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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Feb 19. 2021

[오늘을 남기다] 도대체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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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건강검진 때 갑상선 검사를 생전 처음 받았다. 초음파로 검사를 했고, 다른 곳 검사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그런데 검사하는 내내 선생님이 계속 숫자를 언급했다. 마치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아이 정강이, 종아리 길이, 머리 둘레를 재고 알려주던 선생님 같았다. 하지만 느낌이 싸했다. 내 목에 뭐가 이리 많이 있지?


그로부터 3주 뒤 결과지를 받았다. 갑상선에 크고 작은 결절이 3~4개 정도 있으니, 병원에 가서 재검을 받으라고 했다.

뭐 별일 있겠어? 조금 긴장은 됐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하니 동네 작은 병원을 예약해서 갔다. 보통 이렇게 오는 환자들이 많아서였는지, 의사 선생님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면서 화면을 보고 천천히 설명해주셨다. 그러다 목 오른쪽에서 선생님의 손이 오래 머물렀다.

“아, 이건 조금 사이즈가 있네요.”

선생님은 결절의 사이즈를 재고도 여러 번 확인하셨다.

“음. 이건 조직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네요. 사이즈가 많이 큰 건 아닌데, 좀 단단해 보이고, 석회질이 있는 거 같았어요.”


그렇게 재검하러 간 그날 바로 조직검사를 했다. 결과는 일주일 뒤에 전화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머릿속은 하얘졌지만,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담담하게 차의 시동을 켜고 운전을 했다. 아침에 남편에게 오늘 병원 갔다 올 거라고 얘기를 했는데, 아직까지 연락 한통 없는 남편이 서운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이런 마음이 안 들었겠지만, 불안한 마음이 생기니 괜히 심통도 났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남편에게 전화했다.

“여보, 바빠?”

“아니, 괜찮아? 왜? 무슨 일 있어?”

“나, 지금 병원 갔다 오는 길이야.”

“아, 병원 간다고 했지? 뭐래? 괜찮데?”

“잘 모르겠어. 조직 검사했어.......”

 말이 안 나왔다. 당장 결과가 안 좋게 나온 것처럼 눈물만 쏟아졌다. 목에 마취를 하고 날카로운 침이 살을 뚫고 들어갈 때부터 혼자 병원에 온 걸 후회했고, 이제서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니 서러워졌다.


5일 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갑상선 암이라고 결과가 나왔네요.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요즘은 100% 완치 가능한 암인 거 아시죠? 다음 주에 보호자 분하고 다시 방문해 주세요. 자세히 설명해드릴게요. 그리고, 어디서 수술하고 싶으신지 미리 좀 알아봐 보세요. 저희가 예약 대신해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더욱이 시아버님 생신으로 시댁에 와 있었다. 남편한테만 얘기를 하고, 우선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남편도 아무 말도 안 했다. 아이들이 함께 차 안에 있어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마디라도 잘 못 나왔다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 놓고 눈물을 쏟을 수 없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며 입술을 깨물고 울었다.


갑상선이 어떻게 생겼는지, 내 몸속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지냈다. 손발이 차갑고, 자주 체하는 거 외에는 몸에 증상이라고 할 건 없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손발이 차가워진 것도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그런 거고, 자주 체하는 것도, 생리 때가 되면 빈번했으니 이것도 암에 의한 증상은 아닌 것 같았다.  

검색을 해보니 몸이 자주 피곤하고 목도 감기 걸린 것처럼 아프다고 한다. 하지만, 내 주위에 피곤하다고 안 하는 사람이 없고, 몇 명 되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습소를 하니 말을 많이 하고 목이 칼칼한 느낌은 늘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뭐가 잘 못돼서 나한테 암이 생긴 걸까?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갑상선 암은 완치율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수술만 하면 괜찮다고 한다. 하물며 착한 암이라고 한다.

하지만, ‘암’이라는 말을 들은 본인은 괜찮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아무 증상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부터 몸이 더 무거운 거 같고, 피곤한 거 같았다. 매일 그리던 그림도 멈췄고, 매일 쓰지는 못하지만 꾸준하려 노력했던 글도 못 썼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도 힘들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생활하는 것도 어렵다.

‘암’이라는 단어의 힘은 암세포만큼 강한 것 같았다.


가까운 대학병원에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 날짜가 생각보다 늦게 잡혔다. 예약도 많았고, 수술을 급하게 할 만큼 진행이 빠른 병도 아니라고 한다. 수술하고 몸조리하고 회복하는데 올해는 다 갈 것 같다.

예정되어 있던 올해의 일정들을 하나 둘 취소하고, 아이들과 하던 수업도 멈췄다. 그러고 나니 더욱 공허함이 커졌다. 몇 날 며칠을 책만 보고 낮잠 자면서  보냈다.

아직 수술까지 한 달 반이 남았다. 생각보다 하루는 빠르게 지나갔다. 하루를 내가 보내는 게 아니라. 혼자서 그냥 쑥 지나가 버렸다. 다들 편히 쉬라고 하는데 이러고만 있는 건 그다지 편안하지 않았다.  


아침에 아는 동생이 전화를 했다. 혹시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있다고 했다. 놀라며 위로를 했다.

“도대체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이런 일까지 생겼을까요? 언니 너무 걱정 말아요. 다 잘 될 거니까. 수술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니 잘 먹고, 운동도 조금 하면서 지내요. 수술하기 전에 얼굴도 보여주고.”

그 동생은 나보다 10살이 어리다. 그 친구가 던진 이 한마디 말이 가슴에 쏙 안겼다.

도대체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그러게 왜 저렇게 생각은 못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락가락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은 결심한다.

다음에 어디에서 올지 모르는 좋은 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다고.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용기를 준 친구한테 감사하다.  

20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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