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 <함께하는 독학클럽> 호스트 단단입니다. 이번 시즌에는 <정원, 효연, 혜수, 혜진, 지혜> 다섯 분과 함께하고 있어요.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다섯 명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가 더 넓고 깊게 확장되어 더 많은 분들과 연결되고 힘을 모으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가 함께 나눴던 이야기와 생각을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더 많은 분들과 눈을 마주치고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기록은 호스트 단단의 관점에서 정리된 독서모임 이야기입니다.
독학클럽은 격주에 한 권씩 책을 읽는다. 멤버들은 독서모임 이틀 전까지 독서노트에 같이 나눌 이야기들을 적는 미션을 수행한다. 독서 노트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 와닿았던 문장과 공감한 이유
- 모임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질문거리와 멤버들의 답변
- 책과 관련해서 함께 보면 좋은 콘텐츠 (영화/책/팟캐스트 등등)
독서노트를 작성하면서 읽으면 책을 후루룩 읽을 수만은 없다. 멤버들이 제시한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을 이어가면서 읽기도 하고, 다른 멤버들이 적지 않았지만 함께 확장해보면 좋을 문제들을 생각하면서 읽는다. 자연스럽게 책 전체의 중심 흐름을 머릿속에 잡아둔 후 그 맥락 안에서 생각을 가지 뻗고 가지 치듯 정리하며 읽게 된다. 시간 내에 책을 읽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는 여정 속에 책이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이 방식의 읽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책을 읽는 시간과 별개로 질문과 답변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다.
<함께하는 독학클럽> 멤버들은 모두 바쁘게 일하고 공부하는 생활인이다. 깊이 있는 독서의 즐거움을 함께하고 싶어 모였지만 독서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호스트인 나 역시 시간에 맞춰 독서노트 양식을 만들고 내용을 작성하고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독촉보다는 격려와 응원을 하려고 한다. 독서노트 마감날 단체 카톡방에 "노트 작성은 오늘 자정까지예요."라고 안내글을 올리고 노션 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노트가 비어 있었다.
'아직 아무도 작성을 안 해주었네... 작성 안내를 다시 해볼까? 다들 독서노트 작성을 하고 싶은데 일 때문에 못하고 있는 거겠지. 그런데 내가 독촉까지 하면 마음이 불편할 거야.'
일하는 중간중간 독서노트에 새로 작성된 내용이 있나 확인을 했다가 닫았다. 우리가 모인 이유는 '스스로에게 좋은 경험을 주기 위해서'였다. 독서노트 미션을 했는지 안 했는지보다 중요한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책 이야기를 하면서 발견할 거라고 생각했다.
노션 접속 문제로 개인 카톡을 나눈 효연 님이 남겨준 인용구와 질문/대답을 확인했고 그 이후로는 다른 멤버들의 작성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 그렇게 첫 zoom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어...? 단단님. 공유해주신 독서노트에 제가 적은 내용이 없어요. 제 것뿐 아니라 정원님, 혜진 님, 지혜님도 다들 꽤 많은 양을 적어주셨는데 없네요."
이럴 수가!! 알고 보니 노션 계정을 유료로 전환하면서 페이지 위치를 변경했는데 그러면서 링크가 바뀐 것이었다. 개인 카톡으로 링크를 다시 확인한 효연님은 변경된 페이지 링크로 접속했고 나머지 멤버들은 이전 링크에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노트를 작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의무적으로 짧게 작성한 것이 아니라 마치 노션 페이지가 하나의 '대화의 장'처럼 네 분은 활발하게 의견을 나누고 참고로 보면 좋은 책들까지 추천해주고 있었다. 독서노트 작성은 잘하고 있는지 묻지 않는 게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함께하는 독학클럽> 시즌 멤버 모집 안내문을 쓰면서 '친절하게 쓰지 않겠다'는 기준을 정했다. 요즘 인기 있는 주제를 가볍고 경쾌하게 다루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금을 사는 우리가 꼭 같이 공부했으면 하는 내용들로 진지하게 머리를 맞댈 사람들을 찾고 싶었다. 책은 대충 읽고 모임에서는 개인적인 근황 토크나 사적인 고민 상담을 하는 친목모임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안내문에는 '어려운 책을 읽을 거예요. 시간과 노력을 내어주세요.' 등등 보통의 소셜 모임에서 사용하는 감각적인 어휘와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운영 방식도 친절하지 않다. <시즌 단위로만 > 모집하기로 했다. 네 권의 책 중 읽고 싶은 책만 골라서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시즌마다 하나의 큰 주제가 있고 그 주제에 맞는 네 권의 책을 모두 읽고 노트를 작성해야 한다. 두 달 동안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다. <보증금 제도>를 생각해낸 것도 그래서였다. 보증금 제도는 4번의 독서노트 작성, 오리엔테이션 포함 5번의 만남에 모두 참석하면 참여비용을 전액 환불해주는 제도이다. 모두가 열의를 갖고 참여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호스트인 나에게는 돈보다 값진 자산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돈이라도 남게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함께하는 독학클럽>에 온 다섯 멤버들은 모두가 나의 고민이 무색할 만큼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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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 너는 도대체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주변 사람들은 자주 정말 신기하다는 듯이 나에게 묻는다. 딱히 떠오르는 답이 없어서 매번 다른 대답을 했다.
"회사가 너무 지루하고 안 맞아서, 퇴근하고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
"교육열 높은 부모님이 물려준 성향인가 봐. 우리 집 자매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잘 못 견뎌."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실 나는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냥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더 생각하지도 않고 해버리곤 했었다. 내가 벌인 모든 일들을 '그냥 해보고 싶어서 해버린 결과물'이었다. 그럼 왜 나는 그렇게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자주 강하게 드는 걸까?
나는 매 순간 스스로에게 의미를 묻는 사람이었다. 이걸 왜 해야 해? 사람들은 왜 저래? 지금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지? 대개는 회의적으로 '의미 없고만'을 되뇌었지만, 반대로 의미 있어 보이는 일에는 그 누구보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 시작은 주로 책을 통해서였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장혜영 작가의 <어른이 되면>을 읽으며, 내가 몰랐던 장애인의 삶을 알게 되었고 '더 알고 싶다. 행동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환경 문제를 지적하는 칼럼을 읽으면서도, 해고 노동자를 다룬 소설, 가족관계의 모순을 이야기한 소설, 우연히 읽게 된 책에서 쨍그랑 생각이 부딪히고 깨지는 경험을 했다.
내가 발견한 이 의미들을 혼자만 가지고 있기는 너무 답답했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래서 의미를 더 넓고 깊게 확장하고 싶었다. 생각을 대화로, 대화를 담론으로, 담론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목소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누구랑 해야 하지?
열변을 토하며 관심 있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가족들은 '쟤 또 저런다.'는 눈빛을 보낸다. 친구들은 '와, 멋지다. 책 많이 읽는구나.' 칭찬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함께 더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는 채워지지 않았다. <함께하는 독학클럽>은 사실 나의 <새로운 생각 친구 공개 모집>이었던 것이다.
빽빽하게 채워진 독서노트를 보면서 괜히 울컥해서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이런 사람들을 오해했다니. '독서노트가 안 보이는데 저장이 잘 된 걸까요?' 한 번 물어봤어도 됐는데, 작성하지 않은 멤버들이 사기를 잃을까 봐 걱정하다니. 이들은 나처럼 '쿵쾅 거리는 마음'을 표현하고 나누고 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휴, 찾았다! 새로운 생각 친구.
반가워요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