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에 마실 우유가 다 떨어져 집 앞 슈퍼마켓에 다녀왔다.
이어폰을 가지고 나오는 걸 깜빡해서 다행히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 구름이 걷혀진 하늘과 풀벌레 소리가 제법 잘 어울리는 밤, 이제 매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 어, 어, 정말? 와, 걔 정말 웃긴다."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어, 어, 야, 속상했겠네, 내가 더 화난다."
여자의 목소리는 풀벌레 소리를 덮었다.
여자의 손에 들린 핸드폰 너머에 누군가가 억울한 일이 당했나 보다.
아마도 사람과의 관계로 생긴 문제인 것 같고.
혼자 삭히기 힘들어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겠고,
'어, 어, 어.'를 반복하며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여자에게 위로를 받고 있다.
게다가 자신이 더 화가 난다며 편들어주는 여자에게 얼마나 고마울까 생각해 본다.
나의 가장 가까운 편엔 남편과 아들들이 있다.
하지만 아들들에게는 어른들 세계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지 못하고,
매일 늦게 들어오고 일찍 출근하는 남편에게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위로받을 시간이 부족하다. 주말에나 밀린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시간에 혼자 삭히기 힘든 이야기를 풀어놓을 사람이 있는가?
내 이야기를 격하게 공감해주며 위로를 해 줄 사람이 있을까?
금방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이런, 급 외로워졌다.
여자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풀벌레 소리가 다시 커졌다.
흠뻑 젖은 보드블록 위를 걸으며 그들에게 묻는다.
찌르르 찌르르 찌르르? ("나만 그런 거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