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중력 같은 존재

by melange

본격적인 우주 관광 시대가 열릴 것 같은 시대. 버진 갤러틱은 내년부터 우주여행 관광사업을 시작할 예정이고, 이미 티켓이 80%나 예약 판매되었다고 한다. 버진 갤러틱 뿐인가, 제프 베조스의 블루 오리진도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도 우주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우주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있다. 우주 관광 시대가 시작이 되어도 - 물론 범점할 수 없는 가격 때문에도 못가겠지만 - 남들은 많은 돈을 얹어주고라도 간다는 아름다운 공간이 나는 겁이 난다. 이 막연한 공포감의 시작은 영화 <그래비티>였다.



:: 무한한 공간은 무서워


영화 <그래비티>에서 보여주는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은 굉장히 압도적이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공간 속으로 빠져들 것 같은 반짝임.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동시에 공포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 무한함 때문이다.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고요한 공간에서 모두와 멀어져 나혼자 남겨진다면…? 우주 쓰레기와 부딪히며 끝없는 공간 속으로 회전하며 떨어져나가는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역)를 보며 나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요하고 한없는 공간에서 계속 떠다니며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무한한 공간의 우주, 아름다워 보이긴 하지만... (출처 : 영화 <그래비티> 스틸컷)


언젠가 보았던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 <콘택트>에서 엘리(조디 포스터 역)가 우주 여행을 떠나기 전에 관계자는 자살을 위한 약을 건넨다.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주는 약. 엘리는 “26광년이나 가서 자살하라고요?” 라고 했지만 나라면 그 약, 꼭 챙겨갈 거다. 그 넓은 우주에 나 혼자 남겨졌을 때의 공허하고 막막한 느낌이 나는 감히 상상이 안 된다.


그러고보면 지구에서 생활하는 우리가 평소에 느끼지는 못해도, 우리를 잡아주고 있는 중력은 얼마나 고마운 힘인가.. 우주 속으로 날아가버리지 않게, 미아가 되지 않게 잡아주는 중력.


난 중력이 없는 것은 두렵다.



:: 두 발로 딱 버티고


영화 <그래비티>의 줄거리를 쉽게 정리하자면, 허블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다가 폭파된 인공위성의 잔해와 부딪혀 우주 속에 홀로 남겨진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역)의 생존기이다. 그저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스토리이지만 영화는 단순히 재난에서 살아남기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영화 속에서 스톤 박사는 어린 딸을 사고로 잃은 후 삶의 초점을 잃은 채 살아왔다. 그저 숨만 쉬며 살아있는 상태. 그랬던 그녀이기에, 우주 공간 속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쉽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죽었다고 생각했던 매트 대령(조지 클루니 역)이 나타나 한 말이 그녀를 살린다.


"알아, 여기가 좋긴 하지. … 여기선 상처 줄 사람도 없고, 안전하지. … 살아가는 의미가 뭐가 있냐고? 자식을 잃었잖아. 그것보다 더 힘든게 어디 있다고.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너의 선택이야. 계속 가기로 했으면 그 결심을 따라야지. 편하게 앉아서 드라이브를 즐겨. 두 발로 딱 버티고 제대로 살아가는 거야."


끊임없이 말을 거는 수다쟁이 캐릭터 같아도 매트 대령의 결정적인 말로 영화의 흐름이 바뀐다. (출처 : 영화 <그래비티> 스틸컷)


자식을 잃은 슬픔보다 더한 어려움이 뭐가 더 있겠느냐고… 계속 가기로 했으면 두 발 디디며 끝까지 살아내라고... 이 영화의 부제 'Don't let go' 가 와 닿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냥 가게 두지 말라고… 이것은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매트 대령의 모습은 그가 살아돌아온 것이 아니라 사실은 스톤 박사의 환상이었을 뿐이지만, 스스로 죽음을 기다리던 그 순간, 삶에 대한 의지가 그녀에게 찾아왔다.



:: 중력 - 무중력 - 뜬구름 잡는 이야기


중력, Gravity는 영화 속에서 중의적으로 표현된다. 지구의 중력임과 동시에 삶에 대한 의지 표명이기도 하다. 중력이 없어도,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다니면서도, 장비만 갖춰져있다면 우리는 ‘살 수는’ 있다. 심장이 뛰고 호흡을 한다는 물리적인 의미로. 딸을 잃고 삶의 의미를 잃은 스톤 박사는 그렇게 살아왔다. 흘러가는 대로 떠가는 대로 숨만 쉬며 떠 있는 무중력상태와 같이. 그러나 그녀는 매트 대령의 말을 듣고서야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 땅에 두 발을 디디고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며 산다는 것이야말로, 진짜 '삶'을 의미한다.


그리고 두 발 디디고 어떻게든 살아내라는 매트 대령의 말은 스톤 박사에게만 영향을 준 게 아니었다. 어떻게든 살아내라는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영화 <그래비티>의 포스터. 그냥 가버리게 두지 말라는 부제 'Don't Let Go'가 주는 의미를 곱씹어보게 된다.


당시의 나는 내가 ‘뜬구름’ 같다 생각했다. 현실에 정착해야 하는데 어정쩡하게 떠 있는 뜬구름. 막연하게만 생각해오던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의 괴리로 갈피를 못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운영하던 블로그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 막연한 것을 쫓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막연한 것을 잡고 싶었다. 하나씩 하나씩 블로그에 남긴 나의 일상과 생각들이 뜬구름 같은 나를 잡.는. 정착기(記)가 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뜬구름을 잡았느냐? 아니,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상과 괴리된 지금의 모습, 그대로도 꽤 괜찮다는 걸 인정하기까지도 참 오래걸렸다. 그런 상태인 나에게 조지 클루니의 말은, 지금의 내게 던지는 메세지 같았다. 무중력 상태처럼 둥둥 떠다니지 말고, 땅에 두 발 디디고 어떻게든 살아내라고...


아직은 무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금의 의지와 애정을 더해서, 무엇이든 해보면서 어떻게든 버텨보라고… 그렇다. 내게도 의지가 필요했다. 뭐가 되었든 버티며 끝까지 가보려는 의지.




:: 내게 중력같은 존재


그래비티는 3D 영화이다. 감독의 탁월한 선택 덕분에 관객들은 그 드넓고 무한한 우주 공간 속을 직접 체험하는 듯한 느낌이 들겠지만 나는 후반부로 갈수록 멀미가 났다. 그것은 평소에도 내가 1인칭의 영상 화면을 어지럽게 느끼기 때문이고, 극장에서 <그래비티>를 관람한 자리가 앞에서 두번째 자리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나 알겠지만 극장의 앞자리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스크린이 한치의 틈 없이 내 시야를 내리누르는 자리… 나는 후반부로 갈수록 속이 미식거렸다. 영화 속에서 던지는 메세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할수록 나의 머리 속은 엉켜가고..


그 때문이었을까, 영화가 끝나고 일어서는데 중심을 잡기 어려워 비틀거렸다. 마치 내가 무중력 상태 속에 있었던 양. 영화 마지막에서 스톤 박사가 지구의 땅에 한 발 내딛기 위해 발바닥에 힘을 꾹 줘야 했던 것처럼 나도 다리에 힘을 주었고, 함께 영화를 봤던 남편의 팔을 꽉 잡고서야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그의 팔에 의지해 영화관을 나오면서 나는 한동안 잊고 있던 이 남자의 매력이 다시금 떠올랐다.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길을 걷는 것에 비유한다면 남편은 자신이 정한 길을 한눈 팔지 않고 우직하게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크게 잘 닦여진 길을 천천히 자신의 속도대로 걸어가는 사람. 그에 비해 즉흥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나는 그 옆에서 이 길 저 길을 기웃거리며 걸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새로 발견한 오솔길을 따라갔다가, 다람쥐를 따라갔다가… 나는 그렇게 다른 길로 빠졌다가 이내 그가 걷고 있던 길로 돌아와 다시 같이 걸어간다고. 그와 함께 사는 건 비유하자면 그런 느낌이라고.


그랬다. 수없이 많이 흔들리고 오랜 시간을 방황했어도 나는 갈 곳이 있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도, 여전히 우직하게 걷고 있는 그에게 다시 돌아가면 되었다. 언제라도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 그게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항상 여기저기 떠돌고 갈팡질팡 방황하고 자신감 넘치는 것 같다가도 금세 위축되고 의기소침해지는 나에게, 한 자리에 굳게 서있는 남편은 '중력' 같은 존재다. 내가 딴 길로 새다가 길을 잃지 않게, 우주 속 저 멀리 날아가지 않도록, 나를 계속 당겨주는 중력. 그래, 맞아. 나 이 사람의 이런 면이 좋아서 결혼했지. 결혼 후 하도 많이 싸워서 잊고 있던 이 사람의 매력이 <그래비티>로 인해 떠올랐다.


내게 중력같은 존재.



:: 그래도 여전히 싸우지만


그가 내게 중력같은 존재임을 깨달았으니 사랑이 샘솟고 항상 애틋할 것 같지만, 부부 사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중심을 잡아주는 그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 끝까지 날을 곤두세우며 싸울 때도 많이 있다.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냐며, 척하면 척 박수가 맞닿지 않는다며 툴툴거리곤 한다.


<그래비티>를 본 지도 시간이 꽤나 흘러서 나 역시 이제는 고민과 방황을 끝내고 앞으로 전진하고 있어야 할 것 같지만 부끄럽게도 그렇지도 못하다. 아무리 지구의 중력이 열심히 잡아주면 뭐하나, 사람들은 그 중력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그럴 때가 있다. 내가 갈팡질팡하다 나락으로 떨어져 그야말로 멘탈이 붕괴되었을 때,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덕분에 나는 다시 숨을 쉬고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어쩜 그는 그렇게 우직하게 중심에 서서 나를 잡아주고 있는지… 글을 쓰고 있자니 내게 중력같은 존재인 그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지만 또 막상 이런 마음을 직접 표현하지는 못한다.


부끄러워 남편에게 직접 소리내어 입 밖에 내지는 못할 말을 남편이 보지 못할 공간 속에 적어본다.

무뚝뚝하고 때로는 통나무같아도, 나를 저 멀리 날아가지 않게 잡아줘서 고마워~



<그래비티> / 감독 - 알폰소 쿠아론 / 출연 -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그동안 이렇게 우주를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무한함 속에 반짝이는 우주, 그 속에 외롭게 빛나고 있는 푸른 별 지구.
그러나 아름다움 속에는 공포감도 공존한다.

그런 우주 속에서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는 스톤 박사에게는 남 모를 아픔이 있다. 어린 딸을 사고로 먼저 떠나보낸 것. 그 후 의미없이 그저 숨만 쉬며 지내고 있었는데,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던 중 폭파된 인공위성 잔해에 부딪혀 우주 속에 홀로 남겨지게 된다. 이내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라이언 박사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동료 매트 대령과의 대화를 통해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는다.

달에서의 한 발만 위대한 발걸음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 영화. 중력을 느끼며 내딛는 한 발도 개개인에게는 위대한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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