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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May 05. 2022

글쓰기, 어디까지 솔직해야 할까?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

"이렇게 솔직하게 써도 괜찮아?"

"이 에피소드 주인공이 왜 자기 얘기 썼냐고 따지면 어떡해?"

"이것도 다 개인정보인데 너무 공개하는 거 아니야?"


내 글을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믿던 시절, 글은 나의 대나무 숲이었다. 친구들의 걱정과 달리 나는 글로 도망치는 것이 꽤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글을 읽지 않는 시대인데 누가 내 글을 보겠어?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보다 글에 내 마음을 콸콸 쏟아내 버리고 후련해지면 된 거 아니야?"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해서 청개구리처럼 엇나가곤 했다. 이 삐딱함이야말로 세상의 기준에 지나치게 부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명품 가방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연봉이 올라도 명품은 사지 않았다. 안정적인 회사에서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작정 퇴사를 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겠다며 텀블러/나무칫솔/샴푸바를 쓰기 시작했다. 버터와 계란을 쓰지 않는 비건 베이킹을 한다.


그때는 기존 세계에 맞서 내 삶을 산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생각과 행동이 새로운 유행을 따라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세상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맞춰가는 것 아닐까.


이렇게 세상의 기준에 딱딱 맞춰서 살아가면서,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이상하게도 글을 쓸 때만큼은 이 세상에 오로지 나만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좋았다. 아니, 어쩌면 글을 쓸 때만큼은 세상이 전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그게 좋았다. 그래서 철없이 속에 든 것들을 다 끄집어내 글로 썼다.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써 내려간 글들은 감사하게도 많이 읽히고 사랑받았다. 사람들은 나의 무모함을 좋아해 줬다. 글을 통해 좋은 기회도 많이 만났다. 책을 냈고, 커리어 플랫폼에 글을 연재하고, 리추얼 플랫폼에서 모임을 이끌고, 커리어와 글쓰기 강의 제안도 자주 받는다.


내가 나를 숨기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했다면 이런 기회들을 얻을 수 있었을까?



/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


"글 쓰는 사람이랑 친해지지 마라잉. 거, 전~부 사기꾼들이다. 거, 뭐 말만 하면 다 글로 써버린데이!"


팟캐스트를 듣다가 빵 터졌다. 게스트로 출연한 작가는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부터 작가들이랑 친해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듣고 자랐다고 한다. 정작 그가 작가가 되어 방송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아버님, 역시 세상 일은 모르는 거예요. 그죠잉?


글을 쓰는 것은 나를 쓰는 일이다. 세상에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연스럽게 글을 쓰면 나와 관계 맺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게 된다. 당연히 조심스럽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글을 쓰는 사람은 없으니까. 꼭 어떤 목적이 있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라도 써야 살겠으니까 쓴다. 세상살이의 복잡함, 억울함, 고됨, 슬픔, 속상함을 글로 쓰지 않으면 답답해서 쓴다. 내가 살자고 쓴다. 나 살자고 남 상처 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늘 조심하며 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나를 드러내는 일은 내 가족을, 친구를, 동료를 드러내는 일이 되고야 만다. 의도하지 않아도 내 글은 결국 누군가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긴다.


글을 안 쓰고 살 수는 없어서 마음을 바꿔버렸다. 주변 사람들은 미워하지 말고, 비난하지 말고, 공격하지 말고 살자고. 글을 쓰며 거짓으로 미화할 필요 없이 애초에 쓸 수 없는 위험한 마음을 먹지 말자고. 물론, 그래도 미운 사람, 실망스러운 사람, 화나게 만드는 사람들이 꼭! 있다.


마음을 고쳐먹을 만큼 글을 써야겠다면 써야 한다. 세상에는 꼭 글을 써야 하는 사람, 꼭 운동을 해야 하는 사람, 꼭 연애를 해야 하는 사람, 꼭 여행을 가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한다. 그 정도의 마음이어야 뭐가 돼도 된다.



/

솔직함의

기준이 뭐야?


"S님 글에는 S님이 없어요. 더 솔직하게 써봐요."

"이거보다 더 어떻게 솔직하게 써요? 대체 솔직함의 기준이 뭐예요?"


글 친구랑 글 이야기를 하다가 솔직하게 글 쓰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음... 악플이 10개쯤 달리는 글을 쓰는 거?...ㅎㅎ 라고 하면 무책임한 답변이겠지만 진짜다. 살면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안 하고 사는 사람은 있어도 비난받을 만한 생각을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나쁜 생각, 욕먹을 생각을 하고 사는 거 아닐까? 그럴만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면 악플을 다는 거고 이해하면 공감하며 읽는 것이다.


내가 쓴 글에 달린 댓글의 30%는 진한 공감, 50%는 잔잔한 공감, 20%는 가혹한 악플이다. 따뜻한 댓글과 함께 악플이 달릴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오, 제법 읽을만한 글인가 본데?"


솔직하지 않은 글에는 악플도 공감도 달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작정 누군가를 비난하고, 오늘 겪었던 무례한 일을 나열하라는 게 아니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 가치가 훼손당했을 때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무는 마음을 쓰는 것이다.


반대로 어깨가 들썩일 만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쓸 수도 있다. 남들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것이 누구에게나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쓸쓸하고 외롭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지켜내는 마음은 멀리서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

바닥을 인정하는 기분


솔직하게 쓴다는 건 내 바닥을 인정하는 일이다. 자신의 바닥을 마주하는 건 불쾌한 경험이다. 누군가에게는 끝까지 피하고 싶을 거다. 대개 그런 성향의 사람들은 글쓰기를 즐기지 않는다. 그들은 진창이 된 바닥 위에 새로운 경험을 쌓아 올리기를 원할 것이다.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들은 그 진창에 기꺼이 빠져 죽더라도 상관없으니 진창을 파헤쳐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대체 이 진창 안에 뭐가 들었는지 손에 진흙을 묻혀서 눈으로 확인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글을 쓴다. 스스로의 바닥을 마주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대범한 사람은 거의 없다.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소수만이 그런 경지에 오른다. 그래서 대개는 진창 안에서 그냥 쓴다. 바닷가에서 실컷 놀고 난 후 짜디짠 소금물 흠뻑 젖은 옷을 말리지도 못하고 버스에 올라타 수건을 깔고 앉은 사람처럼. 그냥 덜컹덜컹 가는 거다.


나의 바닥을 마주할 때면 늘 부끄럽다. 인생에 리셋 버튼을 만들고 싶을 정도로, 기억을 지우고 싶을 만큼, 얼굴이 빨개질 만큼, 그냥 다 내버려 두고 도망가고 싶어질 만큼. 그래도 쓴다. 이 진창을 피해 돌아가지지가 않으니까. 내 마음이 그렇게 생겼으니까 어쩔 수 없다.



/

그래도 진심, 

진심이 전부


"뭘 그렇게까지 정성껏 해?"


모든 일에 마음을 담아야 하는 내가 스스로도 싫었다.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였다. 노력 대비 결과가 좋아야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인데 내가 하는 모든 일은 투입하는 노력이 너무 많다.


공부 커뮤니티를 만들고, 이끌고

글 쓰고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독서모임 커리큘럼을 만들고


이런 활동을 하면서 경제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을 썼다.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해야만 결과가 나오는 걸까? 능력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덜 노력하고도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열심히 준비했다는 걸 말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숨기고 싶었다.


지금은 안다. 진짜 능력은 효율적으로 일하는 스킬이 아니다.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게 진짜 능력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새로운 것들이다. 남들이 쓰지 않은 글을 쓰고 싶고, 기존 독서모임과는 다른 모임을 만들고 싶고, 세상에 없는 어른들을 위한 공부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 애초에 비교 대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나보다 더 효율적인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투입한 노력도, 얻을 수 있는 결과도 기준은 오직 내 안에 있다.


정해진 일을 하면서 효율을 높일 수는 있지만, 새로운 일을 하면서 '효율'을 따질 수는 없다. 새로운 일에는 새로운 노력, 새로운 마음, 새로운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비효율적인 게 당연하다. 노력 대비 얻을 수 있는 게 적은 게 불 보듯 뻔한데도 뛰어드는 그 마음! 그 마음이 능력인 거다.


이제 나는 나의 정성, 나의 진심, 나의 비효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숨기지 않고 이렇게 세상 사람들 다~ 들으라고 글로 쓴다. 이 마음은 내 거니까. 나만 가지고 있는 거니까. 이게 내 글쓰기의 전부이고, 내 전부다.



/

솔직하게

나를 쓰는 삶


그래서 도대체 솔직한 글쓰기가 뭐야?라고 다시 묻는다면.

솔직하게 나를 받아들이며 사는 삶이라고 답하겠다.


내 바닥을 인정하는 삶

비효율적인 일에 기꺼이 뛰어드는 삶

진짜 능력이 내 마음임을 아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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