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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3편 조선 (2-1) #11

식신息愼과 예[穢/濊] (3/4)

by 잡동산이

기-자가 조선에 와서 사람들을 가르쳤는 이야기 적은 자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동쪽 변방 사람들 가운데 예濊에 대한 것들을 적어놓은 삼국지의 위서 동이전 예편이고, 다른 하나는 한漢이 다스리던 땅, 산, 물줄기에 대한 것들을 적어놓은 한서 지리지입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의 예濊라는 글자는 주서 왕회해편의 예穢라는 글자와 왼쪽의 부수가 다른데, 머물던 곳의 시간적인 변화 - 마지막에 한꺼번에 정리하지요 - 와 관련된 차이입니다. 이 글에서 둘은 같은 무리라고 보아도 괜찮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은 먼저, 기-자가 조선에 왔다[O:①-③]고 적었습니다. 이어 기-자가 8가지 가르침을 지었으며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서 문을 닫아 거는 일이 없어도 사람들이 도적질하지 않도록 하였다[O:④-⑧]고 적었습니다.


O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 ① 옛날[昔] ② 기-자[箕-子]가 ③ 조선朝鮮으로 가기를 끝내고서 ● (조선에서) ④ 8가지[條]의(= 8가지에 대한) 가르침[敎]을 지었고 ⑤ 그것[之]을 가르쳐 ⑥ 문을 닫아 거는 일이 없어도 ⑦ 사람들이 ⑧ 도적질[盜]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①昔②箕子③旣適朝鮮●④作八條之敎⑤以敎之⑥無門戶之閉⑦而民⑧不爲盜


기-자가 사람들을 가르쳤던 일과 그 가르침의 결과를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이 적고 있다는 것은 묘한 일입니다. 기-자와 그 후손들이었던 조선-후에 대하여 적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기-자가 사람들을 가르쳤던 일을 적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점을 고려하고 보면, 기-자가 사람들을 가르친 것이 조선-후/왕이 되기보다 앞서의 일이고 가르친 람들은 예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자가 조선-후로 봉하여진 뒤에 단-군이 장당-경으로 옮겨가자, 기-자는 단-군을 따르지 않고 남은 조선 사람들을 맡아 다스렸만 직접 가르치지는 았기에 그 가르침은 예 사람들을 통해 조선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예 사람들에게서 기-자의 가르침을 전하여 받은 조선 사람들이 한참 뒤에 옮겨가 머물던 곳 다시 그 뒤에 한이 차지하 낙랑-군[樂浪-郡] 조선-현[朝鮮-縣]으로 삼아 다스렸습니다. 그리하여 한漢 사람들이 조선 사람들이 전하던 기-자의 가르침을 알게 되었던 것이, 그것을 한서 지리지가 자세하게 적었습니다.


한서 지리지는 저, 기-자가 조선에 왔다[P-1:③-④]고 적었니다. 그리고 이어 기-자가 사람들을 가르쳐 논밭을 갈고, 누에를 치고, 천을 짜고, 물건을 만들도록 하였다[P-1:⑤-⑥]고 적었습니다.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 이어, 낙랑-군의 조선 사람들이 꺼려하는 8가지를 어기면 어긴 사람들을 골라 어떤 식으로 대하다[P-1:⑦-㉔]고 자세히 적었습니다. 그리하여 어긴 사람들을 더이상 골라내지 않으니 - 어기는 사람들이 없어지니, 문을 닫아거는 일이 없어졌다[P-1:㉕-㉗]고 적었습니다.


P-1 한서 지리지: ① 은殷의 도리[道]가 ② 사그라들었다. ③ 기-자[箕-子]가 ④ (은을) 떠나 조선朝鮮으로 갔다. ● (조선에서 기-자가) ⑤ 예를 갖춤[禮]과 올바름[義]으로 사람들[民]을 가르치니 ● (사람들이) ⑥ 논밭을 갈고[田] 누에를 치고[蠶] 천을 짜고[織] 물건을 만들었다[作]. ⑦ 낙랑(-군)[樂浪]의 조선 사람들은 ⑧ 꺼려하는 8가지[條]를 어기고서는, ⑨ "죽인 사람"을 골라[相] ⑩ 때를 맞춤으로 죽인 일을 갚도록 하였고, ⑪ "상처입힌 사람"을 골라 ⑫ 곡물[穀]로 (상처입힌 일을) 갚도록 하였고, ⑬ "도적질한 사람"을 골라 ⑭ 남자는 ● 모두 ⑮ 그 가문[家]에 들여보내 따르는 사람[奴]이 되었고(=되도록 하였고) ⑯ 여자와 아이는 ● (모두 그 집에 들어가) ⑰ 따르는 여자[婢]가 되었는데(=되도록 하였는데), ● (도적질한 사람 가운데) ⑱ "스스로 갚고자 하는 사람"은 ⑲ 사람마다 500,000이었는데(=500,000을 갚도록 하였는데) ● 비록 ⑳ 벗어나 (갚은) 사람이 되어도 ㉑ 세상 사람들이 ● 여전히 ㉒ 그 사람[之]을 부끄러워하니 ● (그 사람이) ㉓ 시집갈 (나이의) 사람[嫁]이나 장가갈 (나이의) 사람[取]이라면 ㉔ (그 사람과) 짝지우는[讎] 곳[所]이 없었다. ● 이리하여 ㉕ 그(=조선) 사람들에게 ● 마침내 ㉖ 도적질한 사람을 고르지 않아도 ㉗ 문을 닫아거는 일이 없었고(=없어졌고), ㉘ (조선 사람들의) 아내들[婦人]이 ㉙ 곧바르고[貞] 성실하여[信] ㉚ 어지럽거나[淫] 치우치지[辟] 않았고(=않게 되었고), ㉛ 그(=조선의) 논밭가는 사람들은 ㉜ 변두籩豆로 먹고 마셨다(=마시게 되었다). ①殷道②衰③箕子④去之朝鮮●⑤敎其民以禮義●⑥田蠶織作⑦樂浪朝鮮民⑧犯禁八條⑨相殺⑩以當時償殺⑪相傷⑫以穀償⑬相盜者⑭男●沒⑮入爲其家奴⑯女子●⑰爲婢●⑱欲自贖者⑲人五十萬●雖⑳免爲民㉑俗●猶㉒羞之●㉓嫁取㉔無所讎●是以㉕其民●終㉖不相盜㉗無門戶之閉㉘婦人㉙貞信㉚不淫辟㉛其田民㉜飮食以籩豆


이 구절들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의 구절들보다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때문에 세간에서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의 구절들, 예를 들어 O:④-⑧는 P-1:㉕-㉗라는 한서 지리지의 구절들을 옮겨 줄여 적은 것이 아닌가 의심합니다.


그러나 한서 지리지는 이 가르침에 대하여 예라는 무리 이름을 적고 있지 않으니, 그저 옮긴 것 뿐이라면 그 내용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이 아니라 -자와 그의 후손인 조선-후에 적고 있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이 적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현재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으니,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의 구절은 한서 지리지의 구절을 그저 옮겨 적은 것이 아며, 예 사람들이 따로 전하던 이야기를 적은 것입니다.


사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의 구절들을 한서 지리지에 있는 구절들에 맞추어 고치고 또한 한서 지리지의 내용을 보태어 적은 것은 히려 후한서 동이열전 왜편[Q:④-⑥ = P-1:⑤-⑥, Q;⑧-⑩ = P-1:㉕-㉗]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기-자의 가르침은 예 사람들이 전하던 이야기의 내용이었기에 후한서 동이열전 또한 그것을 한편이 아니라 예편에 적었습니다.


Q 후한서 동이열전 예편: ① 옛날[昔] ② 무-왕[武-王]이 ③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다. ● (조선에서) ④ 기-자가 ⑤ 예를 갖춤[禮]과 올바름[義]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니 ● (사람들이) ⑥ 논밭을 갈고[田] 누에를 쳤다[蠶]. ● 또한 (기-자가) ⑦ 8가지[條]의(=8가지에 대한) 가르침[敎]을 만드니 ⑧ 그(=조선) 사람들에게 ● 마침내 ⑨ 도적질한 사람을 고르지[相] 않아도 ⑩ 문을 닫아 거는 일이 없었다(=없어졌다). ①昔②武王③封箕子於朝鮮●④箕子⑤敎以禮義●⑥田蠶●又⑦制八條之敎⑧其人●終⑨不相盜⑩無門戶之閉




앞서 자료들에 따르면, 기-자는 예 사람들을 가르쳐 논밭을 갈고, 누에를 치고, 천을 짜고, 물건을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런데 그러기 위해 기-자는 예를 갖춤[禮]을, 올바름[義]을 가지고 가르쳐야 했으니, 이 일들은 예 사람들이 따르던 식신 사람들 앞서 하지 않던 것들입니다.


예 사람들은 때에 식신을 따르고 있었으니, 주에서 달아나 조선에 들어와서는 예 사람들을 가르쳐 바꾸려 하는 기-자의 움직임을 식신이 모를 수 없습니다. 곧 식신은 기-자가 조선에 있음을 알았으며, 무-왕에게 사신을 보내 축하하면서 기-자의 상황을 지시 전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는 그러나 성주의 모임이 이루어지던 때까지도 라던 바를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성주에서 이루어진 모임에서 예 사람들이 여전히 신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러함에도 식신은 다시 사신을 보냈고, 식신의 사신은 조선에 있던 기-자의 상황을 성-왕에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식신은 어째서,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했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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