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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ug 06. 2021

<외롭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나요? - 1부

<함께하는 독학클럽> 여름시즌 세 번째 책

** <함께하는 독학클럽> 호스트 단단입니다. 이번 시즌에는 <정원, 효연, 혜수, 혜진, 지혜> 다섯 분과 함께하고 있어요.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다섯 명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가 더 넓고 깊게 확장되어 더 많은 분들과  연결되고 힘을 모으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가 함께 나눴던 이야기와 생각을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더 많은 분들과 눈을 마주치고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기록은 호스트 단단의 관점에서 정리된 독서모임 이야기입니다.



외롭지 않을 권리

** 함께 읽은 책: <외롭지 않을 권리>, 황두영

** 아래 내용은 대화 녹취록이 아닙니다. 모임에서 나눴던 이야기와 독서노트에 작성된 내용을 기반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읽으면서 공감갔던 부분은 무엇이었어요?


효연 | 독립해서 생활하다보니 안전이나 건강에 대한 걱정을 종종 하게 되더라고요. 책에서 청년 임대주택을 다룬 부분에서 2인실인데, 원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서 정해준 사람과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제가 그걸 경험한 적이 있었어요. 랜덤 2인실인줄 모르고 갔다가 결국 신청 안 했어요. 혹시 1인 가구를 벌 주려는 건가? (웃음) 싶기도 했고요.


혼자 사는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심장마비 후 제때 발견되지 못하거나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거동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다. ... 생활동반자법을 포함해 혈연,혼인이 아니더라도 돌봄 공백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는 우리 사회를 보면 1인 가구를 벌주려고 하는건 아닐까..  집 안에서 함께 생활을 나누고 일상적으로 서로를 돌보는 차원에서 돌봄 공백의 해소 방안이 고민되어야 한다. 사회적 부담을 줄이면서도 행복을 늘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혜수 | 사실 이번 책이 지난 책 (불안한 어른)보다 좀더 우울했던 것 같아요. 사각지대의 삶을 너무나도 직접적으로 마주한 기분이에요. 그렇지만 이 책의 주장들이 구체적이고 다양해서 좋았어요. 지난 책은 아무래도 북저널리즘이라는 형식 특성 상 현상 파악에서 끝났다면 이번에는 다각도에서 쟁점을 입체적으로 다루었더라고요. 청약 제도의 남용이라던지 사람들의 선의가 아니어도 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했기 때문에 명쾌하게 다가왔어요.


한국에서는 가족이 되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 그 비용이 너무 비싼 나머지 가족 없는 사람이 되기로 결정한다. 치열한 가족 구조조정의 결과, 우리는 자유롭고 행복해졌을까? 가족으로서 주어진 과도한 부담을 피하고자 가족 구성원을 줄여 나간 결과 우리는 함께 사는 사람과 일상을 나누는 행복,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도와줄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포기하게 되었다. 가족 구조조정으로 위험은 줄일 수 있었지만 '돌봄 공백'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혜진님이 노트에 적어주신 내용도 굉장히 공감이 갔어요. 저는 지금까지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 내가 지지하고 말고를 표현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당연하게 부여되어야 할 자유인 것이니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목소리를 내서 혐오론자들을 비판하는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 상태요. 제 3자라의 관점인 거죠. 그런데 저자는 제 3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권리도 지켜줄 수 있다고 주장하잖아요. 관점의 전환이 놀라웠어요. 동성애 혐오론자들이 동성애 당사자에게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었다는 생각은 못 해봤거든요. 혐오론자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입법에 영향력을 끼치는데 대다수 사람들은 행동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놓쳤던 권리들이 있었구나, 직무 유기를 했구나, 싶어요.


혜진 | 저도 지금까지 많은 순간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우리가 얼마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이해관계만을 중시하는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을 보며 그것에 목매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동성애에 대한 판단과 입장은 자유겠지만 무조건적인 혐오와 반대로 인해 우리가 잃게된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보게 되요.


동성애 혐오의 피해자는 성소수자들만이 아니다. 동성애 혐오를 이유로 각종 인권 입법을 방해하면서 우리 모두는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들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비합리적인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빼앗기고 있고, 성희롱이나 성차별을 당했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 법을 만들 기회를 놓쳤다.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혐오범죄를 예방할 사회적 기회를 상실했다. 인권위의 역할을 강화하고 인권침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동성애 혐오를 방관하는 와중에 우리 모두의 권리는 그렇게 삭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혜 | 법적으로 함께 산다는 것이 꼭 결혼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결혼 외의 공동체가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선택을 제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요즘 사람들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옛날 생각들이 많구나, 느꼈어요.


정원 | 평소에 생활동반자법을 지지하고, 공부해왔는데 이 책의 존재는 이번에 알았어요. 이번 기회로 읽게 되어서 정말 좋았어요.  생활동반자법과는 별개로 결혼에 대해서 사라져야 할 구시대적인 제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공동체 관계를 꼭 배타적인 1:1의 관계로 제한하는 게 맞을까요? 건강할까요? 관계를 안전 장치 네트워크라고 본다면 관계의 유형을 좀더 넓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평생을 함께 보낼 특별한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복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수정된 생활동반자법이 자리잡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혜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책은 구체적인 사례와 반박 근거가 정제된 언어로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좋았어요. 지난 2주간 책을 읽는 동안 만나는 모든 친구들에게 '이 책 꼭 읽어보라'고 추천했어요. 아래 기재한 부분은 읽으면서 감동받았던 부분이에요. 아, 세상이 점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하고요.


제도는 자유를 위해 존재한다. 제도가 '금지'의 형태를 갖는 것은 다른 이의 자유로운 삶을 훼손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자유를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금지 자체가 제도의 목적이어서는 안 되며, 개인이 그려나가는 삶의 지도를 국가가 대신 그려줄 수도 없다. 더욱 다양한 욕망으로 다양한 관계로 가족을 꾸리려고 할 때, 제도는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 각자 살고 싶은 대로,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기간만큼, 원하는 거리감으로 가족을 꾸려도 안정적인 사회가 되도록 만들어나가는게 일 잘하는 국가 아닐까. 어떠한 변화가 사회적 혼란을 가져올 때 변화 자체를 금지하는 태도는 저급하다. 국민의 욕구를 최대한 받아들이면서 사회적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고급스러운 통치 기술이다


단단 | 황두영 작가가 7년동안 생활동반자법을 연구했다고 하는데요, 결국 입법에 성공하지 못했죠. 그러나 우리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적인 변화라고 믿어요.



사회가 아이를 키우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혜수 | 책에서 아이를 대충 기를 수 있는 사회라는 표현을 보고 '아! 이거다.' 생각했어요. 멤버 각자의 인생 계획은 모두 다르겠지만 우리가 만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했어요.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한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내 아이만 키우는 게 아니라 사회의 아이를 같이 키운다고 생각하고요.


부모님 세대와 비교했을 때 경제적으로 발전된 시대에 살고 있는데, 왜 우리 세대는 아이를 키우는 것을 이렇게 부담스러워할까요? 물론 시대가 다르기는 하지만, 저는 그 원인이 육아 공동체의 상실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요. 가정 내 육아 뿐 아니라 사회적 교육과 양육도 모두 개인의 책임인 사회가 되면서, 우리 세대에게 내 아이든 사회의 다른 아이든, 누군가를 키우고 책임진다는 것이 과하게 부담스러워진 것 같아요.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부모의 경제력이 절대적인 가치이자 기준이 되는 거에요. 능력이 없는 부모가 좋은 부모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 마저 들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싶은데도요. 나중에 아이에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안내해주는 따뜻한 부모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아이의 미래를 책임져줄 정도의 경제력이 없는데 아이에게 떳떳한 부모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 속으로 두 생각이 싸우게 되더라고요. 그 고민이 소모적이라고 느껴지고요. 아이의 미래를 깊이있게 고민할 여유 없이 사회적 조장한 경쟁에 뛰어들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되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어떻게 아이들을 함께 기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여기 계신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요.


단단 | 제가 오래전부터 주장하던 것이 '완전한 자율 근무제'였어요. 근로자의 상황에 맞춰서 일주일에 2~3일만 근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키우려면 누군가의 절대적이고 물리적인 돌봄 노동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 돌봄을 사회가 대체할 수도 있고, 부모의 부모가 대체할 수도 있고, 부모 중 누구 한 명이 전담할 수도 있는데 저는 그 모든 방식이 불완전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이유가 이것이기도 해요. 아이를 부모가 키웠으면 좋겠는데, 누군가의 큰 희생을 담보로 하는 방식이 아니라 부모가 모두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려면 둘다 지금의 반절만 일해야 가능한거죠. 그렇게 해도 사회의 추가적인 돌봄이 필요할 거고요. 꼭 육아 뿐만 아니라 부모나 배우자가 아플 때 또는 본인이 쉬어야 할 때, 나를 좀 돌아보고 싶을 때 이렇게 완전한 자율 근무가 보장된다면 모든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혜수 | 부모가 물리적인 시간을 최대한 많이 자녀에게 투자한다면 좋겠지만 자율적인 고용이 보장된다고 해도 부모 스스로 아이를 온전하게 키울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고용 환경을 떠나서 물리적인 시간을 낼 수 없는 다양한 상황이 있을 거고요. 부모 양쪽이 모두 하루종일 노동을 하고 돈을 벌어야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가정도 있을 수 있고요. 형평성이 보장되지 않는 육아를 해야 하는 사회인거죠. 그보다는 부모는 상황에 맞게 가능한 시간만 함께 보내고 사회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자원이 지금보다 더 확대되는 사회는 어떨까요? 부모도 부모라는 정체성 외에 다른 자아가 있고 상황이 가능하다고 해서 자신이 가진 시간의 최대치를 아이에게만 투자하기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


단단 | 그러네요. 저는 제 개인적인 상황에서 가장 좋은 대안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제가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완전하게 자율적인 고용 형태'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저의 개별적인 상황에서 최적의 대안일 뿐이고 다양한 부모의 상황을 모두 고려해서 사회가 어떻게 아이들을 더 책임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효연 | 부모님이 모두 모범생이자 우등생이었는데도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공부하라는 압박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중학교 입학 이후로 제대로 공부를 시작했고 그 전에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보냈어요. 초등학생 때 했던 공부는 국영수가 아니라 논리,책읽기, 글쓰기 수업이었어요. 제가 크게 흥미를 못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만두게 하셨어요. 음악회, 뮤지컬, 전시회도 자주 갔고요.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제가 책임지는 삶이라는 감각을 가졌어요. 제가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할 때조차 불안이나 걱정이 크지 않은 것도 그 영향인 것 같고요. 어릴 때 획일화된 교육을 강요받지 않고 다양한 환경에서 교육받았던 것이 지금이 저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제가 나중에 아이를 키운다면 저의 엄마처럼 풍부하게 경험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다양한 경험이라는 것이 돈도 많이 들고요.

만약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인프라의 문턱이 낮아진다면 어떨까요? 음악회 티켓 값이 비싸지 않고,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도 자주 공연을 볼 수 있고, 학교 성적이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도가 낮아진다면요. 그렇다면 경제적 수준이 높지 않은 부모도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면서 자유롭게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단단 | 저는 그게 계속 사회 자원의 재분배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번 책도 그렇고요.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들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혜수 | 효연님의 부모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사회 자원의 재분배 문제도 그렇고, 인품의 측면에서도 모두가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어요. 사회 공동 육아에요. 사회 공동 육아 모델을 말씀드리기 전에 저희집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요. 저희 엄마 형제들이 우연히 모두 교육업에 종사하세요. 또 우연히 집집마다 똑같이 아이도 두 명씩 있고요. 그 아이들 중에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사촌도 있어요. 이모들이 예전부터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너희가 아이를 낳으면 기본적인 양육과 경제적 지원은 각자 부모가 해야겠지만 교육 양육을 해줄게.'라고 말씀 하셨어요. 입시공부가 아니라 책 읽기나 토론과 같은 시간을 제공하는 거죠. 그 분들은 퇴직 후에 할 일이 없어서 무료한 시간을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나눠줌으로서 채울 수 있고 아이들은 부모가 돌볼 수 없는 시간에 돌봄을 받는 거죠. 여기서 모티브를 얻어서 정년 퇴직을 한 어른이 재능기부를 하는 방식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재능 기부를 하려면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퇴직자에 한정되겠지만요.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다양한 교육고 교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기능도 있을 것 같고요. 그렇게 되면 노인혐오나 세대 간 갈등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제가 직접 기획해 보고 싶어요.




<외롭지 않을 권리> 독서대화


1부 보러가기

- 읽으면서 공감갔던 부분 공유

- 사회가 아이를 키우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2부 보러가기

- 일대일의 독점적인 관계만을 법적으로 허용해야 할까요?

개인이 모여 함께 사는 즐거움이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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