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Aug 31. 2022

오늘을 남기다] 공감(共感)

내일 아침에 마실 우유가 떨어져 집 앞 슈퍼마켓에 다녀왔다.  

이어폰을 가지고 나오는 걸 깜빡해서 다행히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 구름이 걷혀진 하늘과 풀벌레 소리가 제법 잘 어울리는 밤, 이제 매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 어, 어, 정말? 와, 걔 정말 웃긴다."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어, 어, 야, 속상했겠네, 내가 더 화난다."

여자의 목소리는 풀벌레 소리를 덮었다.

여자의 손에 들린 핸드폰 너머에 누군가가 억울한 일이 당했나 보다.

아마도 사람과의 관계로 생긴 문제인 것 같고.  

혼자 삭히기 힘들어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겠고,

'어, 어, 어.'를 반복하며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여자에게 위로를 받고 있다.

게다가 자신이 더 화가 난다며 편들어주는 여자에게 얼마나 고마울까 생각해 본다.


나의 가장 가까운 편엔 남편과 아들들이 있다.

하지만 아들들에게는 어른들 세계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지 못하고,

매일 늦게 들어오고 일찍 출근하는 남편에게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위로받을 시간이 부족하다. 주말에나 밀린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시간에 혼자 삭히기 힘든 이야기를 풀어놓을 사람이 있는가? 

내 이야기를 격하게 공감해주며 위로를 해 줄 사람이 있을까?

금방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이런, 급 외로워졌다.


여자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풀벌레 소리가 다시 커졌다.

흠뻑 젖은 보드블록 위를 걸으며 그들에게 묻는다. 

찌르르 찌르르 찌르르?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작가의 이전글 오늘을 남기다] 식빵 철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