카-무스히의 후손이며 곧 와카-무스히가 츠키에게 죽기에 앞서 먼저 낳았던 그의 어린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아마에 이른 것은 스사노-오가 아마로 데려왔기 때문인데, 그가 스사노-오에게 이르도록 할 수 있던 사람은 히루메의 뜻에 따라 네-쿠니로 가서 우케모치 곧 와카-무스히의 상황을 살폈던 바 있는 아마-쿠마히토입니다. 그가 그렇게 데려온 아이는 대를 이어 네-쿠니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던 카구츠-치와 와카-무스히의 피붙이였고, 때문에 스사노-오는 이자나-기의 공을 알리기에 적절하다고 여겨 아마로 데려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호號 가운데 처음의 글자인 아마天이 보여주듯이 그는 어쩔 수 없이 왔지만 결국 아마를 따랐으며 그 무리에 해당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본래 무리 이름호火가 바뀐 호穗에다 높이는 말 미미耳를 더한 호號가, 본래 썼을 이름을 대신하여 전하여지고 있는 것이 보여주듯이, 그는 아마 사람들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점을 보여주는 일들 가운데 한 가지는, 뒤에 자세히 이야기할 일이지만, 백제가 한에 들어와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고, 아마-카미들이 이 사람을 앞세워 다시 아마/한을 떠나 열도로 가고자 할 때 그가 떠나지 않으려 하였던 일입니다. 일본서기가 인용한 어떤 기록은 비妃 하타-히메가 시켜 그가 아시-하라 나카-쿠니로 내려가는데[A-9:②] - 이자나-기가 바다를 건너기에 앞서 이르렀던 - 우키-하시에 이르러[A-9:③-⑥] 나카-쿠니가 바로잡히지 않았다고 하고[A-9:⑦-⑧]는 되돌아 아마에 올랐다[A-9:⑬-⑮]고 적었습니다.
A-9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히루메가) ① (하타-히메에게) 명령하니 ● (하타-히메가) ② 그[之](= 아마-오시-호-미미)를 아시-하라[葦-原] 나카-쿠니[中-國]에 내려보냈는데, ③ 이 때 ④ 카츠-하야히, 아마-오시-호-미미가 ⑤ 아마天의 우키-하시[浮-橋]에 서서 내려다보며 ⑥ 그것[之](= 우키-하시)을 곁눈질하고는 ● 말하기를 "⑦ 저 땅은 ⑧ 아직 바로잡히지 않았다. ⑨ (나를) 기다리지 않고 ● 많이 ⑩ 다투어, ⑪ 눈을 아프게하는 ⑫ 긴 몽둥이 같은[杵] 쿠니國다."라고 하였고 ● 이어 다시 ⑬ (우키-하시에서) 되돌아가 ⑭ (아마에) 올라 ⑮ 모두 ⑯ 내려가지 않았던 상황을 늘어놓았다. (一書曰)①令●②降之於葦原中國③是時勝速日天忍穗耳尊⑤立于天浮橋⑥而臨睨之●曰⑦彼地⑧未平矣⑨不須也●頗⑩傾也⑪凶目⑫杵之國歟●乃更⑬還⑭登⑮具⑯陳不降之狀
아버지, 할아버지가 모두 죽은 곳에 다시 가야하는 것에 대한 거리낌도 함께 한 그의 이러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이 시기 아마-카미들이 아마/한을 떠나 열도로 가는 일은 멈추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뒤에 다시 백제가 마침내 한-왕을 없애고서 - 왕의 호를 더이상 쓸 수 없게 하고 - 점차 위험이 분명해져 다시 아마-카미들이 열도로 떠나고자 하는 상황이 되자, 그들은 결국 그를 대신하여 아들 호-니니키를 앞세우고서 열도로 건너갔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열도에 자리잡고 왜 - 열도에 있던 무리들 모두를 아우르는 대신, 열도 가운데 어떤 장소에 있던 무리를 이르는 - 그리고 일본을 이루어내었습니다. 자리잡는 데에는 스사노-오가 데려온 아이가 명분이 되었기에, 아이를 히루메가 받아들인 일, 아이의 아버지 와카-무스히가 앞서 츠키에게 죽었던 일, 아이의 할아버지 카구츠-치가 앞서 이자나-미를 죽이고 이자나-기에게 죽었던 일들이 모두 전하여 기록에 남은 것입니다.
뒤에 다시 자세히 살피게 될 일들은 최대한 간단히 언급만 하고 지나가려 하였지만, 그래도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일단 이번 글은 여기서 끊고, 호에 이어지는 나머지 4명의 남자아이들 그리고 스사노-오가 아마를 떠나게 된 일에 대해서는 다음 이어지는 글들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