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네 식구가 목욕탕에 갔다. 아들만 둘이라 나는 혼자 여탕에 들어간다.
아들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혼자 들어가는 여탕이 조금 외로웠다.
오늘도 어린 딸부터 우리 아들들과 비슷한 또래의 딸들과 함께 온 엄마들이 많았다.
나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간다히 샤워를 하고 온탕에 들어가 몸을 불렸다. 한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탕 속으로 한 발씩 넣으며 짜릿한 표정을 짓다가 금세 의젓한척했다. '나 제법이지?'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러다 같은 반 친구를 만났는지 듬성 빠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둘은 냉탕에는 가본 적 있는지, 같이 가보는 건 어떻냐는 이야기를 나누다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들어갔다. 두 아이의 엄마들은 온탕에 몸을 담그고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냉탕에 들어가는 아이들에게 천천히 조심하는 말을 던지며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소가 지어졌다.
자리로 돌아와 불어난 때를 밀었다. 건너편에는 젊은 여자가 꼼꼼히 때를 밀고 있었다. 우리 둘째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젊은 여자 앞에 앉았다. 아이의 엄마인 것 같았다. 엄마는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등을 내보이라고 했다. 아이는 머리를 무릎가까이로 숙여 때밀기 편하도록 등을 폈다. 엄마는 아이의 등을 밀기 시작했다. 아이가 끙끙거리며 '아' 소리를 한 번씩 냈다. 엄마는 있는 힘껏 아이의 몸에 붙은 때를 밀는 것 같았다. 때타월을 낀 내 손은 건성으로 몸을 훑었고 귀는 건너편의 향해 쫑긋 섰다.
젊은 엄마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돌리며 몸의 구석구석의 있는 때를 모조리 박멸해 버리려는 것 같았다.
그러다 아이가 엄마가 말하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지 못하자 맨 몸뚱이를 찰싹 때리며 욕을 했다. 흔히 말하는 쌍욕은 아니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말이었다. 이번엔 손을 멈추고 건너편을 살짝 돌아보았다. 아이의 심통 난 표정과 벌게진 몸뚱이가 왠지 낯익었다.
어릴 적 집 앞에 대중목욕탕이 있었다. 매월 격주 일요일마다 새벽에 엄마는 언니와 나를 깨워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 문을 열자마자 가야 물이 깨끗하다고 매번 새벽 시간을 고수했다. 언니와 난 잠이 덜 깬 상태로 목욕탕에 들어갔다. 엄마는 때 타월에 비누를 묻혀 의자와 세숫대야, 작은 대야를 빡빡 닦으라고 시켰다. 다음은 온몸에 비누칠해서 헹구고 온탕에 들어 몸을 불리라고 했다. 그때 엄마가 알려준 대로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고 나면 엄마는 언니부터 차례로 때를 밀어주기 시작한다. 등, 다리, 팔 구석구석. 저 아이처럼 엄마 말을 잘 못 알아듣거나 너무 아파 몸을 배배 꼬면 등짝도 한 대씩 맞았다. 우리 손이 닿아 충분히 밀을 수 있는 곳도 엄마가 직접 밀어야 속이 시원하셨던 것 같다. 언니와 내 몸뚱이는 벌게져 뜨거운 물이 닿으면 살짝 따갑기도 했다. 그때 우리의 표정도 저 아이와 같았다. 목욕탕 가는 게 정말 싫었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우리를 미워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닌 걸 안다. 오히려 어릴 적부터 유난히 뚱뚱했던 딸내미들의 몸을 구석구석 밀어주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저 아이의 보기 전까지는 딸내미와 함께 온 엄마들이 부러웠다.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면 깔깔 웃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만 눈에 들어와서 그랬나 보다. 이렇게 구석진 곳에 그렇지 않은 엄마와 딸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
젊은 엄마는 작은 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 아이 몸에 두어 번 끼얹어 주고 자리를 정리했다. 아이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개운한 표정으로 바뀌어있었다.
저 아이도 커서 나처럼 아들을 낳으면 지금의 기억은 까맣게 잊고 딸과 함께 온 엄마를 부러워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