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교수의 에세이를 읽는 중이다. 입에서는 연신, '미치겠다'는 소리가 나온다. 잘 배운 사람들 특유의 위트 있는 글은 나를 미치게 한다. 술도 담배도 아니하고, 딱히 즐기는 여타 취미도 없는 내겐 특히 그렇다.「추석이란 무엇인가?」를 좀 더 빨리 읽었더라면. 오늘 저녁 후 짧은 산책길에서 '나는 손자 손녀도 없는 할머니야.'라며 나른한 일상을 순식간에 위기로 전환시킨 엄마에게, '후손이란 무엇인가?' 혹은 '결혼이란 무엇인가?'의 신성한 주문을 던짐으로써 안전한 자유를 재빨리 되찾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다만, 그 순간 맥락 없이 미안해져서 엄마의 낮은 어깨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자격 없는 사람의 위로를 속삭이듯 전했을 뿐이다.
글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을 따지는 질문이 대게 위기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나는 지금 응당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마땅하다. 글 쓰는 일이란 무엇인가. 블로그란 무엇인가. 브런치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써놓고 보니 열 손가락, 발가락이 불 위의 오징어처럼 오그라드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지만 요즘 나는 분명 흔들리고 있다. 꾸준히 쓰고자 했던 그 욕망 자체에도 의문이 든다. 왜, 무엇을 위해서. 꼭 필요한 메시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쓰기 위해 쓰이는 글들이 50일의 장마처럼 쏟아지는 세상이 아닌가. 그럼에도 어느 방향에서든지, 나는 말라버린 우물처럼 답답하다. 이것 또한 지나가겠으나, 적어도 지금은 그러하다.
202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