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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y 20. 2021

환상적인 기타야. 조금만 기다려다오.

 2021년 현재

예준이는 12살, 종혁이는 10살이다.

종혁이가 7살 무렵에 뜬금없이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 어린 눈에도 기타 치고 노래하는 가수가 멋있어 보였나 보다.
 작은 손가락으론 아직 어려우니 피아노를 먼저 배워 악보를 익혀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8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작년에는 거의 못 갔으니 제대로 배운 건 1년 정도다.

며칠 전,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ㅡ 엄마~  나 기타 배울래~ 피아노 선생님이 기타 배우고 싶은 말하라고 해서 한다고 했어. 어차피 나는 기타 치는 거 배우려고 피아노 학원 다니는 거잖아~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쏟았다.

ㅡ아, 그래? 잘됐네~ 알았어. 엄마가 선생님하고 통화해볼게.
종혁이의 반짝이는 눈에 내 입꼬리도 덩달아 올라갔다. 배우고 싶은 것에 저렇게 흥분하는 아이가 기특했다.

저녁 무렵 피아노 선생님하고 통화를 했다.
기타 수업은 학원 다니는 친구들 대상으로 외부 강사가 와서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2인 1조로 구성해서 일주일에 2번 1시간씩, 피아노 수업이 끝나고 기타 수업을 바로 한다고 했다.
그럼 일주일에 2번은 태권도, 피아노에 기타까지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5시가 넘게 된다. 워낙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 놀 시간이 줄어들게 될 텐데 괜찮을까 싶어, 우선 아이에게 다시 물어보고 확답을 주기로 하고 끊었다.

종혁이에게 기타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놀 시간이 줄어들 텐데 괜찮겠냐는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혹시 너무 깊은 고민에 빠질까 봐. 노는 것보다 뭐라도 배웠으면 하는 애미 욕심에.


아이에게 어찌할 건지 물었다. 아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ㅡ당연히 해야지. 내가 기타를 얼마나 배우고 싶었는데.

제법 의젓한 대답을 했다.

ㅡ알겠어. 내일 엄마가 선생님한테 말씀드릴게.

이렇게 기타 수업 얘기는 끝을 냈다.


그런데...
저녁을 먹으면서 밥을 입에 넣고 한참을 오물거리더니

ㅡ 엄마, 기타 하는 날은 5시 넘어서 끝나겠네. 그럼 집에 오면 5시 20분이겠고, 숙제 조금이라도 해야 밖에서 놀 수 있잖아. 숙제하고 나면 6시 다 될 텐데 그럼 언제 놀아. 놀 시간이 없어지는 거 아냐?

눈을 위로 향해 치켜뜨고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말했다.

ㅡ 그래도 네가 배우고 싶었던 기타를 배울 건데 일주일에 2번 정도는 괜찮지 않아?
나는 살짝 긴장하고 조심스럽게 달래듯 말했다.

ㅡ에이, 그럼 안 되겠네. 그냥 기타는 좀 더 나중에 배울래.

당연히 배우겠다고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때와 마찬가지의 속도로 그럼 안 되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고는 이제야 마음이 편해졌다는 듯 밥을 꿀떡꿀떡  삼켰다.

띠로리~ 기타 배울 수 있다고 설레 하던 그 눈빛은 어디로 간 거니? 이 어이없음을 우짤까. 살짝 고민된다는 듯 말을 했다면 달래 보기라도 할 텐데, 이건 뭐 너무 단호하시니 존중해줄 수밖에!

 아직 배움보다는 노는 게 먼저인 나이긴 하다만 엄마는 아쉬웠다. 그래서 굳어버린 기타 수업료로 중고 기타를 하나 사주었다. 정식으로 배우기 전에 만져보고 튕겨보라고. 그러다 보면 노는 것보다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다.

종혁이는 기타를 끌어안고 팔짝팔짝 뛰었다. 들고 있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기타를 품에 꽉 끼고 한껏 폼을 잡았다. '이렇게 좋아하면서 그냥 좀 배워보지.' 아쉬운 마음에 속으로 꿍얼거렸다.

ㅡ혼자 배워봐. 엄마가 내일 도서관에서 책 빌려올게.
ㅡ엄마, 기타 소리 정말 환상적이야!!
내 말은 듣는 건지 마는 건지 기타 줄만 쓸어내린다. 으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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