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잡는 이야기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by melange


남편은 유난히도 이번 출장을 가기 싫어했다.


업무의 특성상 출장이 잦은 편인 남편은 종종 해외 장기출장을 가곤 했다. 짧게는 1개월, 길게는 3개월... 결혼하고 지금까지 7~8번 정도 다녀왔을려나. 작년에도 3개월짜리 출장을 다녀왔었다. 그러니까 장기출장이 우리 가족에겐 그다지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다. 흔쾌히 잘 다녀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물론, 그동안 자주 있던 일이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출장으로 인한 남편의 부재가 아무런 타격이 없는 건 아니다. ‘아빠 보고 싶다’며 아이들이 가끔 울기도 하고... 그러나 가장 힘든 사람은 누가 뭐래도 나다. 혼자서 아이들을 챙기고 요구사항을 다 들어줘야하고, 집안일과 양쪽 집안의 대소사도 챙겨야하니까. 두 아이들 공부 챙기고, 밖에 나가서 같이 놀아주고, 집에 들어와서 또 부랴부랴 식사준비를 하고, 다 먹고나면 책 읽어달라는 요청 들어주고... 장기출장의 막바지쯤 되면 나는 거의 에너지가 바닥나서 나가떨어지기 일보직전이다.


그러나 주부의 입장에서는, 식사를 간단히 해먹어도 된다(아니 고작 한 명 빠지는 것 뿐인데 왜 식사준비의 체감이 이렇게 다른 것인가;;)거나 혼자만의 조용한 밤 시간을 즐길 수 있다(아니 남편이 집에 있는 평소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는데도 왜 느낌이 다른 것인가;;)는 등의 좋은 점도 있기에, 남편의 장기출장에 큰 불만은 없었다. 그냥 좀 지저분하게,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며 살다보면 출장의 나날들은 지나갔다. 으레 그랬듯이 이번 출장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은 출발 전 짐을 싸면서도 ‘가기 싫다 가기 싫다’는 염불을 계속 읊조렸다. 마치 후에 벌어질 일을 예상이라도 했던 것처럼.




:: 코로나가 문제


이번 출장도 출발할 때는 3개월짜리 출장이었다.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남편의 출장 업무는 직원들이 3개월씩 돌아가면서 진행하는 업무였다. 전임자의 업무를 인수인계 받아 진행하고, 3개월 후에 도착할 후임자에게 다시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돌아오는 출장. 남편은 2월에 출발하면서 아마 5월 초에는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문제는 코로나였다. 남편이 출장 중인 중국은 확진자가 한 명만 생겨도 지역 전체를 봉쇄했고, 출입국 정책도 매우 까다로워 코로나 확진 이력이 있는 사람은 입국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 즈음 하루 50만명에 달할 정도로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로 늘어나며, 업무를 이어 받기로 한 사람들이 코로나 확진으로 중국 입국이 어려워진 것이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음성이었으나 중국에서의 검사에서 양성을 받아 출장 업무는 하지도 못하고, 타국에서 격리만 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직원들도 있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이미 중국에서 업무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후임자의 업무까지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5월 초면 귀국할 거라는 남편의 출장은 조금씩 조금씩 연장이 되었고, 지역 전체 봉쇄로 인해 일을 진행할 수 없어 봉쇄가 풀리기를 마냥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엄마, 우리도 어디 놀러가자."

"엄마, 우리반 oo는 제주도 간대."

"엄마, 물놀이 가고 싶어."


출장이 연장되더라도 차라리 귀국예정일이 언제라고 정확하게 정해졌으면 좋았을텐데 출장은 조금씩 조금씩 연장되었다. 마치 희망고문 마냥… 다음주면, 이번달 말이면 집에 갈 거라는 남편의 말에 나는 "아빠 오면 가자." 라며 아이들을 달랬는데 그 말을 3개월이나 반복해야했다. 자꾸만 일정이 바뀌니 온 가족 모두 그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던 시간. 급기야는 아무 죄도 없는 남편에게 화를 내기까지 했다.


아빠의 귀국을 기다리는 가족들도 힘들었지만, 솔직히 남편은 무슨 죄인가. 자꾸만 일정과 업무가 바뀌는 상황에 스스로도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식구들의 원망까지 들어야하고… 게다가 코로나 시국이라 타국에서 호텔과 사무실에만 갇혀 있어야 했으니 남편도 이번 출장이 참 싫었으리라. 그러게, 어쩐지 출발 전부터 그렇게나 가기 싫어하더라니..




:: 아니, 어쩜 이래..


그 사이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집안의 각종 대소사를 끝내고 한 숨 돌려볼까 했더니 아이들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고, 슬슬 사춘기가 오는 첫째와는 게임과 교우관계 때문에 하루 건너 하루씩 실갱이를 해야했다. 아이의 변화에 서로 적응이 되며 조금 편해지는 줄 알았는데 운전 중 접촉사고를 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다른 차를 들이받아 낸 사고는 처음이었으므로 나는 스스로 많이 자책했고, 또 만약 큰 사고로 이어졌으면 어땠을지를 생각하니 아찔했다. 혼자서 이 모든 일을 처리해야하는 부담감에 한동안은 그야말로 '멘탈 붕괴' 였고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줄줄 흐르는시간을 보냈다.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마무리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조금 정신을 차렸더니 이번엔 허리를 삐끗. 허리를 굽힐 수 없는 몸이 되어 각종 배달음식으로 아이들과 끼니를 연명하고 병원에 물리치료를 다니며 또 버텨야 했다.



야금야금 연장되던 남편의 출장은 꼬박 6개월을 채우고서야 드디어 끝이 났다. 이제 남편이 돌아왔으니 그동안 혼자서 도맡아야했던 일들을 둘이 분담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남편에게 모든 걸 맡기고 한 일주일만 쉬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가져보고, '아빠 오면 가자' 라며 계속 미루던 아이들과의 여행 계획도 세우고...


그러나 이게 웬 걸, 귀국한 지 3일만에 남편이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하아~ 그저 한숨뿐… 아니, 어쩜 이러지? 이 사건만 끝내고나면 여유로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뭔가 하나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사건들이 닥쳐왔다. 이 모든 상황이 누구의 잘못이 아니니 뭐라고 화를 낼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 안에서 올라오는 화가 잘 눌러지지도 않았다. 남편이 돌아와서 내 짐이 좀 줄어드나 했더니 일은 더 늘어났고, 그동안 아이들을 달래며 미루다 겨우 잡은 여행은 바로 취소해야 했고... 휴~


올라오는 화를 꾹꾹 눌러가며 일주일 간의 격리 기간을 보내고 나서, 이젠 진짜로 여행을 가자며 다시 예약을 해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목이 칼칼한 느낌이 드네? 혹시나 싶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이번에는 내가 코로나. 또 다시 여행 취소. 엉엉~


아니 어쩜 이래... 코로나 확진을 받고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끝도 없이 자꾸만 터지는 사건들. 하소연만 하는 신파극 같은 글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올 한해는 끝도 없이 사건들이 밀려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하늘도 정말 너무하시지…



:: 올해, 나를 살게 해 준 문장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나면, 두번째 항해가 시작된다.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모비 딕>, 허먼 멜빌


정신 차릴 틈도 없이 계속 일어나는 사건들에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고 안에서 화가 끓어오르던 나를 위로해준 건 <모비 딕>의 문장이었다. 이 일만 끝나면 한 숨 돌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것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노고라는 말.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인생의 진리였다.



본래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하얀 향유고래 모비 딕을 향한 인간의 집착과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와 동시에 고래와 포경업의 이야기를 백과사전처럼 풀어놓은 독특한 형식의 소설. 자연을 인간의 지배 하에 두려고 했던 인간의 오만함을 꼬집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 전체의 주제나 줄거리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저 문장이 내게 꽂혔고, 올해 나를 살게 했다.


참 이상하게도 혼자서만 어떤 일을 겪으면 어쩐지 억울하다. 나만 손해보는 것 같은 생각에 화도 나고 누군가에게 따지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도 다들 겪는 일이라고 하면, 그 화가 조금 누그러진다. 그게 묘하게 위안이 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 그래, 이게 인생이지


일주일 간의 격리가 끝나고 이제 내 몸도 회복이 되었다. 우리는 취소했던 여행을 다시 예약했다. 온 가족이 한 번씩 코로나를 앓고 지나갔으니 이제 더 이상 취소할 일은 없겠지. 아이들 학교에 다시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전날 들뜬 마음으로 짐을 쌌다.


밤 9시쯤이었나, 화장실로 걸어가는 첫째 아이의 걸음걸이가 이상하다. ‘걷는 게 왜 그래?’ 하고 물으니, 발목이 아프단다. 한 시간만 놀고 오겠다며 저녁때 나갔을 때 미끄럼틀에서 뛰어내리다 발목을 접질렀던 모양이다. 하아~ 온 가족의 얼굴이 굳었다. 설마 또 취소?


제 딴에도 자기 때문에 또 여행이 취소될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고 좀 있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말도 못하고 있던 녀석. 그 마음을 생각하니 짠했지만, 이미 두 번이나 취소되었던 여행이라 온 가족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둘째 아이는 엉엉 울기까지..


혹시나 심하게 다친 게 아니라 좀 쉬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해보았으나 다음날 아침 아이는 발목이 팅팅 부어 발을 바닥에 딛지도 못했다. 어쩔 수 없다, 또 취소. 주말에도 진료하는 병원을 검색해서 결국 반깁스를 하고 돌아왔다.



멜빌은 그랬다. 고래를 잡은 뒤 뒷처리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자마자 다시 고래와 싸우러 간다고. ‘진저리나는 그 일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할 때’ 많지만, ‘이것은 정말로 사람 죽이는 일’이지만, ‘하지만 이것이 인생’이라고.


이어지던 큰 일들 끝내고 이제는 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게 무색할 정도로 또 다시 일어나는 사건들. 속상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대범하게 넘길 수도 있게된 것 같다.


그래, 이게 인생이지.



<모비 딕>, 허먼 멜빌

하얀 향유고래 모비 딕을 향한 인간의 집착과 여정을 그린 고전소설로 영문학 3대 비극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래와 포경업에 대해서 끝도 없이 써놓은 백과사전 같은 서술로도 유명한 책. 최근에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언급되어 화제가 되었다.

소설 속 첫문장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Call me Ishmael.” 은 영문학에서 널리 알려진 문장으로, 화자는 스스로를 주변인이자 떠도는 자로 칭한다. 성경의 창세기 속에서 추방당한 자로 나오는 이스마엘의 이름을 따온 화자는 소설이 발표될 당시의 주류였던 기독교 중심, 인간 중심, 이성 중심을 벗어난 시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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