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저는 포순이 언니에요

by 글캅황미옥


# 20대 마지막 파티



2009년 12월 29일


왜 20대를 떠나 보내기 싫었을까?

내 청춘이 담긴 20대를 떠나보내기 싫었다. 그냥 나이들기 싫었다. '20대'가 들어간 책들을 엄청 읽었다.

20대가 가기 전에 혹시 내가 놓치는 게 없는가 하는 마음....


20대 자기계발에 미쳐라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20대 나만의 목표를 세워라
20대에는 사람을 쫒고 30대에는 일에 미쳐라
아프니까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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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애착을 많이 갖던 내게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동기가 내 20대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며 파티를 준비했다. 파티 연출을 위해 리본이 달린 머리띠도 준비했다. 센스 있게 여러 색상으로(^^) 29 숫자가 박힌 케익을 바라보고 있던 때 정말 행복했다. 이 순간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동기사랑 나라사랑' 이라더니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동기에게 너무 감사했다. 나도 20대를 떠나 보내는 누군가에게 이런 설레는 파티를 해주고 싶다.








# 승진 축하


공무원은 승진 하고 싶어 한다. 나 또한 신임시절 막연하게 계급을 쫒고 있었다. 경찰학교에서 종이 한장을 줬다. 거기에 내가 이루고 싶은 3가지를 쓰고 그 봉투를 밀봉했다. 학교에서는 졸업 후 1년이 지나고 그 편지를 집으로 보내줬다. 거기에도 역시 경장 진급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한해 두해 나이를 먹으면서 계급에 대한 내 생각도 변해갔다. 나는 여성청소년과에서 3년을 보냈다. 그 사이에 경장, 경사 두 번의 진급을 했다. 5년만에 근속 승진을 했다. 일에 미쳐 공부할 시간도 없었고, 특별승진의 기회도 근속승진이 다 되어 혜택을 볼 수 없었다.




2012년 8월 1일 경장 되다.




경찰이 된지 5년이 되던 해 첫 승진.

그날 카카오스토리에 내가 남긴 글이 있었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무엇보다 가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옥아 사랑한다 ♡"

비록 근속승진으로 조금 늦게 진급했지만 나는 값진 경험과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동료들을 얻었다.

"마이콜, 닭똥집, 개멘토, 동이세이, 구메구, 재주 부리는 팀장"




2013년 1월.

여성청소년과 과서무로 일하며 새벽 4시에 일어나 한 두시간 공부하고 출근했다. 바쁜 일과를 보내고 퇴근하고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한 두시간이라도 공부하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갔다. 체력이 바닥 난 날에는 그냥 엎드려서 자고 온 날도 있었지만 갔다왔다는 자체가 위안이 대곤 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승진시험 만큼은 꼭 내 힘으로 해내고 싶었다.




2014년 1월 24일 승진시험 발표일



등수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합격자 명단에는 내가 있었다. 그거면 됐다.






# 어글리스 인형과 추억의 사진들


나는 조금 특별한 승진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인공의 얼굴이 새겨지고 경찰 제복을 입은 인형을 선물했다. 받는 분들에게 엄청 인기가 좋았다. 나만의 추억의 선물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인형은 이제 선물하지 못한다...






나는 여청과에서 근무하는 3년동안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플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아직도 그 사진을 볼 때면 그날 있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다 기억난다. 추억의 순간들이 그 사진 한 장에 다 베여 있는 것이다.


동료와 추억의 사진 한장 꺼내보세요~~^






# 계서무에서 과서무로


여성청소년 서무와 서무의 가장 큰 변화는 두가지.

'나이와 계급'.

계서무로 일할 때는 20대 어리버리 황순경이었고 갓 경장으로 진급했을 때였다. 과서무 시절은 30대를 접어 들었고 한 과를 책임지고 살림을 살아야 했고 근무경력도 어느 정도 된 경사였다.


20대에는 업무를 배우는데 급급했다. 계장님이 시키는 대로 해내기에도 벅찼다. 주변 선배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늘 나를 챙겨주고 배려해 주셨다. 내가 서무인데 모든 일은 계장님이 다 하고 계셨다. 2012년 12월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으로 학교폭력이 이슈가 되었다. 우리는 PPT를 만들어 관내 초 중 고등학교에 폭력 예방 강의를 가야 했는데 PPT도 계장님이 다 만드셨다. 매일 아침이면 학교별 예방 캠페인을 시작으로 학부모 간담회, 교장 교감 간담회 등 각종 행사가 있었다. 퇴근 시간 이후에도 공문이며 보고며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속에서 계장님께 따로 배우고 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저 어깨너머로 하시는 일을 보는게 다였다.


그렇게 간접적으로 업무를 배우고 1년 후 과서무로서 일을 시작했는데 내가 직접 해본 일이 거의 없다보니 제대로 할 줄 아는게 없었다. 서무의 기본적인 업무인 공문작성, PPT, 엑셀 뭐 제대로 하나 하는게 없었다. 모든게투서툴고 엉성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바쁜 틈을 내서 포토샵이나 필요한 것은 주변 지인을 통해 배우고 업무 메뉴얼을 만들었다. 과서무 하면서 내가 알아야 할 것들, 챙겨야 할 것들과 내가 맡은 업무들을 메뉴얼화 하면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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