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다”
1.
조르바에게 자유로운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을까?
군대에서 이 책을 읽고 조르바의 자유분방함에 한창 매료된 적이 있었다. 그가 가진 삶의 태도를 사회규범과 페미니즘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바치는 삶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일깨워주는 듯했다. 이 책의 완독 순간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고착된 관습을 초월한 인물로 묘사된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며 생생하게 체험하는 일만을 통해 삶과 마주한다. 생동감 넘치는 모든 순간순간을 느끼고 즐기고 반응한다. 자신의 느낌과 감정에 솔직하게 대한다. 현대인이 자주 장착하는 사회적 가면이 뭔지도 모를 거다. 오로지 열정과 순수함으로 가득하다.
가끔 삶에 권태가 찾아올 때면 조르바를 찾곤 한다. 작열하는 정열의 태양을 맞으며 있는 그대로의 삶과 욕망을 영위하려는 그를 보면, 잠재되어 있는 생의 열정이 깊은 곳에서 꿈틀거린다. 다음은 생전에 카잔차키스가 마련해 놓은 비문(碑文)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2.
우리는 자유를 제한하는 구속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인간이 자유로운 상태가 되려면 무언가로부터 구속받지 않아야 한다. 자유를 구속하는 속박은 세 가지가 있다.
그중 첫째가 물질의 결핍이다. 자유로운 인물 조르바는 물질을 구하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밥과 닭다리가 영혼이 된다’는 그의 말로 알 수 있듯 그는 물질의 결핍을 깨고 나아가는 인물이다.
둘째는 부당한 제도의 구속이다. 소설에서도 신분제와 같은 온갖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가 등장하고, 저자는 이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인다.
셋째는 온갖 관념과 생각이다. 종교의 교리나 관습적인 행위 양식, 이데올로기 같은 것들이다. 이것으로부터의 속박은 유일하게 스스로 각성을 통해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물질의 결핍과 부당한 제도는 내가 원한다고 벗어날 수가 없다. 완전한 자유의 국가는 어디에도 없구나.
나를 구속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 보았다. 학교, 취업, 인간관계 등… 자유에 목마른 나를 옭아매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나는 조르바처럼 될 수 없을 것 같다. 비통하다.
3.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나타나는 여성관은 어떨까.
조르바의 실존적인 삶의 지향점은 두 팔 벌리고 받아들였으나 그가 여성을 대상화하는 가치관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들었다.
그는 크레타 해안가의 작은 마을에서 여인숙을 운영하는 오르탕스 부인과 연인 사이가 된다.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젊은 과부에게 호감을 갖고 있지만 차마 속마음을 비추지 못하고 쩔쩔매는 화자 ‘나’와 대비된다. 조르바의 남성 우월적인 여성관은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한다.
적지 않은 독자들이 많이 놀랐을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양성평등 관념이라고는 새 발의 피만큼도 없는 조르바 식의 여성관은 성평등과 페미니즘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지금의 시대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 본능적 욕망에 충실했던 디오니소스적 인간인 조르바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걸러낼 것은 걸러내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자기주도적인 독서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