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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음악을 타고

낯선 길을 거닐며, 여행과 음악에 대해

by 멜랑콜리너마저


홍콩 여행 동안 주야장천 들었던 영화 <중경삼림>의 OST ‘California dreamin’과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 <시네마천국> 속 알프레도와 어린 토토가 살던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 팔라조 아드리아노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테마곡들. 베네치아에서는 장기하와얼굴들의 ‘그건 니 생각이고’를 반복 재생하고 흥얼대며 미로 같은 골목길을 누볐고, 살레르노에서 나폴리로 향하던 기차 안, 사무치는 외로움의 수렁에서 들었던 이소라의 애수 어린 목소리는 결국 눈물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끝이 아니다.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의 일출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들었던 루 리드의 ‘Perfect Day’는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상상하게 했고, 로마의 베키오 다리에 기대어 떨어지는 석양을 응시하며 반복해 들었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Can’t help falling in love’는 모든 일이 반드시 계획대로 흘러가라는 법은 없다는, 그래도 괜찮다는 걸 상기시켰다. 기억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다.



그때 들었던 음악들을 우연히든 의도적으로든 지금 다시 듣게 되면, 여러 여행지에서 코끝으로 스미던 공기와 피부에 닿는 바람결이 고스란히 재현된다. 당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던 온갖 상념과 감정들이 시공간의 간극을 초월하여 되돌아온다.



이처럼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청각뿐 아니라 온 감각을 동원해 그 무언가를 몸으로 경험하는 일 같다. 어떤 순간들은 음악과 함께 단단히 묶여 내 안에 영원히 남는다. 음악이 그 시절의 공간과 시간, 감각과 감정을 촘촘하게 봉합하고 있는 셈이다. 음악은 그런 힘이 있고, 그건 곧 나의 힘이 된다.



이번에 가게 될 사십일 간의 여행에는 과연 어떤 음악이 나를 따라올까. 어떤 감정이, 어떤 날씨가, 어떤 공간이 나도 모르게 그 음악을 불러내게 할까. 그리고 그것이 또다시 나의 시간 속에 얽히게 될까.



그렇게 아직 오지 않은 순간을 생각하며. 여행이 끝난 뒤에도, 그 음악이 나를 다시 그곳으로 데려다 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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