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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

어제는 초록이와 함께 뛰는 날이었다. 시작은 심상치 않다.


- 안 뛰면 안돼영?

+ 초록아 그래도 오늘은 나가자. 1분 뛰고 9분 걸을래? 2분 뛰고 8분 걸을래?

- 1분 9분(시무룩)


그래서 초록이와 함께 성북천을 나섰다. 9분을 먼저 걸었다. 걷기 시작할 때 초록이가 나에게 팔짱을 끼었다. 아내나 첫째는 나에게 팔짱을 끼워준 적이 없다. 아내는 연애할 때도 팔짱을 끼워준 적이 거의 없다. 초록이는 이제 170cm가 넘어서 내 옷을 입는다. 초록이는 사람들에게 살갑게 대한다. 기분이 묘하면서도 좋다. 이런 게 딸을 키우는 보람인가. 첫째딸은 유도를 배우면서 업어치기 해줄까를 시전하는데, 그나마 둘째 딸은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9분이 되어 1분 뛰기를 시작했다. 빨리 뛰지는 않고 천천히 뛴다. 1분은 너무 짧다. 다시 9분 걷기 시작. 다시 팔짱을 낀다. 갑자기 자기는 너무 졸리다고 한다. 이제 밤 9시만 되면 졸린다고 한다. 지금도 무척 졸리다고. 또 요즘 눈이 너무 나빠졌다고 글자들이 안보인다고 안경을 맞춰야겠다고 한다. 보통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엄마와 상의하세요 다. 이내 자신은 감기가 다 낫지 않아서 컨디션이 별로라고 오늘은 그냥 걷자고만 한다. 그러자고 했다. 몸 컨디션 다 나은면 그 때부터 다시 뛰자라고 했다. 성북천 시작 반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다 사달라고 한다. 


+ 그래. 무슨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 빵빠레. 

+ 아니면 맥도날드나 롯데리아에서 소프트아이스크림 먹을래?

- 그래


성북천이 시작되는 한성대 입구에는 롯데리아가 있다. 아이스크림을 받아서 나왔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는 초록이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잠이 깬다고 한다.


+ 내일 아빠랑 데이트 하는 날인데, 뭐 먹고 싶어?

- 먹고 싶은게 별로 없는데, 아빠 먹고 싶은 거에서 고를께. 먹고 나면 뭐할거야?

+ 서점갈까?

- 나는 언니처럼 책 좋아하지 않아. 딴데 가자. 옷사줘!

+ 어떤 옷이 갖고 싶은데?

- 통이 넓은 바지

+ 그래 그럼 밥먹고, 자라나 H&M 가자. 대신 저녁은 비싼 거 먹으면 안돼.

- 응. 알았어.

+ 내일 아빠 회사로 몇 시까지 올 수 있어?

- 방송반 끝나고 가면 좀 늦을 거 같은데. 

+ 그래 끝나면 연락줘


기분이 좋아진 초록이. 재잘재잘 된다. 방송반 선배 오빠 중에 매기와 비둘기가 있는데부터 요즘 연습하는 춤과 노래를 걸으면서 동작하고 흥얼거린다. 


이런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길어봐야 몇 년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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