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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Jan 05. 2021

하다못해 글이라도 되겠지

보통날의 글쓰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건 좋은 글감이 될 거야. 나는 지금 시련을 겪는 게 아니라 소재 수집을 하고 있는 거야."


회사에서 견디기 힘든 말을 들었던 어느 저녁, 워드 프로세서를 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꽤 오랫동안 쓰지 않던 워드의 넓은 공백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네. 다시 글을 쓴다는 것."


초등학교 5학년 때 EBS 어린이 작가 공모전에 떨어진 후로 나에게는 글쓰기 재능이 없다고 여겨왔다. 그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될 놈은 되는 거라고 믿었다. 천재는 5살쯤? 아니 적어도 스무 살 전에 발견되는 것이고, 꾸준한 노력은 적어도 글쓰기에는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주말마다 취미로 공상 소설을 쓰던 초등학생은 그 날로 꿈을 접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정리되는 게 아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줄곧 써왔다. 싸이월드에,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에 쉬지 않고 썼다.


워드 프로세서로 글을 다시 쓰는 것은 그러나,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당시에는 숨구멍이 그것밖에는 없었다. 회사 체질이 아니어도 너무 아닌 나는, 그냥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9년쯤 회사를 다니다 보니 지금이야 그 마저도 모두 익숙해져서 상사의 질책도, 어이없는 뒷담화도 모두 '그러려니'가 되지만 그때는 도저히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그냥 넘어가지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늘어놓는 하소연도 유통기한이 다 되었는지 내 이야기를 듣는 그들의 표정에는 '또 시작이다. 언제 끝나나.' 하는 마음이 드러났다. 가장 마지막 바닥의 순간, 내가 잡을 수 있는 것은 글 뿐이었다.


다시 글을 쓰면서, 그때그때 '신박한' 표현이나 상황을 만나면 놓치지 않고 메모장에 적었다. "나중에 글로 써야지. 오 이런 비난은 또 새롭네." 습관이 한번 잡히면 놀랍도록 빠르게 몸에 밴다. 내 머리는 언제나 "이것도 적을까? 이 말도 재밌지 않나?" 하는 영감 레이더 탐지로 바쁘게 돌아갔다. 업무가 익숙해지고, 경력이 쌓이고, 회사를 옮기면서 점점 나에게 '신박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어떨 때는 아쉽기도 했다.


"인생이 이렇게 평탄해서야 무슨 이야기를 쓰겠어."


하지만 아니었다. 나쁜 말들을 적는 것이 '시원한 해소'의 기능을 한다면 좋은 기억을 복기하는 글쓰기는 '다정한 구원'의 기능을 한다. 한참 마음이 지옥일 때는 더 힘든 시절의 글들을 보며 지금이 그래도 낫다는 위안을 삼았다. 모든 것이 괜찮아지고 나니, 좋은 마음으로 쓴 글들을 보며 "내가 이렇게 다정한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받았었구나" 하는 마음을 반복해서 깨닫는다. 나쁜 일을 없애려는 노력보다 좋은 일을 더 자주 만들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일종의 '감정의 백신'인 셈이다.


언젠가 기사에서 '절필 선언'이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절필?이라는 단어를 듣고 의아해졌다. 그러면 평생 문자 한 통도 안 쓸 건가? SNS에 문장 한 줄도 안 쓸 건가? 절필이 가능하긴 한가? 아마 그 작가가 의도한 '절필'이라는 것은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더 이상 내보이지 않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그렇다. 글이라는 것은 세상에 나를 내보이는 일이다. 힘들 때 썼던 글은 '내 마음속 지옥을 알아달라'는 공감 요청이었던 것이고, 좋을 때 썼던 글은 '당신도 나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내는 것이다. 나에게서 시작해서 나로서만 끝나는 글은 없다. 그러니, 힘들 때마다 생각한다.


"하다못해 글이라도 되겠지. 그리고 그 글은 나에게서 훨훨 날아가 저 멀리까지 가겠지. 나는 지금 이 상황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는 밖으로 나아갈 것이다."


+ 추신_

아직도 초등학생 때 쓴 소설들을 가지고 있다. 당장 쓰지 않는 물건은 무엇이든 버리고 보자는 신념을 가진 나로서는, 예외적인 '수집'이었다. 차마 들춰 읽어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A4용지로 프린트해서 파일에 한 장씩 끼워 넣은, 그 파일 커버만 가끔 만져볼 뿐이다. 너무 일찍 꿈을 갖는다는 건, 너무 빠른 포기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 꿈이었다면 결국 놓지 못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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