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잡아먹지 않으면, 네가 나를 통째로 집어 삼킨다.
식인 : (명사) 사람을 잡아먹음. 사람의 신체, 즉 인육을 섭취하는 행위.
한 때는 세계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식인이라는 행위가 있었다고 한다. 식인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시절에는 동식물을 섭취하듯이 자연스럽게. 심각하게 먹을 것이 부족한 극한의 상황에서는 윤리적으로 내키지는 않지만 살기 위해서. 그러나 문명화되고 먹을 것이 풍부해진 현대 사회에서 이제는 대부분 사라졌다고 믿는 식인의 풍습을 색다르게 이야기하는 소설을 만났다. 정말로 이런 인간 군상이 있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된 소설, <0 영 ZERO 零>.
소설은 주인공 알리스가 남자친구 성연우에게 이별을 통보받으면서 시작된다. 성연우에 따르면 알리스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고 사악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 알리스는 자신의 속내를 1인칭 화법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내가 잡혀 먹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잡아먹는 게 당연하다며, 그래서 그는 제자를, 엄마를, 남자친구를 은밀하게 망가뜨린다.
<0 영 ZERO 零>의 내용을 한마디로 이야기한다고 하면 ‘식인의 세계관’ 이다. 식인이라는 풍습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주인공 알리스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하는 종족’ 이라고 말한다. 윤리와 감정에 앞서서 아니라고 부정하지 말고 현실을 받아들이라며. 알리스가 말하는 식인은 인육을 먹는 식인종이 아니다. 한 인간의 자존감과 성공을 파괴하고 내 앞에서 없애버리는 종류의 식.인.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상대를 잡아먹어야 한다는 논리. 사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중 이 이야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악의적 의도를 지녔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설사 의도를 지니지 않았어도 우리는 무의식 중에 상대를 잡아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득권을 차지한 사람이 그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며 노력했을 뿐인데, 그 아래에서는 인생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쓰러져 간 사람들이 많이 있을테니..
심지어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 도시의 식인종들은 너무나도 개화, 문명화되어서 심장을 잘근잘근 씹고 혈관를 쪽쪽 빨고 있는 순간에도 최고로 우아하고 선량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자들’ 이다.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내 앞에 앉은 사람이 사실은 식인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남들에게는 보일 수 없는 속마음이 있다. 숨기고 싶은 이기적인 내면. 작가는 사람들의 숨기고 싶은 감정을 1인칭 화자의 말로 거침없이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말을 건다. 아닌 척, 고상한 척 하고 있지만 너도 그렇잖아. 사실 다들 그런 거 아닌가? 내 말이 틀린가?
이 소설이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그 부분이다. 알리스가 보이는 언행에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사실 너도 그렇잖아?’ 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리는 거다.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알리스만큼 계획적이고 치밀하지 않지만 우리도 때로는 어떤 상대가 잘 안되길 바라거나 혹은 경쟁에서 내가 이기고 올라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알리스의 세계관은 섬뜩하고 무섭지만, 속마음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일수도 있다고 느끼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 알리스는 그렇게 독자를 세뇌시킨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상대를 잡아먹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알리스도 아무나 잡아먹지는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감식안을 가진 인간’ 이라고 말한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은 그저 내버려두고 재능있는 희귀한 레어템을 교묘하게 망가뜨리는 쾌락을 즐긴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는 없다며 자신과 비슷한 스펙을 가진 동기에게 의도적으로 작업을 펼치고, 재능이 엿보이는 제자를 돕는 듯 하지만 일부러 그녀의 재능과 거리가 먼 곳으로 인도한다.
나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동료나 나를 뛰어넘을지도 모르는 재능을 가진 후배를 경계하는 모습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흔히 접하기에 우리는 알리스의 이야기에서 더욱 자유로울 수 없다. 알리스처럼 한 사람을 타겟으로 삼고 망가뜨리기 위해 교묘한 전략을 펴지는 않아도 보통의 사람들도 나름의 감식안을 가지고 어떤 이를 경쟁상대로 상정하거나 그를 뛰어넘고자 한다. 결국 세상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만히만 있으면 언제 잡아먹힐지 몰라.
엄마를, 동료를 제자를 잡아먹고도 알리스는 당당하다. 그들이 잡아먹히게 된 것은 다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식욕으로 충만한 식인종’이 놓은 덫에 제 발로 다가왔다고. 다만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더 참여적이고, 적극적일 뿐이라고.
알다시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모든 것은 네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죄다 네 탓이라는 말이다.
첫째 아이가 두 살 무렵,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해서 아는 사람도 없고, 육아도 처음이라 모르는 것 투성일 때라 누군가와의 소통에 목이 마른 상태였다. 마침 지역 기반의 인터넷 카페에 '두 살 아이 친구 찾아요' 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반가운 마음에 당장 댓글을 달면서 나 포함 세 명이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위로 5살의 첫째아이가 있고 두 살 둘째를 키우는 A가 나이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나, 지방에서 올라와 연고하나 없이 첫 아이를 키우는 B가 제일 어렸다. 처음에는 셋이 잘 어울리고 아이들을 동반한 모임을 종종 가지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A가 나와 맞지 않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집은 살치살 밖에 안 먹어."
"우리 어머님이 통장에 현금 꽂아주셨잖아."
"지금 남편 차가 뭔지도 모르겠다. 자기 마음대로 매일 바꿔."
물어보지도 않은 재산자랑을 할 때부터 물음표가 생기는 사람이었는데, 나와 직접적으로 문제가 생긴 적은 없지만, 나는 A의 언행에서 거부감을 느껴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마침 그 집 아이와 우리 아이가 만나면 자꾸 트러블이 생기길래 나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그 모임에서 빠졌다.
그리고 내가 빠져나온 그 관계에서 남은 B는 일방적으로 A에게 쪽쪽 빨리고 있었다. A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다가 나에게 와서 하소연하는 게 B의 일상. 어떤 날은 A가 갑자기 저녁때 '집에 남편 없지?'라며 연락을 해왔단다. 지금 집이 엉망이라 안된다고 했는데도 A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B의 집에 찾아와서는, 저녁 먹고 놀다가 아이들까지 씻기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돌아갔단다. 그 밤에 난장판이 된 집을 혼자 치웠다는 B.
그 외에도 일화는 많았다. B가 꾸며놓은 집안의 인테리어를 촌스럽다며 비웃었다던지, 그것도 모르느냐며 무시했다던지, 닫아놓은 방문을 굳이 열어서 정리 좀 하면서 살라했다던지 등의 몰지각한 행동. 어른들의 행동은 아이들이 그대로 보고 배운다고, A의 첫째 아이는 B의 집에 와서 '이모, 여기 방 더러워.'라며 지적하고, 둘째 아이는 B의 아이를 자꾸 때리곤 한다며 나에게 속풀이를 했다.
"아니, 그걸 왜 거절을 못했어."
"그런 말을 들었으면 화를 냈어야지. 아니면 최소한 표정 싹 바꾸고 정색을 해야지."
그 때 이미 나는 A와는 잘 연락하지 않을 때라 한 쪽의 이야기만 듣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지만, B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A와 거리를 두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 때마다 B는 ‘어떻게 그러냐, 못하겠다’, '그래도 가끔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와 B의 대화는 항상 B의 하소연으로 시작해서 나의 다그침, B의 한숨으로 끝났다. 내가 또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져 지금은 연락하지 않지만, 마지막 연락을 할 때까지도 B는 변화가 없었다.
그런 경우, 아무리 옆에서 도와주려해도 답이 없다. 자신이 당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걸 박차고 나오지 못한다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해결하려는 강한 의지가 없다면, 주변의 인물은 어디까지나 제3자일 뿐이다. 그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
물론, 당연히, 타인을 교묘히 이용하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등쳐먹는 그 사람이 잘못이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를 옹호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런 알리스의 논리는 어디까지나 포식자의 논리일 뿐. 우리는 동물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약자라도 스스로를 지켜낼 힘을 가져야 한다.
알리스가 잡아먹을 먹이를 알아볼 ‘감식안’을 갖듯이, 약자는 누가 나를 쪽쪽 빨아먹고 잡아먹을 사람인지를 알아볼 ‘감식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감지하는 순간 끊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 방어를 해야한다. 소설 속 성연우가 그랬듯이.. 알리스의 전 남친 성연우는 알리스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알리스를 공격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성연우는 4년의 연애기간 동안 그가 파악한 그녀의 본 모습과 그동안 자신이 시달린 고통에 대해 토하듯 뱉어내며 그 관계에서 빠져나온다.
상대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잡아먹고 먹히는 세계에서 일단 먹잇감으로 포착되지 말아야지. 믿을만한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어디까지 허용하고 거리를 둘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소양이다.
돌이켜보면 B가 A에게 쪽쪽 빨아먹히고 있을 때, 분명 나도 옆에 있었다. 내가 그 모임에서 빠져나오기 전부터 A가 B에게 선을 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건 알았지만, 나와 직접 부딪힌 일들이 아니기에 B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나설 수 없었다. 속으로는 ‘나에게 똑같이 하기만 해봐, 나는 절대 가만 안 있을테니.’ 라며 큰 소리내며 따질 것을 각오하며.
그러나 A는 나에게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 내게는 무례하게 군 적이 없었다. 내가 일부러 거리를 둔 것이 아니라면 나와 A는 속으로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지언정, 겉치레로는 인사하며 별 일 없이 지냈을 것이다.
A는 자신의 감식안으로 사람을 알아본 거다. 자신이 내키는 대로 이기적으로 굴어도 B는 아무 말도 못할 만만한 상대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러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나 역시 나의 감식안으로 알아본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그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느낌으로 거리를 두었지만, A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 내게 이로울 리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한 것.
그동안 나는, 내가 세상물정에 둔하고 철없는 것에 비해 그동안 좋은 사람들만 만나왔다고, 참 인복이 많고 운이 좋다고 생각해왔다. 나처럼 뭘 모르는 사람이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호되게 배신을 당하거나 사기당한 적 없이 살아와서 참 다행이라고. 그런데 문득 ‘그것이 다 내 감식안 때문이었구나’ 라는 자뻑어린(?) 생각이 들었다. 훗~ 나와 맞지 않는, 내 취향이 아닌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알아보고 거리를 둔, 나의 감식안을 칭찬해~
평소 인간은 선한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소설을 읽으며 처음에는 ‘이런 인물이 정말 있다고?’, ‘사람이 사람을 대상으로 의도적으로 이럴 수 있다고?’ 의심하며, 작품 속 식인의 세계관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생각할수록 소설 속의 세계관과 인물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정말로 있을 법한 느낌. 어쩌면 작가가 알리스와 같은 생각을 해보았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의 마지막이 실린 작가와의 대담이 없었다면, 나는 작품과 거리를 두지 못하고 계속 작가를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ㅋ
교훈적인 글을 쓴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사람을 만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웃음)
사람의 속내를 투명하게 알 수 없는 사회에서 최소한 억울하지 않게 살기 위한 소소한 깨달음. 세상이 마냥 아름답고 선한 사람들로만 가득하지는 않다는 경고.
문득, 우리 둘째 아이가 떠오른다. 목소리도 큰 편이고 자기 주장도 강한 첫째 아이는 걱정이 안되는데, 상대적으로 목소리도 작고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둘째 아이가 걱정이다. 서로 학용품 교환하자는 친구의 제안에 본전도 못챙기고 좋은 물건 다 내주고 오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친구 말을 다 따르고 집에 돌아와서 내게 하소연 하는 둘째 아이. 얼마 전에는 학원에서 앞자리 친구에게 잘 안보이니까 조금만 비켜달라고 말했는데,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라는 가시돋힌 대답을 듣고 아무 말 못하고 눈물만 글썽였다지.
내가 나를 지켜왔던 감식안과 가끔은 한 마디 버럭할 수 있는 포효가 이 아이에게도 필요하다. 언젠가 아이와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 소설.
이 작품은 교훈적인 소설이 맞는 것 같다. (웃음)
<0 영 ZERO 零>, 김사과, 작가정신
서로 먹고 먹히는 세계에서 내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잡아먹는 게 당연하다는 '식인의 세계관'을 가진 소설. 한 인간의 자존감과 성공을 파괴하고 내 앞에서 없애버리기 위해 주인공 알리스는 주변의 인물들에게 교묘하게 작전을 편다.
1인칭 화법으로 보통의 사람들이 숨기고 싶은 이기적인 내면을 내보이며 ‘사실 너도 똑같잖아?’ 라는 질문을 던진다. 분명 독자를 경악하게 만드는 인물이었는데, 어느 순간 혼란스러운 동질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