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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Oct 01. 2021

줌을 맞추느라 버벅대는 카메라 렌즈처럼

요가원에 ‘운’이라는 강아지가 있다. 원장 선생님이 올해 봄에 데려온 아이다. '운'은 수강생이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 고개 들어 누군지 확인하고는 다시 누워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그는 아주 소수의 몇 명만을 반긴다.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이가 누군지 아는 영리한 강아지다.


수업 시간에 '운'이 유독 낑낑거리는 날이 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수업이 시작하고 끝나는데 '운'은 수없이 반복되는 날을 보내면서도 그걸 모른다. 그리고는 마치 수련실로 들어가 버린 선생님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애처롭게 운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에게 물어보면 대개 그런 날은 '운'이 혼자 반나절쯤 보낸 날이었다. 수업을 마친 선생님이 수련실 밖으로 나오면 '운'은 거침없이 선생님에게 달려들어 본격적으로 칭얼대기 시작한다. 오늘은 밥도 안 먹고 다른 회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맹렬하게 선생님만 바라봤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또다시 수련실로 들어갈까 봐 안절부절못하면서.


이럴 때 '운'의 세상에는 오직 한 사람만 존재하는 것 같다. 마음속으로 '운'에게 묻는다.


"어쩜 너는 한 사람이 네가 사는 세상의 전부일 수가 있어? 그렇게 살면 힘들지 않아?

나는 절대 너처럼 한 사람에 기대어 살지는 않을 거야. 그 사람이 떠나버릴지도 모르잖아."


'운'처럼 나 또한 나를 떠나는 모든 것이 두렵다. 사람도, 기회도, 일도 영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 주기를 바란다. 같은 마음을 품고 나는 '운'과 반대로 행동한다.


스스로를 이렇게 몰아붙이면서.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 어쩌려고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살아?

남편이랑 헤어지게 되면 어쩌려고 그렇게 마음을 온전히 줘 버리는거야?

살이 찌면 어쩌려고 먹고 싶은 걸 다 먹어?

청탁받은 원고를 마감일까지 다 못 쓰면 어쩌려고 친구를 만나서 하루를 다 써버려?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려고 그래?"


나중에 힘들어질까 봐, 후회할까 봐, 일이 틀어질까 봐 나는 나를 순간의 순간에서 최대한 떨어뜨려놓았다. 그 안전거리가 혹시 모를 위험에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게 해 줄 거라고 믿었다.


정말 그럴까, 의심이 든 것은 그 안전거리가 오히려 나를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였다. 사라져 버린 이후에도 괜찮으려면 온전히 갖지 않아야 했지만, 온전히 갖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온전히 누릴 수 없었다. 


다시 스스로에게 따져 물었다.


"힘들어지면 왜 안 돼? 정말 생각하는 것만큼 힘들지, 알고 보면 그럭저럭 견딜만한지 알지도 못하면서!

일이 틀어졌을 때 새로운 기회가 때 마침 찾아올지도 모르면서!"


성공은 운이 따라줘야 한다고, 그러니 열심히 한다는 게 뭔가를 이루게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다녔으면서. 나는 왜 실패는 반드시 찾아올 거라고 믿었을까.


순간에서 멀어지면 초점이 흐릿해진다. 줌을 맞추느라 버벅대는 카메라 렌즈처럼.

“피사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세요.” 경고를 무시한다. 렌즈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초점 맞추기를 포기한다. 흐릿한 렌즈 뒤에서 렌즈 반대편에 서 있으면 흐릿한 것이 실패인지 성공인지 알 수 없다. 저것이 분명 성공은 아닐 테니 어떻게든 실패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한 사람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운'을 보며, 어쩌면 선생님을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운'은 세상 그 누구보다 삶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운'을 바라보며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그렇게 마음을 온전히 줘 버리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정작 '운'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네가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실패보다 훨씬 큰 절망에 빠지곤 하지.

하지만 난 네가 모르는 반짝이는 나의 순간을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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