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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23. 2020

거짓말을 벗겨볼게요.

자기 방어 언어가 불편해진 9살.

2020년 현재

예준이는 11살이고, 종혁이는 9살이다.



아이들이 밖에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지 않은 지 꽤 됐다. 유치원 다닐 때는 친구들하고 잘 노는지, 위험한 행동은 안 하는지 걱정되어 놀이터에서 지켜서고 있었다.  이제 자기들끼리 알아서 친구하고 약속도 잡고, 들어와야 하는 시간에 맞추어 잘 들어온다. 게다가 놀면서 있었던 얘기도 잘 들려준다.


“엄마, 아까 어떤 아줌마한테 혼났어.”

종혁이가 씻고 나와 옷을 입으면 말을 꺼냈다.

“왜? 무슨 이 있어요? 뭐 잘못했어?”

밥을 준비하다 깜짝 놀라 되물었다. 혹시 무슨 말썽이라고 부리고 다닌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자 들어 봐.”


내가 미끄럼틀을 타려고 올라갔는데. 한, 5살쯤 되는 꼬마애가 앞에서 내려가지도 않고 계속 그 앞에 서있는 거야. 그래도 난 그냥 기다렸어.

마침 꼬마애가 내려가는 거야. 그 애가 다 내려간 후에 나도  미끄럼틀을 탔지. 그런데 그 애가  미끄럼틀에서 비켜나지 않고 그냥 앉아있었어.

그때 내 발이 아주, 사알짝, 그  애 등을 스칠랑 말랑하게 비껴갔어. 그 애는 ‘아’ 소리도 안 냈어.

그런데 그 애 엄마가 나한테 ‘얘, 그러면 안 되지.’하면서 인상을 쓰시는 거야. 뭐. 거기까지는 괜찮았어. 나도 ‘네’하고 다른 데로 갔거든.

그. 런. 데, 그 아줌마가 꼬맹이한테 ‘저 형아 있는 데는 근처도 가지 마.’라고도 얘기하는 거야. 기분이 별로 안 좋았지.

근데 또 그 아줌마가 꼬마랑 집에 가면서 나를 보고 욕했다는 거야. 같이 있던 형이 들었다고 나한테 얘기해줬어.


“정말? 그 아줌마가 정말 욕까지 했데? 뭐라고 욕했다는 데?”

아이의 말을 그대로 다 믿기는 어려웠다. 설마 어른이 그 정도 일로 어린아이한테 그렇게까지 말했을까 싶었다.

“응. 그 형이 들었데.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욕을 했데.”

아이는 사뭇진지했다.

“그래? 그 아줌마 너무했다. 아무리 그래도 욕까지 하고. 아이가 다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 던 것 같은데 말이야. 에이, 아줌마 좀 그렇네. 어른인데, 어린아이한테 그렇게까지 할 게 뭐람.”

나는 아이 편이 되어 그 아줌마를 공격했다.

“그 아줌마 나쁜 사람인 거야?”

아이는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아니,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그렇고, 어린애한테 욕까지 하는 건 너무 했다고.”

내가 너무 아이 편에 들어서 얘기했나? 종혁이는 내 말을 이해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책장에서 책을 꺼내 들더니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잠깐, 아주 잠깐 책을 보는 가 싶더니 다시 방에서 나왔다.


“자, 그럼 거짓말을 벗기고 다시 얘기해볼게요.”


종혁이는 얼굴에 살짝 웃음을 머금은 채, 팔을 활짝 펴 올렸다.

“응? 거짓말을 벗긴다고?”

얘가 무슨 소리를 하려고 하는 건가 싶었다.


내가 미끄럼틀을 타려고 올라갔고, 꼬마애가 안 내려가고 있었던 것 까지는 똑같아.

그런데 꼬마애가 내려가고 내가 바로 뒤따라 내려갔고, 내 발이 그 애 등을 쳤어. 세게 친 건 아니야.

그 애도 괜찮다고 했거든. 울지도 않았고.


“아, 치긴 쳤어? 그렇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지.

그 애가 5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였다면, 그 아줌마가 봤을 때 9살이나 되는 형이 자기 아이를 바싹 뒤쫓아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면서 등을 쳤으니,

당연히 놀라셨겠네.  입장 바꿔서 5살 아이가 종혁이었다면 엄마도 그 아줌마처럼 놀랐을 거 같아. 되게 위험한 상황이 될 수 도 있거든.

어쨌든 그 아줌마도 놀라고 화났을 거 같아서 그렇게 행동하신 게 이해가 되네. 그렇다고 해도 어린애한테 욕한 건 좀 너무 하신 거 같고.

 뭐,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고, 암튼 종혁아 앞으로는 오늘처럼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

아이의 얘길 다시 듣고 그 아주머니의 감정에 대해 이해시켜주었다.


아이는 알겠다고 했고, 그제야 맘이 편해진 듯했다.


자기 방어의 언어로 자신을 포장하며, 자기의 편이 되어주었으면 하던 9살 아들이,

이제 자기의 말로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편치 않음을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가나 보다.  


세상이 멈췄다 움직였다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래도 너희는 꾸준히 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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