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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22. 2020

[오늘을 남기다] 엄마의 입맛

 지난달부터 친정 엄마가 치아 치료를 받고 계신다. 워낙에 치아가 건강하지 못하셔서 치료의 범위가 상당하다. 물론 치료 기간도 길다.

 그러다 보니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계신다. 가까이에 살면 자주 찾아뵙고 죽이라도 챙겨드릴 텐데 그럴 상황이 안되니 자꾸 마음만 쓰인다.

 며칠 전 인터넷 쇼핑으로 죽과 영양보충 음료를 배달시켜드렸다. 원래 죽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걱정은 되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너네 엄마 때문에 큰일이다. 어째 주사라도 한 대 맞으러 가라고 해도 저렇게 말을 안 듣는다.”

 아침에 엄마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친정아버지가 엄마의 전화기를 잽싸게 뺏어 들고 다짜고짜 하신 말씀이다. 일주일에 3~4번 정도 엄마 목소리를 듣는데 한 번도 그 정도 이실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내가 사준 죽은 다 드셨냐고 여쭈니, 이제 하나 남았는데 그것도 간신히 먹었다며 이젠 그런 거 사보 내지 말라 신다.

 전화를 끊고 난 후 내내 심란하다. 친정과 조금 거리를 두고 살면서 자주 찾아뵙지 못하게 되고, 그게 익숙해지고 편해졌다. 언젠가부터 친정에 가도 엄마 무릎 베고 편안히 누워 수다나 떨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던 거다. 이래서 자식은 다 소용없다고 하나보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엉키고 설켜 죄책감이 들게도 하고, 나만 자식인가, 아빠가 좀 더 자상하게 챙겨주시면 좋을 텐데 원망 섞인 투정도 해본다.

 

 “예준아, 이번 주 금요일에는 외할머니댁에 가자. 할머니가 치아 치료하시느라 뭘 잘 못 드신다네.”

 예준이가 물어보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는데, 난 그 말을 내뱉었다. 그냥 ‘나’ 들으라고 한 말이다.  귀찮아하지 말고, 투덜대지 말고 엄마한테 다녀오라고.

 “예준아 할머니한테 뭘 만들어서 갈까?”

 “갈비 어때요? 어제 엄마가 해준 갈비는 이빨이 없어도 먹을 수 있을 것처럼 부드러웠거든요. 맛도 있었고.”

 노느라 정신없는 예준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해준다.

 “갈비? 그러게 고기를 좀 드시긴 해야 할 텐데 좋아하실까?”

 “아! 안 되겠다. 엄마는 매번 레시피가 바뀌어서 한 번도 똑같은 맛을 낸 적이 없지. 이번엔 좀 질기게 될 수도 있으니 그거 말고 다른 거 생각해봐요.”

 젠가부터 예준이는 뼈 때리는 말을 능글스럽게 잘하게 되었다. 그런 예준이가 웃기기도 하면서 가끔은 날 부끄럽게 한다. 김수미이나 백종원도 아니면서 항상 감으로 간을 하다 보니 매번 음식 맛이 바뀌는 건 사실이다.

 “알았어! 그냥 생선이나 사가서 구워드려야겠다.”

 함께 고민해준 예준이의 말에 결정은 쉬워졌다.

 

하지만, 하루 종일 친정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항상 아빠 입맛에, 자식들 입맛에 맞추고, 자식들이 가자는 식당에 가셔서 별말 씀 없이 식사를 하셨다. 엄마의 입맛을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종이에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음식을 드셨을 때 말씀하시던 거와 표정을 기억해내면서 말이다. 대충 목록을 간추려 적은 메모지를 두 번 접어 지갑에 넣어두었다.

 

 자기들끼리 뭐가 그리 신났는지 낄낄거리며 뒹굴고 있는 아이들을 불렀다. 그러고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읊었다. 듣는 건지 마는 건지 대답도 없다.

 그래서 더 크게 말했다.


 “얘들아! 엄마는 닭발 좋아하고, 곱창 좋아하고, 선짓국 좋아하고, 알탕 좋아하고, 순댓국도 좋아해. 알았지?”


2020.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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