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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01. 2021

바퀴벌레 두 마리를 키웁니다

 바퀴벌레의 존재를 알게 되고, 처음 보게 된 건 9살 때다. 시골에 살다가 인천으로 이사하면서였다. 반짝이는 금빛 등딱지를 야무지게 오므리고 잽싸게 달려가, 집안 구석 어딘가로 숨어버린 벌레를 난생처음 본 것이다. 난 하얗게 질린 얼굴을 감싸고 꺅 소리를 질렀다.


 또, 온 집안이 깜깜해진 밤에 화장실 가려면 큰 용기를 내야 했다. 그들은 고요해진 깜깜한 밤을 좋아해서, 매일 밤 버젓이 거실에 모여 축제를 열었기 때문이다. 내가 화장실 가려고 방문을 열어 빛을 쏘면, 나를 한번 째려보고 순식간에 일사불란하게 사라져 버렸다.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이후로 밤에 화장실 가는 일은 줄었다. 혹여 가야 할 상황이 생기면, 일부러 문을 활짝 열고 그들이 몸을 숨길 시간을 충분히 준 후에야 나갔었다.


엄마는 바퀴벌레를 없애기 위해 이곳저곳에 약을 놓았다. 하루는 집안에 하얀 연기를 내뿜는 약을 터뜨려 놓기도 했었다. 하지만 엄마의 온갖 노력에도 그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젠가부터 바퀴벌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 숨어버린 건지. 아니면 대놓고 활보하고 다녀도, 그 모습이 익숙해져서 옆에 지나가는 데도 모르는 척 신경을 끄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바퀴벌레가 우리 집에 나타났다. 12년, 10년 된 수컷 두 마리다.

 내 눈치를 살살 살피며 잽싸게 이 방 저 방으로 숨어버리는 녀석들. 내가 집을 비우기라도 하면, 축제를 벌이다가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와 동시에 ‘사사삭’ 흩어지는 녀석들. 오랜만에 느껴보는 바퀴벌레의 습성이다.


 녀석들이 있던 자리엔 뜨끈하게 달궈진 핸드폰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녀석들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는 알지만 어릴 적 엄마가 했던 것처럼 약을 쓸 수가 없다. 온종일 같이 있으면서, 쉴 새 없이 잔소리를 분사하던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다? 그때는 기회니까. 쫄깃한 긴장감을 즐기면서 몰래하는 게임이 얼마나 달콤하겠는가. 그 느낌, 아니까.

하지만 나는 그냥 넘어가지는 않는다. 기어이 뜨거워진 핸드폰을 감싸 쥐며 한 마디 쏘아붙인다.


“실컷 했구먼!”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면 좋으련만 참 그게 잘 안 된다.

‘재미있었어? 나도 그 느낌 알지. 그 쫄깃함 말이야.’라고 관대한 척하며 폼 잡기도 전에, 입에서 비아냥거리는 말이 먼저 튀어나와 버린다.



그래도 언젠가는 우리 집 바퀴벌레들도 사라지겠지?

물론 어떤 식으로 사라질지는 모르지만, 방에 꽁꽁 숨어서 나오지 않거나, 아니면 더 이상 숨지 않고 마음껏 활보하는 모습에 내가 무뎌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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