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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ug 06. 2020

[오늘을 남기다] 찐 추억

  우리 부부는 여름휴가철만 되면 고민에 빠진다. 사람들이 너무 몰리는 곳은 가기 싫고, 극성수기 요금을 내고 숙소를 잡는 것도 딱히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들 다 가는 휴가 기간에 집에서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이 고민은 10년간 매해 반복하고 있다. 어쩜 이리 발전이 없는지. 결국 매년 가는 휴가처는 시댁이다. 시댁이 해남이어서 멀리 여행 떠나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물론 숙박비도 안 들고 시골집에서 시댁 식구들과 고기 구워 먹는 재미도 꽤 괜찮다.

 

그래서! 올해도 여름휴가는 해남으로 갔다.

 우리가 해남에 내려가면 목포에 사는 시누이들이 내려온다. 아이들도 다 고만고만한 나이라 오랜만에 만나도 데면데면하지 않고 잘 어울려 논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시골집에서 누릴 수 있는 휴가를 만끽한다.

 마당에 있는 화로에 숯불을 만들고,  화롯불 위에서 기름을 쫙 빼며 삼겹살이 익어간다. 어른들은 화로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에도 서로 웃는다.

 아이들은 할머니의 빨간 대야에 물을 한가득 채워 풀장을 만들었다. 이제 제법 덩치가 커져서 함께 들어가 앉기에 좁을 것 같은데도 옹기종기 들어가 앉는다. 다리도 제대로 뻗을 수 없는 통 안에서 뭐가 그리 신나는 얼굴이 빨갛게 익어가는 것도 모르고 웃어댄다. 고기 굽는 냄새에 홀려 한 녀석씩 통에서 나와 고기를 한입씩 넣는다. 그러다가 다시 들어가서 놀고, 또 나와서 먹는다. 이제 배를 다 채웠는지 통속으로 모두 들어가 앉는다. 물속에서 발을 꼼지락이며 즐거워한다. 아이들을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행복해졌다.


 남편과 나의 귀차니즘에 의한 휴가는 매해 같은 곳을 가게 하지만,

 빨간 대야 풀장 속에 들어앉아

 저렇게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 보다 더 찐 추억이 어디 있겠는가

 라는 생각으로 살짝 합리화시켜본다. 

 

2020. 8. 6

휴가를 끝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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