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 요새 블로그 많이 해요. 놀러와요.”
언젠가의 카톡 대화에서 한 후배가 이런 말을 했다. 한 때 1일 1포스팅을 할 정도로 블로그에 열중했던 때가 있었다. 누가 볼테면 보라지, 그 공간은 나의 생각을 털어놓는 공간이었다. 지난 여행의 기억도 참 열심히 기록했다. 사진을 보정하고, 지도에 경로를 그리고, 좀 더 정확한 정보를 검색해가며, 썼던 글을 몇번이고 가다듬던 시간.
그러다 육아에 밀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겠다는 시도에 밀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급기야 블로그는 홀로 덩그러니 웹공간에 버려져 있었다. 그런 나를 다시 블로그의 세계로, 다시 무언가를 적는 사람으로 불러낸 것은 한동안 자주 보지 못했던 후배였다.
글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얼굴을 맞대고 밥 먹고 수다 떨며 몇 시간을 함께 보내도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마음 속의 이야기가 술술술 나온다. 어떤 사람의 진심과 진솔한 마음을 알기에는 어쩌면 그가 쓴 글이 가장 영양가 있는 액기스일지도 모른다.
후배는 예전에 내가 블로그에 적어놓은 글을 보며 자신과 너무 비슷해서 ‘내가 쓴 건가?’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공감하기도 했고,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도 글 속에 털어놓은 진심에 ‘사회에서 만나는 누구보다도 가깝게 느껴졌다’고 했다. 이런 진심을 열어먼저 보여주는 후배가 참 고마웠다. 그런데 이 역시 ‘카톡’으로 전해졌던 말. 또 어쩌면 그런 마음조차 ‘카톡’이라는 매체를 통한 문자였기 때문에 전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전화통화로 이런 말을 서로 나눌 수 있었을까? 상상이 안 된다.)
나 역시도 일상의 만남에서는 어쩐지 나누기 쉽지 않을 이야기와 생각들이 글을 통해서만 전달되고 소통되는 그 즐거움을 알기에, 우리 블로그에서 서로 글쓰며 놀자는 그 초대의 마음을 백번 이해했다.
사실, 글을 쓸 때는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재미있는 법. 혼자서 쓰기만 하는 글은 쓰는 사람이 재미가 없다. 후배는 나뿐만 아니라 종종 글을 끄적이곤 했던 주변 지인들을 그렇게 불러들였다.
“요즘은 블로그 안해?”,
“네 글이 읽는 맛이 있어.”…
문어체의 공간 안에서만 비로소, 구어체로는 담을 수 없는, 그 자신도 몰랐던 진심이 ‘발굴’되고 심지어 ‘생산’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문어체만의 특별한 힘이라고 할까요.
<문어체의 진심>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한겨레출판, p.364
신형철 작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다 만난 구절에서 나는 후배와 주고받았던 카톡 대화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후배가 주변의 지인들을 블로그 세계로 다시 부른 것은, 서로의 글을 주고 받으며 놀자는 것은, 아마 그 역시 그 문어체만의 특별한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심을 털어놓은 글에,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졌다는 그 말은, 아마도 문어체의 공간 안에서만 비로소 열리는 그 무엇이었을 거다. 문어체의 진심.
나는 그 때의 대화 이후, 덩그러니 버려져있던 블로그를 재정비하고 웹 공간에 다시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글을 적기 시작하면서 잊혀져 사라질 나의 사소한 일상은 내 것으로 남겨졌고, 우리의 글은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고 끈끈한 감정을 가지게 해주었다.
하마터면 그냥 영원히 버려져 글을 주고 받는 재미나 쓰면서 느끼는 힐링과 해소의 감정을 잊고 살았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같이 글쓰고 놀자고 불러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물론, 중간중간 바쁜 일이 생기면 잠시 손을 놓기도 하지만 잠시 쉬어가는 타임이 있더라도 나는 이제 이 공간을 내버리지는 않게 되리라는 어떤 수동형의 마음을 갖고 있다. 버려두지 않겠다는 능동적 의지가 아니라, 이 문어체의 힘을 알게된 이상 나도 모르게 이끌려 적고 있을 거라는 수동적인 마음. 그것이 무엇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결국 뭔가를 계속 적어가겠구나, 라고 막연하게 느끼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의 영향이 크기도 하지만,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사람들 사이의 직접 만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메타버스의 시대라지 않는가. 직접 만남이 줄어들고 인터넷 공간에서 주로 교류하는 요즘 시대의 관계맺음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그러나 문어체의 진심을 전하려면 무언가를 적어보내야 하는데, - 물론 직접 적어서 보내는 손편지의 수고로움에 우리가 더 감동받기는 하지만 - 기술의 발달로 현대 사회의 우리가 누군가에게 문어체의 진심을 전하는 가장 편한 방법은 결국 인터넷과 전자기기를 통한 소통이지 않을까. E-mail이 되었든, 카톡이 되었든, 소설미디어가 되었든..
나는 그래도 전자기기를 통한 소통보다는 직접 만남을 선호하고, 그것이 우리를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왔지만, 때로는 직접 만남보다 더 크고 깊은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이렇게 전자기기를 통한 문어체의 소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친구들과 몇 시간을 함께 보내며 먹고 마시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지만, 그 중 간간히 서로의 속내가 오가기도 했지만, 내 시야의 프레임에 기억된 순간순간의 소중한 장면들은 다른 걸로 대체될 수 없지만, 서로 살을 부대끼고 손을 맞잡았던 온기는 그 나름대로 마음을 충만하게 해줬지만, 그러나 직접 만남에서는 다 주고받을 수 없는 마음들이 있다.
구어체로는 담을 수 없는 진심은 만남 후에 카톡을 통해서, 혹은 블로그를 통해서 ‘그 날 이러이러한 감정을 느꼈다’ 라는 문어체로 변화되어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전해지겠지. 이제 문어체의 진심은 전자기기와 인터넷과 만나서 나의 지인에게, 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더 쉽게 더 멀리 전해지고 있다.
결국 그래서 내가, 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속내와 머릿속의 구상과 꿈꾸는 희망을 이렇게 열심히 인터넷 세상에 적어내고 있는 것 아닐까. 구어체로는 전할 수 없는 마음과 생각들이 전해지길 바라며…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한겨레출판사
슬픔은 참 어려운 감정이다. 나의 슬픔도, 타인의 슬픔도… 슬픔이라는 단어는 그동안 수없이 많이 들어왔을텐데, 막상 슬픔을 마주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슬픔’ 이라니…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은 이 책은 여러 문학 작품 속에서의 슬픔을 꺼내어, 우리에게 슬픔이란 감정을 마주하게 해준다.
책은 슬픔을 이야기하며 시작하지만, 삶의 진실, 정치적 감수성, 사랑의 온전함 등 폭넓은 주제를 여러 문학작품과 함께 이야기해준다. 슬픔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삶의 태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