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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May 02. 2022

역사와 건축

고등학교  사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국사였고 세계사도 재밌었다. 베스트 프로그램은 역사스페셜. 즐겨보는 장르는 역사드라마였고 역사 기반의 판타지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다소 FM 스러운  성격에 그것은 역사를 지나치게 왜곡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역사드라마도 어차피 상상과 허구, 사실과의 조화로운 픽션일 뿐이다. 진정한 진실은  과거 실제의  장면 안에 내가 있다 할지라도 발견하기 어려울  있겠다. 아마도 보는 시각에 따라 미묘한 다름으로 현존하고 있을 테니까.


역사를 왜 좋아했을까. 나는 그 이유를 나이의 앞자리가 두 번이나 바뀐 이후에나 알게 됐다. 그것은 끝이 정해진 이야기였다. 학계를 뒤집을만한 엄청난 사료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 20년 전 내가 배운 역사를 오늘의 아이들도 배울 것이고 10년 뒤, 20년 뒤, 아마 50년 뒤 존재할 사람들도 같은 이야기를 배울 것이다. 다만 내 삶의 시간이 근현대사의 파트에 가까워질수록 나중에 존재할 사람들이 배워야 할 이야기가 조금 더 많아지는 것일 뿐이다. 끝이 정해진 이야기. 그것은 내게 어떠한 안정감을 준다. 초단위로 요동치는 삶의 요란함 속에서 정해진 이야기에 기댄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곳에 있을 것이고 그렇게, 영원할 것이 아닌가.


지원했던 사학과에는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수능을 보았고 점수에 맞추어 인문계가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과를 선택했다. 그곳은 어떤 면에서는 역사와 닮아 있었다. 고루하고 반복되는 것들을 점차 사랑하면서, 십 대 소녀의 역사를 향한 갈망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가끔, 그런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박물관을 가거나 책을 읽는 것으로 과거의 향수를 추억했을 뿐이다.


이십 대 후반엔 여행을 다녔다. 유럽 중에서도 이탈리아를 특히 사랑했는데 로마는 유물이 길거리에 나뒹구는 도시였다. 한인 숙소로 잡은 곳은 이미 600년이 된 건물이라고 했다. 건물의 외형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고쳐 현대적으로 살게 만든 곳이었다. 그곳을 드나들 때마다 역사의 시간을 오고 가는 느낌이었다. 시간을 만지는 것처럼 나는 자주, 오래되어 보이는 벽체를 손으로 만져보곤 했다. 하필 그땐 부활절 기간이었고, 전 세계 사람들이 작정하고 로마로 몰려들었던 날 중의 하나였다. 처음 목적지는 콜로세움이었는데, 지하철 2호선을 넘어선 인종 간의 대단결과 압사의 위험을 턱끝까지 느끼고 난 후에 곧바로 줄 서는 것을 포기했다. 여기저기서 새치기가 싸움처럼 일어났고 “Shame on you!”라며 거칠게 외치는 남자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굳이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밖에서 보이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압도당했으니까. 마지막 날 가이드와 함께 다른 도시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 나는 잘 알지 못하는 그 낯선 도시를 그저 걸어 다녔다. 모르는 라틴어가 쓰인 신전 앞 광장 계단에 앉아있다가 30분 정도 잠이 든 것 같기도 하다. 햇살은 따사로운데, 생각보다 차가운 공기에 눈을 떴다. 아직 4월이었다. 거리의 상점에서 이탈리아 국기가 선명한 후드티를 사서 몸에 걸쳤다. 해가 저물고, 시간의 도시가 노을에 물들어갔다.


어떤 면에서 로마는, 역사 그 자체였다. 600년은 뭐 게스트하우스로나 쓰고, 천 년이 두 번 바뀌고도 견뎌내어야 유적이라고 칭해주는 시간이 우습고 서사가 무거운 도시였다. 로마는 건축이었고, 건축은 그들의 역사였다. 로마라는 도시를 세운 이들은 탐욕과 환상 속에서도 고작 백 년도 살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지만, 그들이 만든 건축이라는 물성은 시간을 뛰어넘어 내 눈앞에 여전히 단단하게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점차, 만질 수 있는 역사를 사랑하게 되었다.


서른이 넘어서 들어온 회사에서 나는 공간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나이브하게, 어떤 것은 감성적으로, 어떤 것은 지식적으로 써야 하면서 건축에 관한 흥미는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공간과 건축이 좋아졌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건축과에 진학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너무 자주 드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와 삶의 방향을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기엔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질 테니까. 어느 정도는 현실에 타협하면서 꿈도 희망도 반듯하게 접을 줄 아는 나는 서른 중반의 그런 보통의 사람인 것이다. 어느 가수의 가삿말처럼, 나는 고작 이런 내가 되려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파한 건지 그저 초라할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역사와 건축을 사랑하는 이유는 같았다. 그것은 영속성이었다. 그 누구도 일 년 만에 혹은 5-6년 만에 부수고 다시 지을 요량으로 건축을 하진 않는다. 로마의 유적들처럼 천 년 세월은 못되더라도, 최소 3-40년을 위해 사람들을 설계를 하고 땅을 다지고 건물을 올린다. 운이 좋으면 50년, 더 운이 좋다면 100년도 갈 수 있을 것이다. 건물의 나이가 그때가 되면 이미 나는 세상에 없는 사람일 테니 누군가 그것을 잔잔히 모래처럼 부순다 해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존재하는 존재인 순간까지는 그것도 함께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왠지 모르게 마음의 안정을 준다. 마치 끝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처럼.


역사와 건축. 이것을 사랑하는 일은 나의 결핍을 사랑하는 일과 닮았다. 파도치는 삶의 불안을 마주하기 위하여. 사라지는 인연의 슬픔을 닦아내기 위하여. 영혼을 채우고 기쁨을 주었던 재된 감정의 아픔을 견뎌내기 위하여. 닫힌 결말과 낡아진 시간의 흔적을, 쉽게 흔들리고 사라지지 않을 것들을 사랑한다. 그것은, 영원히 떠나지 않을 한 사람. 어쩌면 그런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일과 닿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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