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능력은 끈기를 선택하고 믿는 것
경력직 채용 인적성 테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문항이 있다.
"나는 어떤 일이든 주어진 일은 어떻게든 끝까지 해낸다."
인성 테스트는 일관된 답변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반복되는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테스트를 마치고 내가 정말 그런가? 의문이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에게는 무수한 중도 포기의 역사가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고3 학생 과외를 맡아 영어, 수학, 국어까지 무려 세 과목을 가르쳤다. 여름방학에 과외를 시작했고 매일매일 2시간씩 수업을 했다. 수업 전에는 하루종일 수업 준비를 하고 수업이 끝나면 기진맥진 지쳐 잠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수업 준비를 하는 날들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염에 장염까지 앓게 되었다. 여름이 지나고 2학기 개강을 앞두자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교환학생 준비도 해야 하는데 더 이상 과외를 지속할 수 없겠어...'
결단을 내리고 학부모님께 전화로 상황을 설명드렸다. 학부모님은 당연히 크게 화를 내셨다. 지금 생각하면 100%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없는지 명확하게 판단했어야 했다. 그만큼 경험도 생각도 짧았다. 욕을 한 바가지 먹고 아무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스스로가 못나보여서 위축된 시절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시간과 체력을 회복해 결국 프랑스로 교환학생에 다녀왔다. 학교에 복학한 이후에도 그만둔 것들이 많았다. 중학교 방과후 교실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가 아이들의 활발한 기세에 눌려서 포기했던 적도 있었다. 자신있게 신청했던 회계 과목을 철회하기도 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중간에 포기한 것들이 많았다. 2년간 다니던 첫 회사를 아무런 계획도 없이 퇴사해버렸고, 준비하던 HR 자격증 시험을 취소했고, 스타트업에 취직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합격 통보를 받고도 가지 않았고, 또다시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세 번째 회사를 다니는 지금도 늘상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해온 중도 포기의 기억을 스스로 지워버리고 "당신은 맡은 일은 어떻게든 완수합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다니 인간의 기억력이란 정말이지 믿을 게 못 된다.
끈기 없는 것이 큰 약점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무엇이든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멋진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요즘 즐겨보는 소울정 유튜브에서 이 한 마디를 듣고 기억까지 왜곡시킬만큼 굳게 믿고 있던 끈기에 대한 신념이 깨졌다. 유튜브에서는 스노우 폭스 김승호 회장의 말을 인용했다.
"끈기는 그만 둘 줄 아는 거다. 끈기가 독이다. 그만두고 다시 시작할 줄 아는 게 진짜 끈기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끈기 있게 지속하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니. 끈기가 능력이 아니라 독이라니.
어떤 상황에서는 끈기가 능력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끈기가 독이 된다. 반대되는 생각이 모두 맞을 때, 혼란스러워진다.
진짜 능력은 끈기도 아니고, 포기도 아니다. 그만둘 때와 계속 붙잡아야 할 때를 스스로 분별할 줄 아는 것이 진짜 능력이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것을 믿을 줄 아는 '힘'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 100% 옳은 일은 없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똑같이 따라한다고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깊이 고민하고 결정한 후에는 자기 확신을 가지고 밀어부쳐야 한다.
지난 주 인스타그램에서 랩퍼 영지의 유튜브 채널 <차린 건 없지만>이 화제였다. 게스트 장원영은 모태센터 비결을 묻는 질문에 "나를 믿는 힘"이라고 답했다. MC영지는 원영을 리틀 폭스라고 부르며 격하게 공감했다.
최근에 회사 밖에서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1,300명, 에세이 출간, 브런치 구독자 2,100명 정도의 애매한 이력을 가지고 있기에 매번 콘텐츠 단가 협상이 어렵다. 게다가 하루에 9시간을 회사 생활에 써야 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라고 모두 받을 수도 없다. 자연스럽게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브랜드와 일을 하게 되었다.
"원고료는 얼마 주시나요?"
콘텐츠 회의에 들어가기 전 꼭 견적 금액을 먼저 확인한다. 반차를 내고 오프라인 회의까지 했는데 막판에 너무 적은 금액을 제시해서 허탈했던 경험을 한 뒤로는 제안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금액 협상을 한다. 몇 번의 경험을 하고 난 후 꽤 능숙하게 협상을 하는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튜브 소울정을 보다가 또 한번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협업을 할 때 수익 배분부터 결정하려고 드는 건 하수다."
서로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뭔가를 제안 해오면 그 제안으로 내가 얼마나 더 크게 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게 당장 얼마짜리인지 계산하면 시너지를 만들 가능성을 놓친다는 것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수익 배분은 자연스럽게 명확해진다. 성과에 누가 얼마큼 기여했는지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성과가 클수록 더 그렇다. 수익 배분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원고료가 아닌 더 크게 될 가능성을 따져보는 일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나에게는 더욱 더 중요한 일이었다. 어차피 월급이라는 고정 수입이 있으니 몇 십만원 더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얼마나 올려줄 수 있는지를 보고 선택하는게 중요하다.
2022년은 더 많은 기회가 올 것이다. 브랜드로부터 받는 제안의 규모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낀다. 이럴 때일수록 끈기도 포기도 아닌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선택과 자기확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