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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o Feb 26. 2020

방콕에 왜 이렇게 양아치가 많을까?

여행은 사유하는거야

*이 글은 뇌피셜에 근거한 편견으로 똘똘 뭉친 글이라는 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부터인지 동남아 여행을 가면 한국 양아치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서 말하는 양아치는 ‘너 양아치니?’의 양아치가 아니라 반(건)달 내지는 조폭 꿈나무로 보이는 이들이다. 전형적인 홍대 스타일, 과시하려고 한 게 분명해 보이는 문신, 육중한 몸을 드러내려고 작정한 옷차림까지 누가 봐도 한국인이다. 만에 하나 내가 본 사람들이 선량한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선입견을 품고 봐서 미안하다. 하지만 범죄 경력이 없는 일반 시민이었다 하더라도 절반은 욕이 섞인 그들의 거친 말투와 금방이라도 옆 사람을 한 대 쳐버릴 듯 위협적인 행동은 역겹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양아치라 부르기도 한다. 


방콕의 한국 양아치들


방콕 시내에 한국인 관광객이 하도 많으니 오히려 이런 양아치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특히 코리아타운에 가면 이런 부류의 한국인이 참 많이 보인다. 내가 방콕에서 웬만하면 코리아타운 근처에 가지 않으려 했던 이유다. 외국에서 자기 나라 사람 피해야 되는 건 한국인 밖에 없을 거다. 또 다른 양아치 부류는 단체로 여자 만나러 오고 그걸 자랑처럼 떠벌리는 인간들이다. 첫 태국 여행 때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바다를 보겠다고 파타야에 갔다.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파타야는 유흥과 환락의 도시다. 많은 남자 관광객들이 이상한 기대를 안고 파타야로 향한다. 예약해둔 호핑투어에 가려고 아침에 여행사에서 보낸 썽태우를 탔다. 나 다음으로 썽태우에 오른 네 명의 젊은 한국 남자들이 지난밤의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네 파트너는 어땠냐, 내 파트너는 어떻더라, 그러느라 잠을 몇 시간 못 잤다, 어디가 물이 좋다더라, 오늘은 거기로 가자. 수완나폼 공항 식당에서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하룻밤 만난 여자 이야기를 신나게 떠드는 걸 직접 들었다. 


찾아보니 이미 20여 년 전에 한국 조폭이 방콕에서 원정 패싸움에 총격전까지 벌였다고 한다. 지금은 깍두기의 시대가 지나서 그런지 방콕의 양아치가 다른 형태로 바뀌었나 보다. 태국이 한국 불법 도박사이트의 성지가 된 지 오래다. 태국에서 붙잡혔다는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의 기사가 수없이 많다. 원래 중국이 중심이었던 보이스피싱 범죄도 근거지를 동남아시아로 옮기는 추세라고 한다. 이들 간 폭력, 살인 사건도 다수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그것이 알고 싶다의 레전드 에피소드로 알려진 파타야 살인사건이다. 그밖에 뒷배경을 전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한국인 살인사건도 많다고 한다. 범죄자들이 태국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른 동남아 국가들보다 좀 더 안전한 환경, 빠른 인터넷, 좋은 편의시설 때문이라고 추측해본다. 지리적으로 동남아의 중심에 위치하다 보니 여차하면 다른 나라로 넘어가기 수월한 것도 보너스가 아닐까. 


얼마 전 한국 남성이 베트남 아내를 심하게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태국에서도 큰 이슈였나보다. 태국 친구는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나온 한국 남자는 다정다감하고 로맨틱할 것이라는 이미지는 이미 깨진 지 오래다. 한류만 믿고 말도 안 되는 자신감으로 방콕에서 여자들에 들이대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내가 수집한 한국 남자의 이미지는 이렇다. 거칠고 폭력적이다, 소리를 잘 지르고 잘 싸운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거만하다, 바람둥이다. 이런 이미지는 근거 없이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십 년 간 우리의 양아치 선배들이 태국에서 쌓아 올린 이미지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양아치, 조폭 꿈나무들이 방콕에서 활개를 치고 다닐까 싶다. 


▲ 방콕 코리아타운에서 양아치를 많이 봤다는 거지, 이곳 사장님들이 그렇다는 건 결코 아니다


90년대생 양아치가 온다


이제 조폭도 90년대생이 온다. 우리 세대는 어릴 때 조폭을 희화화하는 영화와 티비 프로그램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깍두기 형님 스타일을 동경하지 않는다. 우연히 알게 된 90년대생 조폭이 있었다. 외제 차를 끌고 최신 유행하는 브랜드의 옷과 신발로 휘감았다. 문신도 일반인이 많이 할 법한 트렌디한 디자인이다. 실제로 신세대 조폭의 비즈니스 스타일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검은 정장을 입고 유흥가를 활보하는 조폭은 이제 영화 속 이야기다. 도박사이트, 보이스피싱, 성매매업소 등 눈에 잘 띄지 않고 현금을 만지는 불법이 주 비즈니스다. 그 친구의 일은 도박장 관리였다. 90년대생 조폭은 뭐랄까, 동네 양아치들의 점조직 같은 모습이다. 


깍두기의 시대가 가고 젊은 양아치의 시대가 왔다. 우리 세대는 확실히 그들을 동경한다. 돈과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유흥의 패러다임이 조폭이 운영하던 나이트클럽에서 ‘클럽’으로 넘어왔다. 십수 년 간 클럽은 쿨함, 잘나감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군림했다. 젊은이들이 동경하는 공간이었다.  ‘버닝썬’ 사건으로 클럽들의 운영진이 반(건)달 출신이라는 게 드러났다. 이들은 힘과 돈, 거기에 연예인을 등에 업은 대중적 인지도까지 얻었다. 이 정도면 가히 일류 양아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이라도 경찰서에 가본 사람이라면, 여기서 하소연해 봤자 아무 소용없겠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현실에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돈만 있으면 주먹도 사고 법망도 빠져나올 수 있다. 유명해질 수도 있다. 이걸 다 가진 일류 양아치를 동경하지 않을 수 없다. 


양아치를 동경하는 이유


이유는 돈이다. 기승전’돈’인 사회니 놀라운 것도 없다. 우리나라가 부정부패 청정국인 줄 알았지만, 전임 대통령의 연속 스캔들로 다 뽀록났다. 우리는 한 번도 부정부패의 늪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다 돈 때문이다. 한국을 삼성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어느 권력보다 삼성의 힘이 강하다고 말하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지 않은가. 잘 나가는 양아치는 자수성가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일 수 있다. 전문직도, 좋은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도 사실상 세습이 가능한 시대다. 반대로 조폭은 부모에게 물려받는 게 아니다. 싸움 잘하고 불법을 자행할 배짱이 있으면 그 분야에서 자수성가할 수 있다. 여기에 일류 양아치로 거듭나는 가장 큰 차이는 유명세다. 과거에는 연기나 노래를 잘하거나 수려한 외모의 모델이 되거나, 이런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무슨 짓을 하든, 자극적이면 인기를 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돈 자랑만 해도, 초호화 생활을 하는 사진 몇 장만으로도 유명해질 수 있다. 최근 일류 양아치들은 대범하게도 연예인을 등에 업고 선망의 대상이 됐다. 


양아치가, 혹은 양아치 행세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 방콕에만 많아진 것일까? 아니다. 이미 그들을 동경하고 흉내 내는 인간들이 한국에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불편하지만 이게 진실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다. 



'방콕에서 잠시 멈춤'을 출간했습니다. 

더 생생하고 재미있는 방콕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49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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