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Feb 26. 2021

[오늘을 남기다] 진정한 내 친구

우린 이렇게 깊어진다.

남편은 매일 일기를 쓴다. 잠들기 전, 침대에 기대어 핸드폰에 깔린 다이어리 앱에 하루를 정리한다. 예전에는 노트에 썼었는데, 이제 이 앱이 정말 편리하다며 쓸 때마다 내게도 추천을 해준다. 일기에 쓸 내용이 없을 때는 생각할 거리를 하나씩 던져주어 글감도 제공해준다고 한다.

나도 매일 한두 줄의 메모라도 하고 잤었는데, 마음이 복잡하고 몸이 지쳐가면서 일기와 거리가 멀어졌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정리하는 걸 피하게 됐다. 남편은 이런 내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자기가 쓰고 있는 일기 앱, 메모 앱, 스케줄 관리 앱을 자주 얘기해준다. 그 앱들을 몰라서 안 쓰는 건 아닌데 말이다.


오늘도 남편은 침대에 누워 일기 앱을 켰다.

“여보는 ‘진정한 친구’란 뭐라고 생각해?”

일기 앱에서 준비한 오늘의 글감인가 보다.


“진정한 친구......”

남편의 질문에 눈을 감고 친구들을 떠올렸다. 일 년에 한 번 통화를 해도 어제 본 것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은 친구, 좋은 그림, 좋은 글을 공유하고 싶은 친구,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픈 일에 함께 울어주는 친구. 내 머릿속은 그런 친구를 하나 둘 찾고 있었다.


남편은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와 요즘 많이 소원해졌다. 그게 속상했는지 친구 이름 뒤에 욕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매일 퇴근은 늦고, 주말 중 하루도 출근을 하고 남은 하루는 아이들과 보내니 친구를 챙겨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남편은 잠시 핸드폰 키판을 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남편의 팔을 잡았다.

“아! 나는 진정한 친구 생각났어.”

“누군데?”

“여보~ 으흐흐흐”

으~ 살짝 닭살 돋았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서로에게 좋은 일 있을 때 누 구보다고 기뻐해 주고, 요즘처럼 힘든 일이 있을 땐 누구보다 힘이 되어 주는 사람.  평생을 함께 할 진정한 내 친구.


꽃은 마르면서 색이 더 깊어지고 향이 그윽해진다.

우리는 한창 싱싱할 때 만나 이렇게 깊어지고 있다.


2021. 2. 26


 

.

   


   



  

  


 




작가의 이전글 [오늘을 남기다] 도대체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