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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pr 02. 2022

좋아하는 일에 체해본 적 있나요?

매일 나를 찾아가는 경험, 갭모먼트

책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를 읽었다.


좋아하는 일 하다가 번아웃이 온 사람들의 인터뷰한 책이다. 책의 저자이자 인터뷰어인 김진영 작가 스스로도 번아웃을 세게 겪은 후, '갭 이어 (gap year)'를 보내고 있던 기간에 인터뷰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갭이어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다음 회사로 옮겨가기 전 잠시 쉬는 상황이 아닌,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내가 계획했던 방향으로 커리어와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잠깐 트랙에서 내려오는 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로부터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거리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 타인의 삶의 속도와 방향에 치여 잃어버린 나의 중심을 회복하는 시간.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띠지만 갭이어는 모두 일과 삶에서의 영점 조절을 위한 시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 책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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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좋아하고 싶었던 사람이

일에 마음을 닫기까지


2년 전이었다. 8년 차 대기업 직장인이었고,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스타트업 이직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지금 하는 일을 같은 방식으로 더 하고 싶지 않았다. 일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힘들다는 것 쯤은 안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교집합을 최대한 키워보고 싶었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파랑새를 찾는 심정으로 스타트업 채용 공고를 기웃거렸다. 안 가본 곳에 대한 환상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다.


일을 사랑하는 본능을 외면한 채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일에 실망할수록 "일 까짓 거 별 거 아니야. 내 인생에는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아!"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의 일을 무시했다. 정확히는 회사에서 일하는 나 스스로를 무시했다.


속마음은 달랐다. 일이 중요한 사람이고 싶었다.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기를 바랐다. 중요한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내가 하게 된 일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보수적인 조직문화에 성희롱을 일삼는 직장 상사까지... 내가 하는 일을 도저히 '내 일'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감정적으로 퇴사를 결정했다. 두 번째 도전이라고 해서 원하는 일이 나에게 굴러들어 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먹고 살려면 일은 해야 했다. 할 수 있는 일, 주어진 일을 했다. 원하던 일은 아니었지만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일에서 소외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내가 일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일을 소외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일 까짓 거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시간들이 쌓여갔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일은 나에게 "그까짓 거"가 되어있었다. 일은 취미로 한다고 기세 등등하게 브런치에 글을 올리던 시절, 사실 내 마음은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게 아니라 위축되어 있었다. 이제서야 할 수 있는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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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활동

사이드 프로젝트


그러던 내가 달라진 계기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부터였다.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하는 회사 생활과 달리 사이드 프로젝트는 스스로가 주인공인 무대였다. 내가 결정하고 이끌어나가는 나만의 일이었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내가 무엇을 잘하고, 또 잘하고 싶은지 찾아 나가는 활동이었다.


회사와는 달리 단기간에 성과가 나타났고 지속적으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다. 회사 밖에서 드디어 '중요한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 되어 본 것이다. 이 성취감은 정말 달콤했고 중독성이 강했다. 더 빠르게 더 많이 이루어내고 싶었다. 퇴근 후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사이드 프로젝트에 투입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건들 수 없는 절대적인 시간의 벽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하루 8시간 회사생활. 아무리 시간을 줄이고 아껴 써도 허물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창업을 할까? 독립해서 프리랜서가 될까? 생각해보다가 이내 머리를 저었다. 생계를 위해 결국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에 매이게 될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남는 선택지는 하나였다. '그까짓것'이었던 회사일을  마음으로 받아들여보는 . 일에서도 삶에서도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않는 .  이상 나의 일을, 일하는 나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시기, 나는 <회사에서의 나>와 <회사 밖의 나> 두 자아 사이 괴리를 점점 크게 느끼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늘 가면을 쓰고 사는 것 같았다. 회사 밖에서는 엄청난 에너지로 많은 일을 리드하는 사람이었지만 회사 안에서는 쉽게 실망하고 마음을 닫는 직장인이었다. 이대로는 내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쓴 가면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어느 날, 스스로에게 말했다.


일도 일상도 다 내 삶이야. 다 소중해.
그러니까 내 일을 무시하지 말자.
일과 삶 모두를 껴안자.


내 삶을 사랑하듯 내 일을 사랑하기로 했다. 내 일에 책임을 다 하듯 내 삶을 책임지기로 했다. 일을 사랑하는 일은 동료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함께 일하는 시간과 경험을 사랑하는 것이었고, 내가 들인 노력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며, 내 경험을 사랑하는 연습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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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마음이 체했다고?


그렇게 내 삶은 순항하는 듯 보였다. 회사에서 2년 연속 CEO 표창을 받았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회사 일을 '그까짓것'이라고 치부하던 때에도 늘 회사일을 열심히 하기는 했다. 거기에 마음까지 담고 나니 훨훨 날아다니는 기분으로 일을 했다.


회사 밖에서 하던 일들도 술술 풀렸다. 커리어 콘텐츠 플랫폼의 제안으로 아티클을 기고하기도 했고, 내가 만든 커뮤니티들도 잘 운영되어갔다. 매일매일이 바쁘지만 설레고 재미있었다.


주변에서 자꾸 '잘한다' '네 브랜드를 만들어도 될 것 같다'라고 이야기하니까 속도를 줄일 수가 없는 거예요. 패션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속도를 따라잡아 인정받고,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에서 오는 희열과 혼동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 책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김진영


지금 돌아보면 과속을 하고 있었다. 이제야 회사 안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나답게 일하는 사람, 중요한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감각>을 얻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과속을 해도 이게 과속인 줄 모르고 내달리고 있었다.


마음을 담아 일을 하면서 무엇이든 <마음을 담는 순간 일의 차원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히 책임감으로 열심히 하는 것과 마음을 담아 하는 것은 다르다. 마음을 담아 일을 하기 시작하면 반짝거리는 그 에너지가 내 안에서 넘쳐흘러 바깥으로 뿜어져 나온다. 그걸 본 사람들이 "너무 감동적이다."라는 피드백을 주고, 그 피드백에 중독되어 마음을 더 더 더 담게 된다. 그렇게 이미 바닥난 마음까지 쥐어짜냈다.


제 속도와 스테이의 분위기, 손님들의 만족도가 서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 속도를 잃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요.
- 책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김진영


내 마음의 에너지는 정말 중요하다. 내 안에 담긴 에너지가 좋아야 내가 리딩 하는 모임의 분위기, 만족도도 좋아진다. 그래야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내 상태가 가장 우선이어야 한다. 모임을 이끌기 전 가장 중요하게 준비해야 할 것은 <충분한 에너지>였다.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한 속도 조절은 당장의 나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최종 목표까지 안전하게 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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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 모두를

껴안고 싶어서


번아웃이란 소진을 말한다. 남는 게 없이 타버린다는 것이다. 번아웃을 모를 때 이런 궁금증이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으면서 사람들은 왜 번아웃이 오면 남는 게 없다고 느끼는 걸까?"


일과 삶 모두를 껴안아보려고 무리하다가 번아웃의 문턱까지 가보고 나서야 알았다. 번아웃이란 일과 삶에서 주도권을 뺏긴 채로 내몰려서 생기는 것이다. '내 것'을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시선과 기준에 맞춰 일하다가 자아가 소멸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쓰임'을 당한다는 감각과도 비슷하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번아웃이 오지 않으려면 일과 삶에서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 이 일을 왜 하는지, 이 일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힘들지만 인내하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긴 한 건지? 그게 내 욕망이 맞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김진영 작가는 이를 '건강한 열심'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삶에 빚지며 일하는 것이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거나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일과 삶은 분리될 수도 있고, 분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 스위치는 내가 쥐고 있어야 한다. (...) 그리고 그 스위치를 내 손에 쥐고 있으려면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나만의 구체적인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한계를 알고, 동시에 내가 기어코 잘 해낼 일과 물러설 일을 고를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 책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김진영


번아웃으로 가는 문턱에서 내가 스스로를 위해 처방한 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연습>이었다. 이건 몸을 움직여서 '해봐야 아는' 것이었다. 번아웃을 넘어서기 위해 툴툴 털고 일어나 또다시 달리기로 했다.


내 본질적 욕망을 잘 알게 되면, 외부 환경과 조율을 해나가기도 좀 더 쉬워지죠. 결국 다양한 모습의 ‘일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데에 필요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중략) ‘이 일이 내게 맞을까’ 고민만 하고 있지 않았던 것, 일단 실행해본 것이 가장 잘했다고 생각해요. 갭이어든, 이직이든 고민보다 일단 실행을 했던 선택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 것 같아요.
- 책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김진영


의미가 있어서 실행하는 게 아니라 실행을 통해서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내 일과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들려면 끊임없이 실행하면서 의미를 스스로 만들고 찾아 나가야 한다. 대규모 독서모임을 리딩 해보기도 했고, 영상을 배우고 유튜브를 개설했다. 책을 더 많이 읽고, 혼자 하던 프로젝트에 멤버를 모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주 고통스러웠고, 모두 그만둬버리고 싶었고, 아무도 모르게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해낼 수밖에 없었다. 해 봐야지만 도대체 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었고, 그걸 알아야 내 삶의 주도권을 어떻게 되찾아야 할지 계획을 세울 수가 있었으니까.


작년부터 내가 기획하고 말하고 쓰는 모든 활동은 이 문장으로 귀결됐다.


일하는 나와 나다운 일을 분리하지 말고
일과 삶을 모두 단단하게 껴안자


성장과 균형 둘 다 욕심내면
왜 안 되는 거죠?


이 슬로건을 집착하듯 반복했다. 글을 쓸 때마다, 콘텐츠를 만들 때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말하고 썼다. 회사원 포트폴리오 vs 사이드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로 나뉘어 있던 나의 포트폴리오도 아예 하나로 합쳐버렸다.


왜 그러고 싶었을까? 지금 돌아보니 내가 말하는 성장, 균형, 일하는 나, 나다운 일은 모두 같은 뜻이었다. 스스로 알아차리는 삶을 살자는 것. 단 한순간도 삶에서 주도권을 잃지 말자는 것.


어른들을 위한 진짜 공부 커뮤니티 <함께하는 독학 클럽>에서 내가 수없이 말하고 있는 <일-삶> 콘텐츠란 늘 갭이어의 마음으로 살자는 것이었다. 매 순간을 갭 모먼트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공부 커뮤니티 멤버로부터 이 책을 추천받아 읽기 시작했을 때 성장을 말하는 우리 채널과 안 어울리는 이야기 아닌가? 하는 고민을 했다. 나답게 성장하자고 권유하는 채널인데 나답게 일을 쉬자는 책을 소개하는 셈이니까.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쉼'은 '멈춤'이나 '단절'이 아니었다. 무작정 일을 쉬자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 숨을 고르고 시야를 넓히고 잠깐 트랙에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갈 준비를 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말하는 성장도 그런 것이었다. 무조건 앞으로, 위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고 고민하며 가자는 것이다.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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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좋아한다

일을 잘한다


내 글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준다. 감사한 일이다. 평생 그런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기 위해 이 회사 저 회사를 기웃거리고 이 일 저 일을 벌이며 살아왔으니까.


내 글의 독자들, 공부 커뮤니티 멤버들, 친구들이 일에 체하고 지쳐서 주저앉아 있을 때 마음이 무거워진다. 무너져 본 사람은 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좋아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대상에게 외면당하는 기분이 얼마나 처참한지 너무 잘 안다.


그런 우리에게 묻고 싶어 진다.

일을 좋아한다는 건 뭘까?

일을 잘한다는 건 뭘까?


내가 잘하는 일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는 내가 정말로 잘하는 일과 잘하고 싶은 일, 혹은 잘할 거라 스스로 오해했던 일을 각각 구별해내야 했다. (중략) 내가 좋아하는 일의 본질은 무엇인지, 내가 정말로 잘 해내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지 스스로 더 잘 알게 된다면 향상심에 잡아먹히지도 않고, 무기력에 빠지지도 않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 책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김진영


기회가 된다면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과 나란히 둘러앉아 차 한잔을 마시며 책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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