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Mar 17. 2021

엄마, 빨래 더 없어요?

게임 시간의 노예(?)

2021년 현재

예준이는 12살, 종혁이는 10살이다.


 아이들이 매일 단 10분이라도 게임을 할 수 있게 된 건 아마 작년 하반기부터였을 거다. 그전에는 주말에만 게임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나도 힘들고 아이들도 지쳐서 어쩔 수 없이 찾은 대책이 조건부 게임 시간을 주기로 했다.

 우선 그날의 학습을 9시까지 끝내면 게임 시간 15분! 주말에만 할 수 있던 게임을 평일에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들들은 신나서 문제집들을 풀어치웠다. 물론 며칠만 그랬다. 이 패턴이 익숙해지자 자기들 나름대로 시간 계산을 했다. 핑핑 놀다가 마감 시간에 닥쳐 급하게 해치우거나, 시간을 못 맞춰 늦어지면 게임을 못 하게 됐다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너희 오늘은 게임 안 할 거야?”

내 입에서는 ‘너희 9시 전까지 숙제 안 끝 낼 거야!’라는 말을 돌려서 얘기하는 잔소리가 추가된 거다. 이거야 원! 조금 편해지고 싶어서 한 짓이 오히려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가중됐다.

  “자신이 한 행동은 생각 안 하고, 게임 못했다고 울면 이제 앞으로 평일에 게임은 없을 줄 알아!”

 난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흠.

그래도 이 제안이 먹혀들어 아이들은 눈치껏 문제집도 풀고 혹시 게임을 못 하게 되더라도 아쉬워하며 넘겼다.


 코로나로 학교도 못 가고 온라인 수업만 하다가 그마저도 끝. 긴 겨울 방학이 시작된 것이다. 학원도 안 가고, 학교 수업도 없다. 아이들의 숙제는 오전이면 끝났고, 잠깐 책 읽다가 밥 먹고, 둘이 놀다가 밥 먹고, 싸우다가 밥 먹고, 그리고 잤다.

 지루한 일상에 지친 예준이가 제안을 해왔다.

 “엄마, 게임 시간을 벌 방법이 없을까? 뭐, 분리수거를 한다거나, 빨래를 갠다거나. 빨래 개면 10분 어때요?”

 빨래 개면 10분, 음, 괜찮은 제안이었다. 건조기를 사면 마른빨래 정리가 쉬운 줄 알았는데, 이놈에 게으름 때문에 건조기에서 나와 옷장으로 들어가기까지가 참 쉽지 않다. 그걸 알고 제안을 한 건지 예준이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음, 좋아. 빨래 다 개고 옷장에 정리까지 10분.”

 아이들은 ‘앗싸’하며 건조기 안에서 몇 시간째 갇혀 식어버린 빨래를 꺼냈다. 그리고 두 녀석이 같이 개기 시작했다. 아직 손놀림이 여물지 않은 종혁이는 수건만 몇 개 개더니 못하겠다고 물러났다. 반면 예준이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 제법 야무지게 갰다. 이렇게 방학 기간 동안 내내 빨래는 예준이가 갰다.   


 드디어 개학. 하지만 학교 가는 날은 달랑 이틀이다. 그래도 개학했으니 이제 평일에 게임을 하는 건 그만두자고 했다. 아이들의 반발이 거셌다. 그냥 그전처럼 유지해주었으면 좋겠다며, 빨래를 계속 개고 싶다고 했다. 살짝 고민이 되었다. 두 달가량 빨래 개는 일은 모두 예준이 차지여서 편했었다. 그리고 게임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숙제를 어떻게든 9시 전에 끝마치려는 아이들 덕분에 잔소리가 줄어 편했다. 좀 치사하지만, 게임 시간으로 아이들을 조종하며 수혜를 입은 건 사실이다.  

 “알았어. 한 번 해보자.”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기존 상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예준이의 빨래에 대한 집착이 커지고 있다. 이건 바꿔 말하면 게임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수업이 끝나면, 빨래가 다 됐나하고  건조기로 먼저 달려간다. 학교에서 돌아 와서는 가방 벗고 건조기로 가서 빨래를 확인한다.


 오늘은 빨래 바구니에 쌓여있는 빨래를 보더니,

 “엄마, 빨래는 그냥 세탁기에 넣고, 세제 넣고, 그냥 플레이 버튼 누르면 되는 거 아닌가?”

 “응, 그렇지. 왜?”

 예준이는 빨래를 세탁기 속에 집어넣더니, 세제를 확인하고, 세탁기에 넣으려고 했다.

 “어, 어, 예준아! 빨래를 그냥 무턱대고 넣으면 안 돼! 흰옷은 따로 해야 한다고! 그리고 세제도 나눠서 넣어야 하고!”

 세탁기에 이미 들어간 옷들을 확인하니 다행히 흰옷은 없었다. 어휴, 할 수 없이 세탁 통에 세제 넣는 것까지 알려주었다. 예준이는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세탁기가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빨래도 쉽네.”

 예준이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바닥을 탁탁 털었다.


이제 게임 시간을 벌기 위해 빨래까지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세탁기 돌리는 일도 덜었다.

 예준이가 자꾸 게임 시간에 노예가 되어가는 것 같다.

 이러면 안 되는 거 같은데, 이상하게 내가 점점 편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짜 사랑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