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나 사이의 마법같은 말

by melange

“엄마 이거 봐봐. 나 지금 타라 힘 엄청 세졌다.”


게임하던 아들이 책 읽는 나에게 말을 건다. “어, 그렇구나. 좋겠다.” 라는 정말 말그대로 영혼없는 답변을 하고는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간다.


“오, 엄마. 나 지금 이겼어. 오예!!”


책 속의 세계에 다시 힘들게 들어간 나를 또 끄집어내는 저 한마디. 으아... 물론 아이니까 엄마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외마디 문장을 던져 나를 불러내곤, 아들은 0.5초만에 다시 자신만의 게임 세계로 훌렁 떠나버리는 게 문제다. 책 속 세계에서 끌려나온 나는 덩그러니 현실에 남겨진다.


아들아, 언제라도 풍덩 뛰어들 수 있는 화려한 비쥬얼과 현란한 사운드의 그 세계와 달리, 글자만 있는 이곳 세계는 입장이 그리 녹록치 않단다. 아무리 책읽기를 즐겨하는 독서가라고 해도 다시 몰입하기까지는 예열의 시간이 필요하단다. 게다가 이쪽에서는 현란한 게임 사운드 + 저쪽에서는 딸아이의 TV 만화 사운드 + 억지로 모른 체 하고 있는 사방의 널부러진 잡동사니들로 둘러싸인 현실의 집 속에서라면 말이다.




:: 200년이 지났어도 비슷하구만


제인 오스틴은 생애 마지막 날까지 그런 환경에서 글을 썼습니다. 그녀의 조카는 회상록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 숙모님에게는 종종 찾아갈 만한 독립된 서재가 없었고, 또 숙모님이 쓴 작품의 대부분은 공동의 거실에서 온갖 종류의 일상적인 방해을 받으며 쓰여야 했기 때문이다. 숙모님은 자신이 하는 일이 하인들이나 방문객, 또는 가족의 범위를 넘어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p.103


제인 오스틴은 1775년생이다. 1980년대에 태어난 나와 대략 200년이나 차이가 나는데, 제인 오스틴과 나의 모습이 같다는 사실이 웃프기도 하다. 독립된 서재가 없고, 공동의 거실에서 온갖 종류의 일상적인 방해를 받아야 했고, 심지어 자신의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했던 것까지 같다니..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다. 제인 오스틴은 온갖 종류의 일상적인 방해를 받는 공동의 거실에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시대적 한계가 있었지만, 솔직히 21세기에 사는 나는 돈을 쓴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더 비싸고 넓은 집으로 이사가면 독립된 서재를 꾸밀 수 있을테고, 아이들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제3의 인력을 고용할 수도 있으며, 그도 아니면 내가 조용한 카페로 피신할 수도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500파운드의 고정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나도 콕 쳐박혀있을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정말 간절하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질 수 있을텐데도 내가 1700년대의 사람과 비슷한 양상인 것은 결국 내가 그 부분에 돈을 쓰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책읽기와 글쓰기가 아직 전업이 될 만큼 전문적이거나 수입을 창출하지 못해서인지 내 시간과 공간을 보장받겠다고 당당하게 돈을 쓰질 못하겠다. 아직은 누군가에게 내보일만할 성과가 없어서인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나는 온갖 종류의 일상적인 방해와 함께 공생하는 수밖에 없다.



::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사실, 아들의 말 건네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 을 이면에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와 뭔가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의 재미와 흥분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모를 수가 있나.. 영혼을 1g도 담지 않은 형식적인 대답을 했지만, 그 마음을 떠올리니 이내 속으로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비록 지금은 아이들에게 방해받지 않기를 원하지만, 이렇게 아이가 먼저 불러주고 엄마 옆에 붙어있고 싶어하는 순간을 나중에는 그리워할 지도 모른다 생각하기도 한다. 지금은 아직 초등학생이니까 저런 말도 건네지, 중학생만 되어도 혼자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나오질 않거나 친구들과의 세계가 견고해서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땐 입장이 바뀌어 아이들이 열중하는 옆에서 내가 기웃거리며 이게 뭐냐, 괜히 한 마디 물어보겠지.


그런 때가 오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렇게 던지는 말에 가끔은 영혼을 담아 반응해주기도 한다.

한 10g쯤?




:: 제발 그 시간만이라도


일상의 내가 책에 집중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매일매일 부족하다. 아이들을 키우며 시간의 소중함을 새롭게 느낀다. 독서관련 책을 냈던 어떤 워킹맘의 인터뷰였던가. 자신은 허투루 쓰는 시간이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 감히 말하건데 나도 허투루 쓰는 시간이 없다. 잠시라도 짬이 나면 책을 읽거나 메모를 하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거나…


또 하나 감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집중력이 좋아졌다는 거다. 자꾸만 나를 불러내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정신을 산만하게하는 푸드닥거림에 개의치않고 책을 읽다보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밖에 없다. 시간이 넘쳐났던 학창시절에는 절대 기를 수 없었던 능력.



아이들이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시간은 아이들에게도 그렇겠지만 내게도 금쪽같이 소중한 시간이다. 그 소중한 시간에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책을 읽거나 글을 끄적여본다. 그렇지만 나 좋자고 아이들을 미디어 앞에 무한히 앉혀놓을 수도 없는 일. 기껏해야 한 두 시간 정도. 가끔은 애들에게 불량 식품 주고, 나만 몸에 좋은 음식 챙겨먹는 것 같아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다.


TV와 게임이라는 현란한 영상을 보면서도 아이들은 엄마를 부른다. 엄마한테 보여주고 싶은 마음. 그러나 자꾸 방해받는 마음에 짜증지수가 올라오는 나는 최대한 화를 억누르며 입술에 힘주어 말한다.


“제발 너네 게임하고 TV 볼 때는 엄마를 부르지 믈으줄래(말아줄래)????”




:: 우리 사이의 마법같은 말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러나 지들 내키는대로 엄마를 불러내고 또 금세 가버리는 아이들. 나의 짜증과 한숨. 그런 몇번의 일이 있은 후, 아이들과 나 사이에 이제 넘지 말아야할 선을 암시하는 말이 생겼다.


“이제 엄마 30분만 책 볼께.”


이 말은 내게 약간의 마법같은 말이 되었다. 몇번의 경험을 통해 이제 아이들은 안다. 엄마가 이 말을 하면, 더이상 엄마를 부르지 말고 각자 알아서 놀아야 한다는 것을. 시끄럽게 소리치며 노는 건 괜찮지만 엄마를 부르면 안된다는 것을. 여기서 선을 넘어버리면 엄마의 감정이 넘친다는 것을.


급기야 이제는 ‘침묵게임’ 의 사촌 쯤 되는 ‘서로 말 안걸기 게임’ 이 되었다. 아이들도 나에게 말 안걸고, 나도 아이들이 뭘하든 아무 말 없이 일단은 모른 척 하는 30분의 시간. 쉬지않고 나를 불러대던 아이들이었는데, 서로 투덜대고 계속 갈등이 생기던 아이들이었는데, 갑자기 사이가 좋아진다. 의지할 누군가가 없어서인가, 서로 그렇게나 짝짜쿵이 맞아 신나게 논다.


나는 이 길지 않은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 초사이어인의 초능력을 발휘해본다. 잠시나마 방해받지 않고 나의 세계에 빠졌다가 나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싶은 목마름이 조금은 해소되는 기분. 그렇게라도 갈증을 약간 해소하고나면 아이들의 부름에도 이제 다시 유하게 대답해줄 수 있다. 아이와 엄마 사이에도 적정선이, 그 적정선을 서로 알아차릴 수 있는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


아, 물론 그 길지 않은 30분 동안 집이 난장판이 되는 건 기꺼이 감수해야 하지만. ㅋ



30분만에 집을 초토화시켜놓고 둘이 엉뚱하게 노는 모습에 피식 웃어버렸다. 저래서 내가 웃지 :)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민음사

‘여성과 픽션’ 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강연을 토대로 이루어진 글. 여성과 픽션에 대한 강의를 의뢰받은 울프가 사색을 하는 동안 대학의 학자나 연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잔디밭에서 나가라는 지적을 받는다. 도서관에 들어가려할 때도 저지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의 허가나 동행없이는 안된다고.

울프의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왜 여성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곳은 없는가, 왜 우리 어머니들은 항상 가난했는가, 남성들이 여성들에 관해 쓴 책은 많은데, 여성들이 남성들에 관해 쓴 책은 왜 한 권도 없는가, 역사 속에서 여성은 왜 존재하지 않았는가…

페미니즘 문학에 획을 그은 작품으로 여성과 글쓰기를 주제로 한 이슈들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 어느 한 쪽 성의 우월이 아닌, 조화와 협력을 이야기한다. 글을 쓰고 연구하고 싶은 누구라도 꿈을 펼치지 못하거나 부정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등대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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