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던 주의 왕, 기-자가 봉하여짐을 받아들였던 주의 왕은 무-왕이 아니라 성-왕이라는 것을 살펴 확인하였습니다. 무-왕 또한 보다 앞서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지만 이 때는 기-자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인데, 뒤에 성-왕이 봉하였을 때는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일이 일어나는 사이에, 어떤 차이가 만들어졌던 것일까요?다시 말해 기-자가 태도를 바꾸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의 답을 찾아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조선과 함께 하는 무리들에 대한 단서를 찾게 됩니다.
그러기에 앞서 말한대로 잠시 숨을 고르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히 상서대전의 잘못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살펴 이해해두려 합니다. 잘못이 비롯되는 과정을 알아두는 것은 다른 잘못을 빨리 알아차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상서대전의 판본에는 적어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두 판본의 상서대전에서 본 글에서 살핀 구절들이 적혀있는 면들을아래에 보였습니다. 각각 자료 1, 자료 2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자료 1: '무-왕이 홍범을(=홍범에 대해) 물었다[武王因其朝而問鴻範]'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는 상서대전
자료 2: '무-왕이 홍범을(=홍범에 대해) 물었다[武王因其朝而問鴻範]'는 구절이 포함되지 않은 상서대전
자료 1에는 앞서 핵심 문자 자료로 제시한 바와 같이, '와서 보았다[來朝]'라는 구절 뒤에 '무-왕이 홍범을(=홍범에 대해) 물었다[武王因其朝而問鴻範]'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 자료 2에는 '와서 보았다'라는 구절 뒤에 '무-왕이 홍범을(=홍범에 대해) 물었다'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우 대개는 다른 자료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한 쪽이 옳고 다른 쪽은 틀렸다는 결론내리기 마련입니다만, 이 자료들에 대해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이 글에서는 앞서와 같이 차이나는 구절에 포함된 '무-왕'이라는 단어가 잘못임을 보였습니다만, 그 단어를 포함한 구절 전체가 잘못임을 보인 것은 아닙니다.
위의 잘못은 두 가지 경우들 가운데 하나를 통해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경우는, 자료 1이 원래 전하던 것이고 차이나는 구절이 누락된 것이 자료 2인 경우입니다. 두번째 경우는, 자료 2가 원래 전하던 것이고 차이나는 구절이 새로 보태진 것이 자료 1인 경우입니다
첫번째 경우라면, 차이나는 구절의 무-왕은 성-왕의 잘못입니다. 무-왕과 성-왕에서 차이나는 글자, 무武와 성成을 살펴보면 그 차이가 成에 잘못된 획들이 보태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래된 글은 죽간 곧 대나무 조각 위에 적히거나 새겨졌습니다. 대나무가 단단하다지만 시간이 지나면 흠집이 나서 없던 획들이 있는 것처럼 보여, 이러한 잘못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두번째 경우라면, 무-왕이라는 단어가 보태진 것입니다. 사기 주본기는 무-왕이 은을 치고서 2년을 지내며 기-자에게 물었다고 하였습니다. 은을 친 해는 무왕 11년이니 2년을 지내면 - 2년째면 12년이지만 2년을 지내고 나서라면 13년입니다. 때문에 13년에 무-왕이 홍범을 물었다고 보았고, 기-자가 방문한 13사 곧 13년이 이 때를 말하는 것이라고 여겨 무-왕이라는 단어를 잘못 보태었던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잘못이 나타나게 된 과정에 대해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다른 잘못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굳이 살펴본 것은, 뒤에 다른 자잘한 잘못들을 알아차리고 바로잡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