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훈련 파트너는?

by melange

결혼생활이 올해로 벌써 13년차가 되었다.


사실 이제야 편하게 하는 말이지만,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 다들 그럴 거라고 믿고 싶다 - 나는 결혼 후 남편과 정말 많이 싸웠다. 그는 내게 있어 ‘중력같은 존재’라고 한껏 칭찬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결혼 초반에는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날보다 서로 말 안하고 냉랭한 공기로 지낸 날이 더 많았다. 며칠이 뭐야, 거의 한달 가까이 말 안하고 지낸 적도 있고, 화해를 하자며 말을 건넸는데 더 큰 싸움으로 번져서 그냥 말을 걸지 않는 게 더 나을 뻔 했다 여긴적도 부지기수다.


그는 지금까지의 인생 중 내가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하는 편이라고, 나름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쌓아왔다고 생각한 스킬이 그에게는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아니, 일단 그와 대화를 할 때는 항상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 돌아왔다. 나는 남편과의 의사소통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다. 분명히 화내지 않고 대화로 풀어보자 건넨 말이었는데, 정작 본질은 사라지고 부정적인 감정만 커지는 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대부분의 패턴은 이런 식이었다. 무언가 별거 아닌 작은 일에 내가 마음이 상했고, 그저 그 마음에 공감해주고 우쭈쭈하며 기분을 풀어주길 바라며 불만을 토로하면, 남편은 말이 없거나 공감해주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부연설명이 길어지고, 서운한 마음은 점점 커지고… 그런 대화들이 결국 싸움이 되면 며칠씩 서로 말을 안하다가, 결국 그 답답함을 못 이기고 내가 먼저 말을 건다. 별 거 아닌 사소한 서운함을 공감받고자 했는데, 어느 순간 나는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이 되어 있었고, 서로 통하지 않음에 답답함만 커졌다.


대체 우리는 어떻게 연애를 했던거지? 연애시절에는 부딪힐 일 없었는데, 함께 살며 일상의 날것을 함께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약 30년 넘게 따로 살아 온 두 사람의 차이는 당연하고 그것을 대화로 풀어가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부부상담이 필요한 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 분명 매일매일이 전쟁같았는데...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은 사람들을 '까다로운', '배려심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해야 올바른 행동인지에 대한 규정을 내 머릿속에 놓고, 이런 규정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당신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사람은 되려 당신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 당신이 어떤 인성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게 만들고 당신의 약점을 들추어낸다. 이들은 당신이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적수처럼 행동하고 있을 뿐이고, 우리의 약점을 계속 건드려주는 인생의 훈련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당신은 상대가 약점을 그만 건드려 주었으면 하고 바라겠지만, 당신 스스로 약점을 극복한 후에야 비로소 상대의 행동이 중단된다

<대화 호신술>, 바바라 베르크한


말 안하고 지내는 수많았던 시간 동안,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답을 얻고 싶어 ‘소통', '대화', '부부생활' 이런 키워드의 책들을 찾아 읽었다. 바바라 베르크한의 <대화호신술>도 그 중 한 권의 책이었다.


이 구절을 처음 만났을 때는, 나는 내가 남편의 약점을 계속 건드려주는 그의 훈련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를 '까다롭고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가 공감과 의사소통의 약점을 극복한 후에야 나는 그를 그만 건드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안 싸우고 웃으며 지낸 날을 손에 꼽을 정도로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는데, 10년차 쯤 되면서부터였나? 어느새 우리는 언제 싸웠는지 기억이 잘 안 날 정도로 잘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언제부터, 왜 그렇게 된 거지? 나조차 그걸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둘 사이에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



관련 책들을 찾아읽고 우리의 대화와 나를 되돌아보며, 나는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되었는데, 내가 상대의 반응과 평가에 연연하는 사람이었다는 점. 인정받고 공감받고 싶은 마음이 컸고 상대로부터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돌아오면 그것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겨버릴 수 있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반응이 바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내 말을 안듣거나 무시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건 그보다 나중이었다. 무언가 바뀌기를 원한다면 상대를 믿고 기다려야 했다. 즉각적인 변화와 대답을 재촉할 것이 아니라, '서로 내버려두는 미덕'을 발휘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했다.


그렇게 조금씩 내버려두기 시작해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우리는 서로를 자극하지 않게 되었다. 가족구성원 간에도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적절한 순간의 멈춤과 모르는 척이 필요하다는 걸 체득하게 되면서 남편과 나에게 평화로움이 찾아왔다. 살짝 삐걱거리는 분위기가 풍기면 적절히 넘어가는 스킬도 생겼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렇게 서서히 찾아왔다.


물론 그는 여전히 말수가 적고, 아쉽게도 커뮤니케이션 스킬 역시 눈에 띄게 발전한 같지는 않다. 여전히 말투는 딱딱한 편이며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는데 어색하다. (이렇게 말하면 서운할라나? 그래, 그래도 예전보다 나의 서운함에 한 마디 말을 건네기는 한다 ㅋ) 다만 달라진 것은 내가 이제는 그의 모호한 반응 속에 담긴 뜻을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무언의 표현이 아무 생각이 없음이 아님을 알고, 겨우 꺼낸 한 마디 속에서 많은 감정을 읽어내어 서운하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되었다. 티키타카가 잘 되지 않는 점은 여전히 아쉽긴 하지만, 대신 그만의 묵직한 장점을 알고 있다.




:: 누가 누구의 훈련 파트너인가?


분명 예전에는 남편에게 약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계속 자극해주는 훈련파트너라고, 그가 좀더 공감할 줄 알고 감정을 표현하게 되면 우리가 싸우지 않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도, 책 속에서 저런 구절을 만나 내가 코멘트를 적어두었는지도 잊고 있었는데, 블로그를 뒤적이다 오랜만에 옛날에 적어두었던 글을 읽고서, 나는 다시 깨달았다. 내가 그의 훈련파트너가 아니라, 남편이 내 인생의 훈련파트너였다는 것을.


<대화호신술>의 구절을 다시 읽어본다.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은 사람들을 '까다로운', '배려심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해야 올바른 행동인지에 대한 규정을 내 머릿속에 놓고, 이런 규정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당신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사람은 되려 당신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 당신이 어떤 인성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게 만들고 당신의 약점을 들추어낸다. 이들은 당신이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적수처럼 행동하고 있을 뿐이고, 우리의 약점을 계속 건드려주는 인생의 훈련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당신은 상대가 약점을 그만 건드려 주었으면 하고 바라겠지만, 당신 스스로 약점을 극복한 후에야 비로소 상대의 행동이 중단된다

<대화 호신술>, 바바라 베르크한



그러니까 남편이야말로 나의 약점을 들추어내고 건드려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상대의 반응을 미리 규정해놓고 그 기대에 충족하지 못한다고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곤 했는데, 그가 달라지고 변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직시한 후에야 상황이 달라졌다. 상대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때로는 모르는 척 기다리면서 나는 이제야 그와 소통하는 방법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동안 반응이 재깍재깍 오는 사람들만 만나오다가, 느리게 반응하고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만나 답답해했지만, 결국 나의 약점을 극복하고 난 후에야,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상대의 행동이 중단된 것이다.



싸움이 멈추고 결혼생활이 좀 편해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예전보다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그리고 남편은 나를 키우는 사람이었다고.


물론, 나 역시 그에게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감정을 드러내고 공감을 원하는 사람과 어떻게 소통해야하는지를 그도 10여년의 시간동안 서서히 깨달았을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입을 꾹 다물고 시간이 지나 저절로 덮어지기를 바라면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도, 그럴수록 문제가 점점 더 커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의 훈련으로 그도 예전보다 좀 더 괜찮은 남편이 되었다고, 그래서 우리가 이제 덜 싸우는 거라고... ㅎㅎ




:: 나를 키우는 가족들


그런데, 나를 키우는 사람은 남편만이 아니었다.


올해 5학년이 된 큰 아이. 아이의 학습에 관여하게 되며 나와 아이는 서로 무던히도 부딪혔다. 수업 내용도 어려워지고, 학습량도 많아지며 매일의 학습을 챙겨야 했는데, 아이는 하기싫고 짜증나는 자신의 감정을 너무나 거침없이 드러냈다. 사춘기에 들어서는 나이가 된 아이와의 실갱이가 나를 너무 힘들게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학교를 가지 않았던 3,4학년 시기에는 정말 둘다 날이 설 대로 서있었다.


틀린 문제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몇 번이고 설명해 줄 자신은 있었지만, 하기 싫다며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대놓고 표현하는 아이를 그대로 포용해줄 수는 없었다. 아이의 버릇없는 태도를 타이르다가 결국엔 욱해서 큰 소리를 내고,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끝나면 에너지를 모두 소모해서 내가 나가떨어졌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이면 좋았으련만.. (c) ddimitrova


은근슬쩍 다른 아이와 혹은 둘째 아이와 비교를 하기도 했다. 다른 아이의 성취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자극을 받아 스스로 노력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러나 아이는 자극을 받아 열심히 하기는 커녕, 점점 미운 말과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엄마인 나에게 도전을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하면 엄마가 화낼까? 어디까지는 괜찮은 거지? 일부러 못들은 척 해볼까?' 내가 큰 아이에게 하는 말은 대부분 '~해라, ~하지 마라' 라는 지시로만 채워지고 있었고, 그럴수록 우리의 트러블은 점점 더 악순환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이름을 가지고 놀렸다길래, "누가 그랬어?" 라고 물었다. 그래, 나는 정말 단순히 궁금해서 물은 거였다. 그런데 아이가 다급히 입을 닫기 시작했다. 모른단다. 아니, 모를 수가 있나. 그 애를 알아내서 혼내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도 모른다고만 한다. 꼬치꼬치 캐묻는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졌다.


이런 일도 있었다.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와 만나서 등교하겠다길래 매일 몇시에 만날지 약속을 하고 오라고 했다. 다음날, 약속하고 왔냐고 묻는 말에 아이가 또 입을 닫았다. 까먹고 안한 것이다. 그냥 안했다고 말하면 될텐데 아이는 또 침묵을 행사했다. 아니, 이게 말하기 어려울 일인가? 결국 또 언성이 높아졌다. 아이는 이제 불만을 표현하는 것에 더해서 입을 닫고 대화를 거부하기까지 나아갔다. 나는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뭐 물어볼 때, 그게 화 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해?"


남편에게 물었다. 그는 끄덕였다. 본인과 직접 연루된 문제는 아니지만, 본인이 그동안 수없이 직접 겪었던 문제라 그랬을까, 제3자의 입장에서 아주 객관적으로 내 말투가 어떻게 들리는지 잘도 설명해주었다. 평소 설명에 재능이 없는 이가 맞나 싶게...ㅋ



:: 나의 새로운 훈련 파트너


그랬다. 이제 나의 훈련 파트너가 바뀌었다.


'좀 더 괜찮은 인간되기' 프로젝트 중, 남편과 소통하는 '성인 vs 성인'의 미션을 완료했고, 모든 것을 내어줘야하는 '성인 vs 유아'의 미션을 끝냈다면, 이제 자아가 생긴 아이와 소통하는 '성인 vs 청소년' 단계로 접어든 것. 이제 아이는 나의 또 다른 약점을 건드리고 있었다.


아이의 미운 말 + 침묵은 내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던 나의 공격적인 말투에 대한 방어적 태도였다. 감정 조절 못하고 버럭 화를 내거나 징징대는 태도 역시, 조절 못하고 욱하고 터져버리는 나의 화를 그대로 닮은 것이었다. 이쯤에서 나는 다시 또 나의 태도를, 우리의 대화를 되돌아본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얻은 깨달음이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상대에게 감시자가 되지 말 것. 반응이 바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내 말을 안듣거나 무시한 게 아니라는 것. 상대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


뇌가 뒤집어져 다시 자리를 잡는 시기라는 사춘기. 타인의 말이 맞다고 여기면서도 그대로 따르고 싶지 않은 아이의 자아와 고집, 그 모습을 이해해주면서도 바른 판단을 하고 좀 더 현명하게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지금의 내가 아이와 풀어야 할 과제이다. 어른한테 버릇없이 행동한다고 야단치고 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수긍할 수 있게끔.... 본인이 버럭 화를 내고도 왜 그랬는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최대한 큰 소리 내지 않고, 때로는 모르는 척 '내버려두는 미덕'이 남편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아이와 지낼 때에도 필요했다.



내가 지각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아이의 태도가 조금 달라진 걸 느꼈다. 매일 정해진 학습을 해야한다는 점에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만, 아이가 먼저 화내고 감정조절이 안될 때 똑같이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말하려 노력했더니 아이의 태도도 조금 달라진 걸 느낀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내가 바뀌면 상대방도 달라진다. 코로나 이후 하루에도 몇번씩 부딪혀 진이 빠지고, 어디 멋대로 해보라며 화를 내며 씩씩더리던 나는 이제 조금 더 괜찮은 엄마가 된 것 같다.





아이와 ‘성인 vs 사춘기’ 미션을 완료하고 나면, 이제 곧 ‘성인 vs 성인이 된 자녀’ 미션을 맞이하게 될 테다. 그 때마다 가족들은 나를 훈련시키며 내 인생에서 약점이었던 부분을 극복하게 만들겠지. 미션을 하나씩 수행해가며 결과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아마 나는 좀 더 큰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남은 미션들을 무사히 마치고 난 뒤 어느 노년의 훗날. 나를 이만큼 성장시켜준, 내 인생의 훈련파트너인 가족들에게 고맙다고 한마디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대화호신술>, 바바라 베르크한, 새로운 제안

책 제목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사람들의 대화 호신술> 이라는, 약간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되어 있지만 원제목은 <Wie Sie gelassen Kontra geben>. 사전을 통해 대충 파악한 독어의 의미는 '어떻게 당신은 상대에게 태연하게 베푸나' 쯤 되겠다. 그러니까 '어떻게 싸우지 않고 내가 이길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었다기 보다는 '어떻게 상대에게 태연하게 반응할 수 있을까' 가 책의 주된 내용이다.

'여러분, 화내지말고 참으세요, 당신이 변하면 상대도 변하게 되어있어요' 류의 도인같은 메세지가 아니라, '쓸데없는 화에 휩쓸리지 말고 무시해버려요. 그렇게 하게 내버려둬요. 그런 곳에 당신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요.' 라고 말한다.

“상대가 던진 말에 쓸데없이 휘말리지 않으면 당신을 공격하는 상대와의 지저분한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 말하며 상대의 쓸데없는 도발이나 불쾌한 표현을 무력하게 만들거나 가볍게 돌려버릴 수 있는 팁도 제시해줘서 약간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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