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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Oct 14. 2021

용기를 내보면 좋겠어

그럴 수 있을까

** 이 글은 웹진 <채널예스>에 연재한 에세이 입니다. 보러가기




‘용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부끄러워서 용기라는 단어를 숨겨버리고 싶은 기억이다. 지금은 크리스마스라는 단어에 더 이상 설레지 않는 시시한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16년 전 그날만 해도 크리스마스는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이벤트였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큰마음을 먹고 동생과 단둘이 시청역 루미나리에 조명 전시를 보러 가기로 했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어서 낯선 길을 갈 때는 미리 지도를 완벽하게 외우거나 약도를 그려가야 했다. 연말 분위기를 즐기러 간다는 흥분 때문이었는지 그날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11살짜리 동생 손을 잡고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시청역 입구를 나가면 온통 조명이 반짝거릴 거라고 생각했다. 지도를 외울 필요도 약도를 그릴 필요 없을 줄 알았다.


2호선 시청역에 도착한 후 지하철에서 내리고 나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 거기서부터가 문제였다. 그래도 6살 많은 언니의 체면이 있는데 당황한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향하는 출구를 따라갔다. 한 무리의 대열을 따라 두 블록 정도를 걸었다. 생각보다 날은 추웠고, 동생은 내 손을 꼭 잡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나를 보며 걷고 있었다. 한두 블록 정도를 더 걸었다. 길이 넓었고, 사람들은 많았고, 우리 앞에는 횡단보도가 있었다. 삼거리 나왔고 일단 길을 건넜다. 건물 몇 개를 지나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아까 지나온 삼거리에서 다른 방향으로 길을 건넜다. 다시 건물 몇 개를 지나쳤고, 이제 슬슬 뭔가가 나와야 하는데... 이상하게 계속 건물만 보였다.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계속 가보거나, 다른 길을 가보거나, 되돌아가거나.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할까? 네가 선택해! 나는 너의 결정에 따를게." 앞뒤 설명도 없이 동생에게 물었다. 동생은 멍한 표정을 나를 봤다. 속으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사실 조금 울고 싶었는데 시치미를 뚝 떼고 퀴즈를 내는 척하며 책임을 넘겨버린 것이다. 동생은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켰고 우리는 그쪽으로 한참을 더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화려한 조명 광장은 나오지 않았다.


"네가 선택한 게 틀렸네. 어쩔 수 없다!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동생은 억울한 표정으로 훌쩍였다. 그래도 더 이상 추운 날씨에 길을 헤매는 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 손을 잡고 도로 표지판을 보며 지하철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동생은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에게는 두고두고 스스로를 탓하는 기억이 되었지만, 동생에게는 별것 아니어서 생각도 안 나는 일이 돼버렸기를 바랐다.


그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일까,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시청 주변을 헤매던 17살이 되어버린다. '모르겠어, 누가 대신 결정해 줬으면 좋겠어.'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무책임해서 실망스러웠던 그때처럼 누군가에게 선택을 넘기고 숨어버리고 싶어진다.


이 민망한 기억을 공개하는 이유는 얼마 전 받은 메시지 때문이었다.

"용기를 내봐도 좋을 것 같아." 이직과 독립 사이에서 고민 중이라는 나에게 친구가 보낸 메시지였다. 그동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실력, 경험, 내공 같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으로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눈을 감고 16년 전 겨울, 시청 거리에 선 나로 돌아가 동생에게 다시 말했다. "언니가 길을 못 찾아서 미안해. 우리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다음에 다시 오자. 그때는 길 외워서 올게."


17살의 나로 돌아가 작은 용기를 내고, 차곡차곡 용기를 쌓으며 자란다면 스스로의 선택을 믿는 사람으로 다시 자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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