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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캅황미옥 Nov 24. 2019

비상



남편은 오늘부터 비상근무다. 24시간 근무가 시작된다. 보통 12시간 집에 있지 않는데 비해 오늘은 길어도 너무 길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토요일에 남편이 없는 날이라 오전에 예빈이 발레, 오후에 예빈이 방송댄스까지 다녀오면 기진맥진이다. 예설이까지 데리고 다녀야 하니 둘다 저녁이 되면 체력이 방전된다. 

오늘은 유치원 행사가 있어 아침부터 두 시간 동안 유치원에 다녀왔다. 예빈이가 원에서 어떻게 영어를 배우는지 짧게 나마 볼 수 있었고, 담임 선생님과 어떤 모습으로 수업하는지도 접할 수 있었다. 둘이서 돌맹이로 엄마와 딸 얼굴을 만들었는데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오후 방송 댄스 마치고 마트에서 좌석으로 된 놀이 교구들을 사서 왔다. 유치원에서 영어수업 들었던 것 때문에 사고 싶었다. 언어를 배울 때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글과 알파벳 그리고 숫자와 공룡 놀이를 사왔다. 집에 와서 밥 먹으면서 그것들을 풀었는데 두 시간 넘게 놀았다. 예빈이 이름도 만들어보고 남편, 나 예설이 이름까지 글자 만들기 놀이도 했다. 백설공주 동화책까지 읽고 둘을 재우다가 결국 나까지 잠들어버렸다. 1시간 반을 같이 잠들었다. 깨보니 늦은 시간이었지만 벌떡 일어나 할 일을 하고 있다. 글쓰기와 운동. 

아이들 다 재우고 나와서 집을 둘러보니 말 그대로 초토화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 씻기고 먹이고 놀리는 몇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필름작업처럼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예빈이 밥먹이면서 설이 분유주던 모습, 설이 콧물 때문에 흡입기로 코 빼면서 예빈이랑 알파벳 놀이하던 모습, 설이 울어서 앉아서 달래주면서 약도 먹이던 모습. 이리 저리 발을 동동 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이던 내 모습들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비상이었다. 

헌우 엄마랑 카톡하면서 집이 초토화 되어 앉아 있다고 하니, 와서 예빈이 씻겨줄까 묻는다. 자신도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남편 없다고 도움준다는 모습이 나이 스물 여덟살로 느껴지지 않았다. 고마웠다. 말이라도. 점점 체력도 마음도 강해지고 있는 내가 느껴졌다. 예빈이 하나만 키울때랑은 신세계지만 그래도 좋다. 강인해지는 모습이 말이다. 힘들었지만 오늘 하루 잘 버텼다. 즐거운 순간들도 많았다. 
예빈이 방송댄스 기다리면서 카페라떼 한 잔 먹으면서 마트 구경할 때 행복했다. 맛있는거 먹으면서 눈구경하기. 다노 올인원 스트레칭하고 폼롤러 마무리하고 자야겠다. 

내일은 원고수정 할 시간 넉넉히 챙겨야겠다. 

남편의 비상근무가 나에게도 하루 비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황작가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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