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지라를 씹어 벌겋게 된 이빨을 드러낸 채 무심히 말했다.
"너 가졌을 때 먹던 음식들이 제일 맛있는 거 같아. 족발이랑, 순대, 닭발 같은 거."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책 속에 묘사된 장면이 머릿 속에 그려진다. 뚜렷한 선과 색으로 형체를 그려보는 것은 아니지만, 어렴풋하게 연상되는 이미지. 그런데 간혹, 마치 내가 그 장면을 눈 앞에서 직접 본 것 마냥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려질 때가 있다. 이목연 님의 단편소설집 <공을 굴리다> 속에 담긴 첫번째 단편 <닭발>의 이 문장이 내게 그랬다. 읽고 난 후 이미 다른 단편으로 넘어갔는데도, 나는 자꾸만 시뻘건 이빨을 드러내며 무심히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소설 <닭발>은 신도시 재개발 지역의 낡은 아파트에서 시작한다. 보상금을 조금이나마 더 받고자 신도시 개발 반대투쟁을 하며 버티고 있지만, 사실 주인공 '나'는 이사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 눌러앉아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갑자기 부도를 맞은 회사에서 퇴직금 한 푼없이 쫓겨난 데다, 그 때 즈음 출산한 아내의 산후조리원 비용과 아기용품으로 이주보상금은 이미 없어졌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 또 마침 그 때 즈음 쓰러지신 어머니. 반대투쟁 위원회 위원장의 카드를 빌려 결제한 어머니의 수술비도 빚으로 남아있다.
사실 젊은 시절의 '나'는 어머니에게 패악질을 하던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태어나기도 전에 떠나버리고, 어머니는 혼자서 닥치는대로 일하면서도 술과 남자를 늘 가까이했다. 그런 모습이 싫어 폭력을 휘두르고 돈을 챙겨 집을 나갔던 아들이었다. 어머니가 그나마 집 한 채를 얻게 되어 안정이 되는가 싶더니 신도시 개발 이슈가 생기며 다시 쫓겨나가야 하는 신세. 7개월째 무직생활로 인한 생활고 때문인지 '나'는 지난 시절의 위악스러움과 폭력을 다시 분출했고, 아내는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가버렸다.
아내가 친정으로 가버린 데에는 어머니도 한 몫했다. 수술 후 원기 회복을 위해 어머니는 나를 출산할 당시 먹고 기운을 차렸다는 소의 지라를 먹고 싶다고 했다. 시뻘건 핏덩이 같은 지라를 씹어드시더니 다음엔 누린내를 풍기며 집에서 돼지 족발을 삶아먹고, 영양분이 많을 거라며 아이의 우유병까지 쪽쪽 빤다. 그런 어머니를 흉물스럽다는 눈빛으로 괴물 보듯 보던 아내는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도 이해 된다. 시어머니가 소의 지라를 씹어 벌겋게 된 입으로 아이의 우유병을 입에 넣는다면...
지라를 씹어 벌겋게 된 이빨을 생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나는 마치 내가 그 장면을 본 것 마냥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시뻘건 이빨을 내보이며 무심한 듯 웃으며 말하는 모습은 확실히 시각적으로 강렬한 장면이긴 하지만, 그리 중요한 장면은 아니다. 스쳐지나가는 듯 묘사되고 마는, 이 짧은 문장이 나는 왜 그렇게도 기억에 남았을까. 왜 어딘가에서 본 것마냥 떠올리게 되었을까...
소의 지라를 씹어먹는 그 모습은 흉측하고 기괴하게 보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어머니는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살기 위해 그 흉물스러운 것을 먹어댔다. 맛을 음미하며 먹는 미식의 수준이 아니라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남들에게는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것을 먹어대는 모습은 어머니의 인생을 함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술과 남자를 가까이하는 모습에 뒤따르는 염문 때문에 주인공 ‘나’는 어머니의 바람기를 잡겠다며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지만, 당시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누군 좋아서 그러냐, 이 새끼야.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니놈의 새끼 입히고 가르치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야지.’
살아남기 위해 더럽고 추잡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해치워야했던 날 것의 모습. 그리고 나는 그 모습에서 우리 엄마를 보았다. 살기 위해서 흉물스러운 것도 했던 소설 속 어머니의 모습은 한 때 내가 정말로 싫어했던 모습의 우리 엄마였다. 내가 그렇게나 싫어했던 그 때의 엄마.
누군가에게 우리 엄마 이야기를 꺼낼 때면, 나는 항상 '애증관계'라고 표현했다. 고생하신거 알아서 짠하고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싫어하고 미워하고 나를 힘들게 만들기도 하는 존재. 물론 나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하는 마음도 각별하다. 그러니까 애증관계다. 좋고 나쁘다는 간단한 말로는 정리가 안되는 관계.
한 때는 갈등이 극도로 치달아 만나기 전부터 ‘오늘 또 싸우는 거 아닐까’ 긴장부터 하고 최대한 만남을 피했던 때가 있었다. 엄마는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모를테지만.. 그런 시간을 한동안 보내고 나서야 나는 엄마와 적당한 거리를 찾았다. 나를 쓰레기통 삼아 감정을 퍼붓던 엄마도 이제는 조심스레 묻기도 하고, 나도 적당히 걸러서 넘기는 방법을 깨달았다. 여전히 엄마는 내 얘기를 들어주기보단 자신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지만, 적어도 서로 건드리면 안되는 순간을 알아채며, 같이 여행을 갈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게 관계가 많이 회복되었지만, 내겐 아직까지도 포용할 수 없는 과거가 있었다. 지금까지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엄마의 치부이자 나의 치부. 지금의 엄마와 나도 화제로 꺼내지 않고 덮어두는 과거의 모습.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주인공처럼 대놓고 화를 표현하지도 못했는데, 그 때의 일들은 다 커버린 후까지도 감추고 싶은 과거로 자리잡았다. 물론,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게지는 엄마와 소설 속의 어머니는 다른 모습이고, 내가 뼛속까지 내려가서 그 때의 일들을 글로 풀어낸다면 이 글은 솔직함으로 무장한 멋진 글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그럴만한 용기가 없는 나는 여전히 그 모습들을 마음 속에 끌어안고만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지라를 씹어 벌겋게 이빨을 드러낸 소설 속 어머니의 모습에서, 지저분하고 추잡한 일을 해야했던 그 때의 엄마를 보았다. 왜 이리 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것마냥 자꾸만 떠오르나 했더니, 그 때문이었나보다. 흉물스럽게도 지라를 씹어먹는 소설 속의 어머니는 먹고살기 위해 술과 남자를 가까이 해야했던 소설 속 주인공의 젊은 시절 어머니였고, 내가 그렇게나 싫어했던 나의 소싯적 우리 엄마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그래, 엄마도 살기 위해, 나를 먹여 키우기 위해 그랬겠구나...
그 흉물스러운 모습을 남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소설 속 '나'의 부인은 시어머니를 혐오하고, 괴물보듯 바라본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먹여 키우기 위한 어머니의 생존방식이었다는 걸 아는 ‘나’는 그럴 수 없다. 좋아할 순 없어도 최소한 이해하기.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원하는 돼지족에 닭발까지 대접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제목인 '닭발'은 어머니의 모습을 대변하고 아들과 어머니의 화해를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임과 동시에, 생전 본 적없는 아버지와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닭발을 손질해 어머니에게 내는 과정에서 모자관계의 애틋함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소설은 그렇게 훈훈하게 끝나지 않고 현실세계의 '먹고사니즘'을 말한다.
소설은 닭발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지만, 이 소설은 나에게 '지라'로 기억되었다. 지라를 먹는 소설 속 어머니의 모습에서 떠올린 나의 엄마. 이 소설을 읽고서야 내가 그렇게나 싫어하고 감추고 싶던 엄마의 흑역사까지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소설의 마무리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제 엄마를 모두 이해하노라며 훈훈한 효녀가 되지는 못한다. 그 때의 내가 속내를 내보이며 화를 표출하지도 못했던 것처럼 지금의 나도 엄마의 고생스러움을 이제야 좀 알았다고 전하지도 못한다.
여전히 나는 엄마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최선으로 여길 것이고, 내가 그어놓은 선을 넘어올까 경계할 것이다. 나중에 후회할 지도 모르지만 오랜 시간 쌓인 갈등이 완전히 풀어지는 데에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은 그만큼이 내 깜냥인 것이다.
아마 좀 더 시간이 지나 엄마도 나도 더 나이가 들고나면 말할 수 있을까… 시뻘건 지라를 씹어먹을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고달픈 삶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고…
<공을 굴리다>, 이목연, 개미
: <닭발>을 시작으로 <흐르는 벽>, <파충류 우리>, <비상구> 등 다양한 우리네 삶의 모습을 농밀하게 담은 단편소설집. 작가는 각각의 화자를 통해 내가 경험해볼 수 없는 삶들을 들려준다.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조금이나마 넓어지게 해주는 것 같다.
그동안 여러가지 인생을 사는 건 배우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알았다. 소설가야말로 여럿의 인생을 사는, 여러 인물의 내면까지 깊이 살아내는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