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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29. 2020

[오늘을 남기다] 김치 맛 멜론

 어릴 적 친정 엄마는 맞벌이를 했다. 퇴근하고 오시면 청소를 먼저 하고 저녁 준비를 했다. 일이 고됐을 텐데 쓸고 닦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자식들이 철 좀 들어서 엄마를 도와드렸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죄송스럽다. 이렇게 깔끔했던 엄마는 언제부턴가 느슨해지셨다. 이제 그렇게 사셔도 된다고, 청소 하루 안 한다고 뭐 어떻게 되겠냐고 엄마의 그런 생활을 환영했다. 나는 살림만 하고 살면서도 매일 쓸고 닦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 말이다.

 엄마는 이제 일흔이 넘었다. 엄마의 살림은 더욱 자유분방해졌다. 10년 넘게 살림하고 있는 나는 엄마의 자유분방한 살림이 가끔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약간의 잔소리를 섞어가며 엄마의 살림에 간섭했다. 그러나 어떤 살림하는 여자가 자기 살림에 ‘배 나와라 감 나와라’ 하면 좋아하겠는가. 엄마도 내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셨다. 그 이후로 난 아무 말 없이 청소하고 정리를 해놓는다. 엄마 살림 중에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곳은 단연 냉장고다. 식구가 줄어들면서 남은 음식들은 냉장고 칸칸을 채운다. 물론 반쪽 과일들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조카가 집에 다녀가면서 멜론을 사 왔는데, 주말에 외손주들이 온다고 해서 기어이 반쪽을 남겨두셨다. 손주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엄마는 봉지에 담긴 반쪽 멜론을 쟁반에 밭쳐 내오셨다.

 “우와, 멜론이다.”

 아이들은 멜론을 보고 눈을 반짝인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해도 비싸서 선 듯 못 사준 과일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할머니의 손을 재촉한다. 아이들의 반응에 할머니 뿌듯해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한 두 개 집어 먹더니 자리에서 물러난다.

 “왜 더  먹지 않고? 맛없어? 달던데. 어서 더 먹어.”

 할머니는 물러나는 손자들에게 내심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신다. 아이들이 남긴 멜론을 한 조각 집어 먹었다. 아이들이 왜 그만 먹겠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 내색하지 않았다. 그 비싼 과일을 남기면서 맛있게 먹을 자식들을 생각했을 엄마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남은 멜론을 다 먹어 치웠다. 딸이라도 잘 먹으니 좋다며 엄마는 더 이상 입에 넣지 않으셨다.


 “아까 왜 멜론 안 먹었어? 먹고 싶어 했잖아. 할머니가 너네 주려고 안 먹고 남겨두신 건데.”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내비쳤다.

 “처음엔 맛있었는데. 계속 먹을수록 김치 맛이 나더라고.”

 예준이가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맞아! 김치 맛 멜론이었어.”

 종혁이는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야 그 맛을 알았다는 듯 맞장구를 친다.

 “그랬구나.”

 아이들이어서 잘 모를 줄 알았는데, 너네도 다 아는구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마음만 아린다.


20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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