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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Feb 24. 2023

[오늘을 남기다] 티 낼 수 없는 설렘.

 드르륵 탁탁 드르르...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무슨 공사를 하고 있나 싶었다. 그런데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가까이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옆에 있는 냉장고에서 나는 소리였다. 냉장고 문을 열어봤다. 소리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바로 서비스센터 웹사이트에 들어갔다. 요즘은 전화로 출장 서비스 신청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고 신청을 해야 했다. 냉장고 소음이 커질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복잡한 서비스 신청 절차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가장 빠른 예약 날짜가 3일 뒤였다. 그때까지 무사히 버텨주길 바라며 냉장고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런데 냉장고가 아예 멈춰버렸다. 소음도 멈췄고, 냉장실도 냉동실도 깜깜해졌다. 냉동실 안은 이미 온도가 올라가고 있었는지 꽝꽝 얼었던 것들이 어느 정도 해동되어 있었다. 

 

 창고에서 아이스박스를 꺼내왔다. 아이스팩을 채우고 냉동식품, 생선, 고기, 냉동 블루베리를 집어넣었다. 아들들이 사놓은 투게더 아이스크림 2통은 그대로 물이 되어있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3통을 샀다. 하루도 안 돼서 1통을 다 먹어버린 둘째에게 뭐라고 했다. 오늘 아침엔 밥도 한 그릇 먹고, 후식이라며 아이스크림을 국그릇에 꾹꾹 눌러 퍼 담길래 너무 많다고 다시 덜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실컷 먹게 둘 걸 그랬다.


 냉장고 안에 있는 내용물도 빼내고 있는데 냉장고에 불이 다시 들어왔다.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 다시 되는 거야?'

 설정 온도를 확인하니 냉동고는 6도, 냉장은 9도였다. 온도가 떨어지길 바라며 기다려봤다. 제발 이대로 괜찮아지길. 3일만 버티면 될 텐데. 하지만 냉장고는 어림없다는 듯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멈춰버렸다. 멈췄다 돌았다를 두어 번 반복하더니 계속 돌았다. 냉동 6도, 냉장 9도를 유지한 채. 


하필 오늘은 금요일. 당장 가서 냉장고를 산다고 해도 다음 주에나 배송이 되겠지. 냉장고가 한두푼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가서 사기도 뭐 하고.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인터넷 쇼핑몰을 뒤졌다.   

 

얼마 전에 동네 친구가 냉장고 소리가 점점 이상해진다며 멈추기 전에 새로 바꿔야겠다고 했었다. 그 친구도 나와 결혼한 시기가 비슷해서 냉장고의 나이도 서로 비슷했다. 14년 정도 썼으면 오래 쓴 것 같다며 같이 바꾸자고 했었다. 하지만 우리 집 냉장고는 아무리 봐도 바꾸기 아까웠다. 요즘 나오는 거에 비해 용량이 적은 거 빼면 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친구에게 내 건 정말 멀쩡해서 몇 년을 더 쓸 수 있을 거라고 했었다. 

그 말 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갈 줄이야. 

 

지금 쓰고 있는 건 437L인데 인터넷 쇼핑몰에 나와 있는 모델들은 대부분이 870 이상이었다. 갑자기 용량이 두 배가 되니 너무 큰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됐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물어봤다. 어디 제품을 샀는지, 몇 L짜리 샀는지. 친구도 870L짜리 샀다고 했다. 냉장고가 커지니 공간이 여유 있어서 너무 좋고, 새거라 그런지 전기세도 덜 나온단다. 그때 같이 샀으면 얼마나 좋았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축하한다고 했다. 새 걸로 바꾸게 됐으니 잘됐다고. 

 

친구와 전화를 끊고 드르륵 거리는 냉장고를 보는데, 아까보다 짜증이 덜 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쁜 거 사살까? 막 색깔도 바뀌고 하는 것도 있던데. 용량도 두배로 늘어니 훨씬 편하겠지? 

마우스 휠을 천천히 굴리며 쇼핑몰 웹페이지를 꼼꼼히 살폈다. 가격, 용량, 색깔, 기능. 와우! 슬림 아이스 메이커. 멋진데! 

아, 갑자기 왜 설레지? 남편한테는 티 내면 안되는데.


냉장고가 가소롭다는 듯 다시 울었다. 

드르륵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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