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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n 18. 2020

[오늘을 남기다] 거미네 “흉년”

아들이 떠난 자리에 혼자 앉아 끄적거림.  손이 가는 대로 그린 그림인데 은근 마음에 듦.(크레파스 그림)

초등 저학년인 둘째 아들의 온라인 수업 과제는 거의 엄마 몫이다.

일일이 다해주는 건 아니지만 옆에 앉아서 같이 하는 시늉도 하고 잔소리라도 해야 한다.

오늘 수업 과제는 거미에 대해 알아보는 거였다. 학교에서 거미줄 그림 도안하고, 거미줄에 걸릴 곤충들 도안을 주었다.

도안에 색칠하고 가위로 잘라 거미줄에 붙이면 끝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림 그리고 색칠하고, 게다가 가위질까지 하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단다. 할 수 없이 옆에 앉아 곤충 한 마리를 색칠해 주면서 흥미를 돋웠다.

꽤 열심히 거미 한 마리를 색칠하고 오려 붙였다. 그러곤 내가 완성해준 사마귀까지 붙이고는 ‘끝~’하고 손을 놓는다.

“곤충 도안이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물었다.

“아, 잠깐만.”

아들은 옆에 있는 빨간색 사인펜을 들더니

‘흉년’이라고 적는다.

“거미네는 올해 흉년이야. 그래서 곤충이 한 마리밖에 안 걸렸어요.”

아들은 사인펜 뚜껑을 닫아 ‘탁’하고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자리를 떠났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군.’

어이없지만 아들의 말이 틀린 게 아니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2020.06.18

 

운없는 사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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