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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Sep 01. 2021

엄마가 제일 부자네?

2021

예준이는 12살, 종혁이는 10살이다.




남편은 오늘도 어김없이 10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다녀오셨어요. 오늘도 수고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남편을 반겨주고 다시 하던 걸 계속했다.


“얼른 마무리 좀 하자. 빨리 자야지.”

문제집 한 장 푸는 거에 늦장 부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잔소리했다. 아이들은 한숨을 푹 쉬며 마무리를 지었다.

아이들은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오늘 하루도 엄마의 채찍질에고생했다고 안아주고 쓸어주며 옆에 같이 누웠다.

다 씻고 나온 남편도 아이들 방으로 들어와 큰아이를 꼭 안고 누웠다.

우리 네 식구는 캄캄한 좁은 방에 나란히 누워 서로 안아주고 쓸어주었다.


그때 남편이 말을 꺼냈다.

“예준아, 우린 참 가난하다.”

“우리가 가난해요? 왜? 우린 이렇게 아파트에 살고 있잖아.”

예준이는 아빠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리고 텔레비전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다 있는데?”

종혁이도 한마디 보탰다.


“가난이라는 게 물질적인 것이 부족한 것만은 아니야.”

남편은 아이들의 말이 쏟아지자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우리 집은 뭐가 부족한데요?”

예준이는 재빨리 되물었다.


“자유.”

“자유?”

“응. 자유. 우리는 언제쯤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남편의 말에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바깥일이 많아 힘들어 보였는데. 저런 말까지 하니, 남편이 안쓰러웠다.


“그래도 우리 중에 엄마가 제일 부자네.”

적막을 깨고 종혁이가 말했다.

“왜?”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우리 중에 엄마가 제일 자유가 많으니까.

엄만, 설거지하면서 드라마 보고, 청소하면서 드라마 보고, 그림 그리면서 드라마 보잖아.

우린 맨날 영어로만 만화 보게 하고.”

“그, 그건... 일하면서 심심하니까...”

나는 기가 막히고 당황스러워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리도 연산 풀면서 심심한데. 검정 고무신 좀 보면서 하면 안 되나?”

종혁이는 애교를 섞어가며 또박또박 말을 해댔다.


“알았어, 알았어. 이제 안 볼게. 으이그 정말.”

나는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남편은 자유를 운운하면서 고단함을 얘기하는데,

나는 온종일 드라마만 보면서 편안하게 놀고 있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괘씸한 녀석들.

남편은 예준이를 바싹 끌어당겨 안으며 키득거렸다.

나는 졸지에 부자가 되버렸지만, 기분은 그닥…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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