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 May 02. 2022

집으로 가자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뒤늦게 눈을 떴다. 지난밤 새벽에 잠든 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오래 잠에 빠지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낯선 허리 통증이 왔고, 그대로 힘없이 한참을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렇게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애써 몸을 일으켜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하고, 쓰레기를 버렸다. 첫끼이자 마지막 끼니를 먹은 시간은 오후 2시쯤이었다.  


그 잠깐의 외출이 너무나 고단했던지, 침대에 잠시 누웠다가 나는 이내 다시 잠에 빠졌다. 꿈에서 나는 회사에도 갔고, 다시 학생이 되기도 했고, 늘 꿈속에서만 만나는 '집'에 갔다. 우리 집에. 나는 공간에 대한 꿈을 자주 꾼다. 공간은 나만의 공간이 아닌 '우리'의 공간이다. 부모님이 계시고 언니와 남동생이 있고 내가 있는 그 집. 그곳에서 생각했다. 조금 이따가, 바다를 보러 가야지. 생각해보니, 꿈속에서 봤던 집 앞 바다의 이미지는 오늘 처음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꿈속에서 한 두 번 본 적이 있는 바다. 꿈에서 만나는 집은, 만날 때마다 새롭고 복잡하고 거대하다. 사실 우리에겐, 그렇게 큰 공간은 필요하지 않은데. 지금 살고 있는 집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내게 공간은 결핍처럼 꿈에서 다가오는 걸까. 오늘은 창밖으로 거대한 테라스가 있었는데 난간이 위험해 보여 나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꿈에서 했던 것 같다.  


다시 눈을 뜨니, 여름이라 해가 남아있는 저녁이었다.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던 오래된 밑반찬들을 정리했다. 엄마의 시간과, 엄마의 정성과, 엄마의 어떤 날들. 나는 거기에 부지런히 먹지 못한 나의 게으름과 그에 대한 죄책감을 함께 쏟아부었다. 나는 왜 이다지도, 엄마에게 좋은 딸이 될 수는 없는 걸까. 늘 엄마가 바라는 삶과 정 반대로만 가는 나의 삶. 그럼에도 엄마는 늘 내게 묻는다. 밥은 잘 먹었어? 아픈 데는 없어? 회사는 잘 다녀왔어? 이번 주에 집에 와. 맛있는 거 해줄게.


내가 한 사람의 아내가 되면,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 나는 엄마가 내게 보여줬던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늘 생각하고 또 대답한다. 아니라고. 나는 그녀보다 더 좋은 아내가 될 자신이 없고, 그녀보다 더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다. 그래서 그녀를 생각하는 내 마음은 늘 아프다. 그녀의 삶이 너무 단조로워서. 그녀의 마음이 늘 어디에 있는지 알기 때문에. 해바라기. 엄마는, 주고도 받지 못할 사랑만 한다.  


오늘은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싶었는데. 몸의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아까운 시간을 다 버린 탓에, 아직까지 한 줄도 읽지를 못했다. 아직은 오늘이 조금 남았으니, 다시 잠들기 전까지는 책을 읽어야지. 그렇게 혼자여서 아픈 밤을 달래 봐야겠다. 그리고 돌아오는 주말엔 집으로 가야지. 엄마가 있는 그곳, 우리 집으로.  



2020.6.28.



작가의 이전글 역사와 건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