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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Sep 05. 2019

미안해 아들

비겁한 엄마

“아 ~정말 끊고 싶다. 선생님 너무 하는 거 아냐? 일기까지 쓰라니. 한국어로 일기 쓰는 것도 힘든데 영어로.....!”

 초등 3학년인 큰아들이 하는 얘기다.


이 친구가 영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1학년 12월이다. 이제 2년이 다 돼간다. 처음에 주위 친구들이 하나둘 영어를 시작하면서 불안한 마음에 급하게 알아보고 학원을 보냈다. 그래도 너무 힘들게 가르치는 대형학원은 내키지 않아, 주로 스토리 책으로 수업을 한다고 해서 선택한 학원이었다. 아이도 나도 그럭저럭 만족했다.


그런데 레벨이 올라가면서 숙제가 어마어마해졌다. 하나하나 옆에서 봐줘야 하는 나도 스트레스, 그 많은 양을 해야 하는 아이도 스트레스.


점점 영어는 왜 배워야 하냐는 질문이 잦아졌다. 그때마다 여러 이유들을 차근차근설명해도 조금 지나면 다시 제자리였다.

1년 조금 지났을 때 이렇게 해서 무슨 의미 인가 하고 끊으려 했는데 선생님의 설득으로 나도 아이도 조금 더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이제 3학년 2학기.


나도 아이들이 커가면서 하고 싶은 게 생겨 나한테 집중하는 시간이 많이 졌다. 아이들이 하는 수학 연산 학습지, 영어 학원이 나를 안심시켰다. 내가 많이 신경을 못쓰고 있어도 기본은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그랬다.


그래서 아이가 영어 숙제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얼르고 달래서 시켰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 아이에게 이 학원이 최선인 것 같았다. 내 교육관과도 맞는 것 같았고. 또 나에겐 차선책을 준비할 시간도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어 아이가 아무리 불평을 해도 받아주면서 아직까지 이어 온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오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투덜거리며 영어 책을 폈다. 영영 사전을 찾아 단어 뜻을 쓰는 숙제를 하는데, 연필 쥔 손에 분노를 가득 실어 바르르 떨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공책을 잡은 반대 손도 당장 찢어 버릴 것처럼 움켜쥐고 있었다.

순간 너무 화가 났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이게 그 정도로 분노에 찰 일인가?

난 너무 화가 나 이성을 잃은 듯한 행동을 하고 말았다. 책과 노트, 사전을 몽땅 빼앗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아이는 내 표정과 행동이 무서웠는지 자기는 할 거라고 다시 달라고 울면서 얘기했다.

아니, 안 그래도 된다고 이제 그만하자고 했다. 엄만 그렇게 싫어라 하는 거에 돈을 써가면 학원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고.......


아이한테 각자 씻고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씻으면서 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한 거지?

무슨 말을 한 거지?

아무리 좋은 선생님도 내 아이에게 안 맞으면 좋은 선생님이 아닌 것을.

내가 우리 아이 말을 깊게 생각 안했구나.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아이한테 너무 무관심했구나.

그냥 뭐라도 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내 이기심만 챙겼구나. 참 비겁했다. 미안해 아들.


아이도 씻고 나왔다.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어쩜 이때가 기회다 싶기도 했나 보다. 더 이상 다시 하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우린 평소와 똑같이 책을 읽고, 다른때보다 1시간은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잠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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