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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ug 06. 2021

엄마의 마흔, 나의 마흔

 41살 어느날, 문득.

© Clker-Free-Vector-Images, 출처 Pixabay


 내 기억 속의 엄마의 첫 나이는 42살이었다. 내가 10살 때이다. 친구들이 엄마의 나이를 얘기하는데, 난 한 번도 엄마의 나이를 궁금해하거나 물어본 적이 없어서 그날 밤에 엄마에 처음으로 물었던 것 같다.  


 42살의 엄마는 강하셨다. 초, 중, 고에 다니는 자식 셋을 키우면서 동네 숟가락 공장에서 일하셨다. 매일 무거운 걸 들어 나르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셨다. 또 3층 다가구 주택의 주인아주머니로 세입자들의 불만과 맞서 싸우기도 하셨고, 너무나도 자주 고장 나는 보일러, 툭하면 터지는 하수도에 스트레스를 받으시며, 수리공 아저씨들과 적당한 타협을 하셨고, 그러면서도 절대 목소리에서 힘을 빼지 않으셨다. 물론 엄마가 이렇게 생활하실 수밖에 없는 데에는 아빠의 책임도 있었다. 아빠는 3교대 일을 하신다는 이유로 집안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 셋을 키우면서 큰 집을 건사하며 얼마나 고되셨을까 안쓰럽다. 하지만 어린 나이의 나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엄마의 목소린 왜 저렇게 클까? 엄마 왜 저렇게 매일 화만 내실까? 오히려 억척스러워 보이는 엄마가 부끄러웠다.




 그런데 내가 엄마의 나이 언저리에 와있다. 나의 마흔 살은 엄마와 다르다. 우선 환경적으로 매우 다르다. 나는 아이들만 키우면서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고, 오롯이 우리 가족만 생각하면 되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감정이 삐딱선을 타지 않는 한 괜히 누군가와 싸울 일도 없다. 남편도 일은 바쁘지만, 쉬는 날이면 집안일도 제법 잘 도와주는 자상한 사람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살아지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힘든 게 많고, 어려운 게 많아 그걸 스트레스라며 힘겨워하고 있다.  


 문제는 나이는 마흔인데, 나의 신념, 이상향은 아직도 20대라는 거다. 가장 어른인 척하고 싶었던 20대, 사회생활을 조금 해봤다고 인생의 득도라도 한 듯 나름 신념까지 굳건했던 때.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는 살짝 마음의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머릿속 생각에는 크게 변화가 없는 것 같다. 누군가 ‘몇 살이세요?’ 하고 물어본다면, ‘26살이요.’라고 대답할 것만 같다.


 머리카락은 자꾸 새치가 올라와 염색하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머릿속은 여전히 20대이다. 언제쯤 벗어나 마흔 살 다운 생각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 이것도 자꾸 연습을 해야 하는 건가? 그렇다고 엄마처럼 힘겹고, 억척스러워지는 걸 말하는 건 아니다. 어린 생각에서 벗어나 혼자 무언가 고심해서 현명하게 결단하고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가끔 엄마와 영상 통화를 한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그런지 가끔 보는 엄마의 주름은 전화할 때마다 점점  깊어지는  같다. 얼굴을 덮는 검버섯도 짙어지는  같다. 나는 아직도 ‘엄마하고 부르는 어린  같은데, 천하무적 같던 엄마는 영락없이 할머니가 되어있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고 우리 하면서 한껏 주름살을 이고 머리 매무새를 만지며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반기신다. 마치 당신도 아직은 50 언저리 어디쯤이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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