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몇 달 간 외국에 있다 보니 나를 소개할 때 삼십대 초반의 외국 나이로 소개했다. 그게 입에 붙었는지 한국에 돌아와 “올해 몇 살이에요.”라고 한국 나이를 말할 때면 하루 아침에 나이를 쳐묵한 느낌이 들어서 정말 어색했다. 한국 나이로는 삼십대 중반, 만 나이로는 삼십대 초반인 애매한 나이가 됐다. 열심히 살지도, 그렇다고 막 살지도 않은 애매한 내 삶의 궤적을 항상 싫어해서 그런지 이 애매한 나이 포지션도 참 싫다.
몇 년 전, 그러니까 한국 나이도, 만 나이도 모두 빼박 삼십대 초반이던 시절 나는 회사를 다녔다. 그곳에서 아재들과 대화를 하다 내 나이 이야기가 나오면 그들은 아직 한참 때네, 이제 시작이지, 내가 네 나이면 못할 게 없겠다 류의 덕담(?)을 해주었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생물학적으로도 내가 어린 나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대학원에서 앞자리가 3인지 4인지 추정 불가한, 그래서 그들의 논문 통과 여부도 추정이 불가한 박사과정들을 숱하게 봐왔다. 그들 앞에서 나는 앞길 창창한 막내였다.
퇴사 하고 잠시 구직활동을 한 적이 있다. 면접을 갈 때마다 ‘적은 나이가 아니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나이 많다고 돌려 깐 것 같은데, 처음 들어본 말이라 약간 충격 받았다. 분명 면접관들도 전 회사에서 나를 격려해주던 아재들과 비슷한 연배인데. 마치 선악과를 먹고 그제서야 부끄러움을 알게 된 것처럼, 그 말을 듣고 나니 내 나이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나만 어리다고 생각했구나. 이제 밥값을 제대로 하든가, 아니면 근사한 능력을 보여줘야할 나이구나. 세상은 나를 그 나이에 할 줄 아는 건 없는 놈으로 보겠군.
인스타를 눈팅 하다, 지금은 이른 나이에 성공하는 것을 강요하는 시대 같다는 누군가의 글을 봤다. 그래서 성공에 조급하고 빨리 성취하지 못하면 패배자로 만들어버린 다는 것. 내 마음이 조급해진 것도 ‘적은 나이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인 것 같다. 분명 연구자를 꿈꾸던 20대 때는 ‘나의 30대는 외국의 연구실 골방에서 보내리라’ 다짐했으니 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신세 한탄의 대부분은 ‘이 나이에’라는 말이 생략된 채로 나왔다. (이 나이에) 백수라, (이 나이에) 기술이 없어서, (이 나이에)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브런치에서 한 편집자가 투고 작가들에게 당부하길, 별 대안도 없는 일기나 신세 한탄 글은 보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걸 보고 이불 속에서 ‘맞다, 맞아 ㅋㅋㅋㅋ’ 했으면서, 오늘도 나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다. 그래도 나의 조급함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상당한 성과다. 결국 조급함의 전제 조건이 되는 ‘이 나이에’를 빼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나이라는 조건을 배제하고 생각해보면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도 않다. 백수라 → 곧 일하면 되지, 기술이 없어서 → 지금부터 배우지 뭐, 모아 놓은 돈도 없고 → 나중에 많이 모으면 되지.
나이라는 게 결국 상대적이라 어떤 맥락에서는 많을 수도, 어떤 맥락에서는 적을 수도 있을 거다. 그럼 맥락에 따라서 많고 적음이 항상 변할 수 있는 것이군. 이 나이엔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데, 이 나이엔 마땅히 뭘 이뤄 놨어야 하는데, 라며 일부러 나이를 의식해서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겠다. 이렇게 글까지 썼으니 내일부터는 ‘이 나이에’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지워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