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시간 기록 남기기
내일 할 일 & 오늘 한 일을 기록하는 시스템 <시계부>를 소개한 이후로 정말 많은 관심을 받았다. 시계부를 쓰기 시작했다는 피드백도 많이 들었고, 시간과 일상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동시에 시계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질문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시계부를 쓰면서 매일 시간을 기록해봤다.
▼ 시계부 영상
시계부를 쓰면서 하루에 많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꼭 할 수 있는 일만 계획한다. 그리고 못 해도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다. 계획한 일을 다 하지 못하면 <일주일 내로 할 일> 칸으로 미뤄둔다. 일주일 내로도 하지 못하면 <한 달 내로 할 일>로 미뤄둔다. 한 달 내로도 하지 못했다면 사실 그렇게 중요하거나 급한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막연히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해야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일일 확률이 높다. 그런 일은 과감히 삭제한다.
일주일 동안 시계부를 기록하면서 3일 차 수요일부터는 짧게 감정도 같이 남겼다. 계획한 일을 못 했을 때의 감정, 계획을 바꿔가며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의 감정, 시계부를 기록하면서 느낀 점을 일주일 정도 모으니 몰랐던 나의 일상과 감정 패턴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계획을 세우고 지키지 않으면 다시 하기가 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외로! 실패한 계획에 대해서 "오늘은 이래서 안 했다."라고 말한 게 큰 도움이 되었다. 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일을 반복적으로 안 하게 된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다. 그 마음을 존중해보기로 했다.
"안 했어. 못 했어. 나한테 실망이야."
여기서 끝나면 그냥 못난 사람이 되는 걸로 끝이다.
그러지 말고 왜 안 하고 싶었는지, 왜 못하게 되었는지 기록을 하니까 내가 어떤 상황과 감정을 힘들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머리로는 해야겠다고 생각해온 일을 막상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는 <일찍 일어나기>가 평생의 숙제였는데 시계부를 쓰면서 시원하게 포기했다. 그동안 일이 잘 안 풀리면 늘 "오늘도 일찍 못 일어나서 그랬어."라고 자책을 했다. 그런데 매일 밤 그날의 시계부를 돌아보니 나는 이미 하루를 꽉꽉 채워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그냥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내가 아침부터 늦잠을 자서 그렇게 된 게 아니다.
시계부를 쓰면서 밤늦게까지 글 작업을 하고 아침 늦게 일어나 헐레벌떡 출근 준비를 하는 스스로를 그만 자책하기로 했다. 늦은 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글 쓸 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그 기쁨을 외면할 필요가 있을까.
시계부를 쓰면서 또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내일 할 일> 목록에 방 청소, 설거지, 빨래 시간을 넣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동안은 집안일을 할 일 목록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제대로 시간을 할당해주지도 않으면서 매일 밤마다 오늘도 빨래를 못 했어, 청소기 돌릴 시간이 없었어... 하고 아쉬워했다.
뭔가를 하고 싶다면 그것을 할 시간을 만들어주면 된다. 나는 청소와 빨래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집을 정리하면 마음도 덩달아 정리되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서 왜 청소를 공식 일정으로 인정해주지 않았을까? 시계부를 쓰기 시작하면서 <내일 할 일> 목록에 기쁜 마음으로 집안일을 추가했다.
4/6 (수)
역시 나는 잠이 많다. 7시 기상 목표를 가볍게 넘겨버리고 9시 반 기상
재택근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지 않았을까 ㅋㅋ
뭔가를 "해내는" 시간보다는 "해내기 위한 준비"에 시간이 많이 든다. 알고 있지만 씁쓸하다.
4/7(목)
못 지킨 시계부라도 써놓고 나니 웃기면서 뿌듯하다.
어제는 매일 해오던 밑 미 리추얼 독려를 안 했다. 꼭 해야 한다는 가이드는 없었지만 매일 열심히 해왔던 일을 안 해봤다. 안 하고 잠들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로운 쉼"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시계부 마무리도 안 했고, 다음날 계획도 안 세웠다. 방금 출근하고 했다. 늦게라도 "했다"는 것이 루틴 유지의 핵심임을 다시금 느낀다.
4/8(금)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일찍 눈이 떠졌다. 덕분에 알차게 하루를 보냈다.
글로 옮기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없어서 클로바노트를 켜고 와다다다 말로 글을 썼다. 이 방법 꽤 괜찮네?!
4/9(토)
오랜만에 베이킹을 하고 싶어서 재료 준비를 했다. 베이킹이 왜 좋냐는 질문에 대개 이런 대답을 했다. "나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경험이라서 좋다". 사실 그냥 손 맛에 중독된 것 같다. 낚시 애호가들이 그 손 맛을 못 끊는다고 하던데 베이킹도 그렇다. 믹싱볼에 반죽 휘릭 휘릭 젓는 그 기분... 진짜 쾌감이 있다.
오늘부터 블로그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밑미 리추얼을 하면서 에버노트에 매일 조금씩 리추얼 일기를 써왔다. 정제된 글을 내보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좀 가볍게 써도 되지! 내 공간인데 어때서.
4/10(일)
하루 시계부를 돌아보며 마감하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이 맛에 사람들이 일기를 쓰는구나. 약속된 일주일이 지났지만 계속 매일 밤마다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블로그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 일기 2일 차! 내 마음대로 글 쓰면서 좋아하는 노래 들으니 정말 행복하다. 아, 이런 순간들이 모여 내가 글을 쓰게 되었지. 마음대로 써 내려가는 글이 주는 자유를 꽤 오래 잊고 있었다.
오늘 많은 일들을 했는데, 딱 하나! 회사 공부는 미뤘다. 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래,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면 되지!
시계부 기록 인증을 남기기 위해 별도로 탭을 만들어뒀는데 역시 귀찮다. 내일부터는 다시 이전처럼 매일의 시계부를 리셋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