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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Nov 18. 2021

가을 채소 생활 기록 (2021년)

2021 가을 |  충분한 가을의 기록

매년 가을 출근길에 가로수 단풍을 봤을 텐데 유독 이번 가을은 충분히 즐겼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을 '인지하며' 보냈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 조경수에 단풍이 드는 것을, 단풍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것을, 바닥에 수북하게 쌓이는 것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가을의 단상을 기록했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촬영하고, 짧은 글을 남겼다. 그리고 이렇게 가만히 앉아 지나간 계절을 돌아볼 때 비로소 알게 된다.


매 계절이 새롭게 반갑고 야속하고 아쉬웠었지.

지난번에도 그랬고, 이번도 그렇고, 다음번도 그렇겠지.

익숙할만 할텐데 늘 쉽게 잊는다.

올 가을은 야속했다.

반가운 소식이 많았고 그만큼 마음 쓰린 일도 많았다.


그 모든 일들을 더해 플러스 마이너스를 해보면 플러스에 가까웠다. 이번 가을은 충분히 반가웠다고 기억할 것이다. 기억은 기록에 빚지게 될 테니까. 이 기록은 나중에 돌아보면 즐거웠던 가을만을 남겨둘 것이다.




약단밤


작년 가을에는 보늬밤을 만들었다. 맛있기는 했지만 과정이 너무 고생스러워서 다시 할 엄두가 안 났다. 그래도 가을에 밤을 즐기지 못하는 게 아쉬워서 칼집 약단밤을 구매해봤다. 결론은 대!만!족! 오븐에 넣어 굽기만 하면 껍질이 톡 하고 벗겨진다. 먹기도 편하고 달고 맛있다. 가을 내내 떨어지지 않게 매달 주문하고 있다. 약단밤 품종 자체가 중국에서만 생산된다고 한다. 어차피 중국에서 수입해서인지 여러 업체에서 주문해보았는데 맛은 그럭저럭 비슷했다.





사과 대추


아삭하고 상큼한 사과 대추. 망원 시장에서 한 팩에 4천원에 구매했다. 망원시장의 물가는 눈을 의심하게 했다.


같이 간 친구와 연신 놀라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이 가격 뭐야... 타임머신타고 20년 전으로 돌아온 것 같아."


장바구니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달랑 사과 대추 한 팩만 사왔다.




사과 대추는 샐러드로 먹었을 때 가장 그 진가를 발휘한다. 집에 있던 오렌지 마멀레이드 (Alain Miliat 브랜드)에 올리브유를 섞어서 간편 드레싱을 만들었다. 상추를 썰어 리스모양으로 두르고 가운데에 사과 대추를 편 썰어 넣었다. 그 위에 오렌지 마멀레이드 드레싱을 뿌려주니 음! 





연근


가을에는 뿌리 채소가 반갑다. 일년 내내 볼 수 있는 작물이지만 유독 반가운 계절이 있다. 연근은 아삭한 식감과 함께 느껴지는 땅의 기운이 매력있다. 이번 가을에는 연근을 베이킹 재료로 즐겨 썼다. 파운드 케이크에 연근과 건포도, 향신료를 넣었다. 향신료가 잘 어울리는 계절이 돌아왔다. 손 끝이 시리고, 어깨가 움츠러드는 가을이 싫지만은 않다.




파운드 케이크를 만들고 남은 연근은 그래놀라에 넣었다. 만든 직후에는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어서 좋았는데 바로 그 아삭함의 비결인 수분감 때문에 다음날에는 눅눅한 그래놀라가 되었다. 그래놀라에는 수분이 적은 재료를 써야 재료 간의 식감을 조화롭게 살리기에도 좋고, 오래 보관하기도 쉽다. 그래놀라에 뿌리 채소를 넣고 싶다면 우엉을 넣어야겠다.





레드키위



제주산 레드키위는 10월에만 반짝! 하고 나온다. 이 때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초록색 키위보다 부드럽고 달다. 골드 키위와 비슷한 맛과 식감이다. 색감이 예뻐서 매년 잊지 않고 먹는다.






땅콩 호박



땅콩호박은 땅콩이라기보다는 표주박처럼 생겼다. 정말 귀여운건 동그란 아랫부분에만 씨가 있다는 거다.


단호박보다 껍질도 과육도 부드럽다. 그만큼 수분감이 더 있어서 단호박 케이크 레시피를 그대로 썼더니 반죽이 너무 질어졌다. 온도를 낮추어 70분동안 오랜시간 구웠다. 귀리가루가 들어간 반죽은 고소한 향이 나서 좋다. 귀리가루와 메이플 시럽으로 만든 그레이엄 크래커가 생각난다.


땅콩 호박 맛은 음... 보우짱 해남 단호박의 달큰함을 기대해서 그런지 조금 아쉽다. 맛있는 땅콩 호박 드셔보신 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무화과잼



작년에 만든 새로운 계절 리추얼이 있다. 추석 연휴마다 무화과잼을 만들기로 했다. 내가 만드는 잼은 콩포트 스타일로, 과육이 큼직하게 살아있고 투명한 잼이다. 잼을 여러 번 만들면서 나만의 잼 만들기 비법이 생겼는데 바로 럼주와 위스키를 넣는 것이다. 거기에 캐러멜, 견과류도 넣어준다. 절대 실패할 수 없는 맛이다. 당도가 높아서 두유 요거트에 넣어서 먹어도 좋고 쿠키에 살짝 찍어서 먹어도 좋지만... 푹푹 퍼서 먹기도 한다.


헤이즐넛 캐러멜 무화과잼

완성된 잼을 보고 있으면 무화과 씨 때문일까, 헤이즐넛 때문일까.

우주 같다. 잼을 만들면서 늘 조그맣게 말하곤 한다. "우주 같다 정말 ㅋㅋ"





진저 쿠키


사랑하는 진저 쿠키!!

가을에 홍차와 진저 쿠키를 먹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나머지 세 계절동안 이 순간을 기다린다.

창문을 열면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놀라 가디건을 두툼하게 껴입고 진저 쿠키를 만든다. 이번 가을에는 귀여운 쿠키틀을 준비했다. 진저 브레드맨, 붕어빵 모양의 쿠키틀이 너무 귀여워서 여러 번 만들었다. 쿠키틀이 섬세한 탓에 힘 조절을 조금만 잘못해도 반죽이 깨지지만 귀여우니까 봐줬다.






흑임자


흑임자는 <고소하다> 보다 <꼬숩다> 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꼬수운 흑임자와 코코넛 밀크로 흑임자 페이스트를 만들었다. 스콘 반죽에 넣어도 맛있고, 빵이나 쿠키에 찍어먹어도 맛있다. 붕어빵 통밀 쿠키에 찍어먹으니 재료의 조합이 잘 맞는다.




흑임자 페이스트를 듬뿍 넣은 흑임자 스콘!

비건 베이커리 안 좋아하는 남편도 이건 정말 맛있다고 했다.




흑임자 스노우볼도 만들었다. 반죽에 흑임자 가루를 넣고 겉은 볶은 콩가루와 슈가파우더를 섞어서 굴려주었다.





쪄 먹는 생땅콩


올해 새롭게 발견한 재료다. 가을 재료는 아니고 늦여름 재료라고 해야 맞다. 작은빛농원에서 생땅콩이 맛있다는 설명을 듣고 샀다. 넉넉하게 쪄서 얼려두었다가 조금씩 꺼내서 쪄먹으면 된다. 부드러운 식감만큼 고소함도 부드러워서 간식으로 먹기 좋다.






당근 수프


당근의 계절은 겨울이지만, 당근은 언제나 환영이다. 언제나 가까이에 있어서 소중함을 모르는 존재가 있다. 당근이 그렇다. 당근을 메인으로 요리해보면 '아니 이렇게나 달고 맛있는 메뉴를 떡볶이 고명 정도로 생각했다니!' 반성하게 된다.






은행과 단감


단감을 사 먹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마트에 가면 매 계절마다 이국적인 과일, 새로 개량된 품종의 과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단감은 그에 비하면 심심하고 익숙했다.


단감에 데친 은행을 섞고 꿀, 발사믹식초, 올리브오일을 버무렸다. 은행을 좋아한다. 젤리같은 식감에 꼬릿한 향도 취향저격인데 하루에 열 알만 먹어야 하는 야속한 음식이다.






마르쉐 채소시장


정말 오랜만의 마르쉐였다. 마르쉐에 첫 출점하는 비건 베이커리 서영 사장님을 보러 갔다. 이번 마르쉐의 키워드는 사과였다. 시나노 골드 사과를 처음 맛보았다. 아오이 사과만큼 상큼한데 홍로만큼 달다. 사과주, 사과 버터, 사과 스콘, 사과 조림까지 사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을 만났다. 




꼭지 농원의 사과버터. 오리지널 사과 버터는 사과와 소량의 설탕을 오랜시간 졸여서 만든다. 이 제품은 사과만 넣은 것은 아니고 버터도 30% 함량으로 넣었다. 


홀썸에서 구매한 사과버터. 무쇠솥에 10시간 졸인 오리지널 버전이다. 올리브 치아바타에 사과버터를 바르고 밀크티와 함께 먹었다. 재택근무의 참맛이란 이런 것!


집에 있던 세 가지 스프레드를 모두 꺼냈다.

꼭지 농원의 사과버터 / 홀썸의 사과버터 / 흑임자 스프레드




채식 카페, 숙대입구 <카페 시바>


채식 식당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모두 <카페 시바>를 이야기했다. 인도나 발리를 연상시키는 화려하고 독특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의외로 친근했고 맛도 좋았다. 버섯 치킨, 두부 가라아게 로제 파스타, 베지볼 라구 파스타를 먹었다. 마크로비오틱 스타일의 단정한 메뉴도 좋아하지만 가끔은 화려한 맛의 비건 메뉴도 좋다. 맥주와 함께 먹으면 좋을 메뉴 구성이 많다.




카페 시바에서 함께 식사했던 지혜님이 <매일매일 채소롭게> 책을 가져와주었다.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드렸다. 이렇게나 귀여운 쿠키도 직접 구워주었다. 다정한 저녁이었다. 늘 궁금했던 연남동 비건 베이커리 본디의 베스트 메뉴! 얼그레이 초코칩 비스코티를 드디어 맛보았다. 식감이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워서 '역시는 역시'를 외쳤다.


 


충분한 가을





올해의 가을이 슬슬 내 곁을 지나간다.

충분한 가을이었다.


가을옷을 재빠르게 꺼내어 하나씩 입어봤다. 안산에서 남편과 단풍구경을 했다. 집앞에서 단풍비가 내리는 것을 봤다. 가을 채소로 요리를 실컷 했다.


이제 충분했던 가을을 보내주기로 했다.


겨울은 춥지만 보들보들한 수면양말을 신을 수 있다. 따뜻한 차이티 한 모금이 가장 맛있는 계절이다. 눈 내린 다음날 발자국을 찍어볼 수도 있다. 당근, 시금치, 우엉, 딸기로 겨울 채소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반갑다, 모든 계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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